도심 속 비밀의 정원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6.07.21. 00:00

수정일 2006.07.21. 00:00

조회 1,545

도심 속 비밀의 정원

시민기자 최근모

백사실 전경, 주춧돌만 남은 정자 터(왼쪽부터)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백사실(白沙室)에는 정자 터와 인공적으로 조성한 연못이 있다. 백사(白沙)는 이항복의 호인데 이곳이 그래서 그의 별장이었다는 설도 있다. 이항복이 누구인가? 오성과 한음의 개구쟁이 오성이 바로 그이다. 하얀 모래알처럼 청렴결백한 삶을 살고자 백사라는 호를 가졌다고 한다. 백사실이 그의 별장 이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확실치 않지만 도심 바로 옆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자하문고개(부암동사무소) 정류장에 내려서 환기미술관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쭉 걸어 올라갔다. 미술관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오른편 길을 타고 10분가량 가파른 길을 오르다 보면 그동안 따라온 능금나무길이 끝나고 백석동길과 북악산 산책로 갈림길 앞에 서게 된다. 왼편의 백석동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길가에 응선사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석상이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다. 그곳을 지나쳐 가다보면 작은 동네 슈퍼가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든다. 길을 걷다보면 드문드문 보이는 농가와 밭들이 보이는데 뒷골 이라고 불리는 한적한 시골풍경과 마주친다.

이 산길에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나를 반긴 것은 도롱뇽 서식지라는 안내판 이였다. 멀리서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며칠 전부터 내린 비로 백사실 계곡에 물이 불어나 있었다. 초행길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백사실로 가는 조그만 이정표조차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목들이 너무 우거져서 하늘을 덮고 있었다. 방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계곡을 따라 무조건 쭉 내려가라는 말이 생각났다.

역시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바로 백사실이 나타났다. 아까 지나쳤던 슈퍼에서 오 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았다. 눈앞에 펼쳐진 백사실의 풍경은 뭐랄까? 누군가의 비밀 정원 같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이곳까지 오는 길은 좁은 오솔길에다가 우거진 수풀로 하늘도 잘 안 보인다. 그러나 일단 도착하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며 찾을 수 없을 거 같았던 백사실이 그 속살을 드러낸다.

오래된 수목들이 울창하게 백사실을 덮고 있다. 그래서 햇빛조차 쉽게 이곳에 들어오기가 힘들다. 사방은 고요하고 그 안에 담긴 연못은 더욱 조용하다. 연못 주위로 벤치가 간간히 배치되어 있고 연못의 반은 수초가 자라고 있었다. 책을 가지고 와서 이곳에서 읽거나 폭염을 피해 나들이를 오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날씨가 무더웠는데도 백사실안에서는 한기가 느껴졌다.

연못 한쪽엔 주춧돌만 남은 정자가 보였다. 누군가 오래전 인공적으로 이 연못을 조성하고 정자까지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 연혁이나 유래를 정확히 밝혀줄 자료는 찾을 수가 없었다. 관계기관에서 이곳에 대한 발굴을 진행 중이라고 하니 시간이 지나면 그 비밀도 풀릴 듯하다.

물에 비친 나무와 수풀들이 초록빛 물감처럼 반사되어 마치 수채화 한 폭을 연못위에 그려놓은 듯했다. 도롱뇽은 1급수에서만 살 수 있다고 한다. 거울 같이 초목들을 비추고 있는 연못을 보며 물이 무척 깨끗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벤치에 누워 잠을 청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인적 또한 드문 편이였다.

도롱뇽을 보고 싶어서 계곡물을 한 참 들여다보았는데 쉽게 발견할 수가 없었다. 올챙이들만이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렇게 단 휴식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하늘에서 후드득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을 맞으며 세검정 길로 내려왔다. 현통사를 지나자 곧바로 차들의 소음이 내 귀를 괴롭혔다. 몇 걸음만 벗어났을 뿐인데 바로 도심 이였다. 짧은 휴식을 뒤로 한 채 그렇게 버스에 다시 몸을 싣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백사실 가는길은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녹색 지선버스 0212 또는 1020 타고 자하문고개(부암동사무소)에서 내리면 환기미술관 이정표가 보인다. 이 길(능금나무길)을 따라 가다가 환기 미술관으로 갈리는 길에서 미술관 쪽이 아니라 오른쪽 오르막길을 타고 계속 오르다 보면 백석동길과 북악산산책로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세워진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곳에서 왼편의 백석동길로 내려 가다보면 응선사라는 절도 보이고 좀 더 가면 길가에 작은 슈퍼가 나온다. 오른쪽 산길로 난 계단이 보인다. 산길에 들어서면 도롱뇽 서식지 안내판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부터 몇 걸음 들어가면 작은 계곡이 나온다. 계곡을 따라 내려 가다보면 바로 백사실이 눈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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