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게에 가다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6.06.19. 00:00
시민기자 최근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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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서는 장마가 시작된다는 기상캐스터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밖은 곧 비라도 내릴 듯 어두컴컴했다. 러시아워를 한 참 지난 시간이라 버스 안은 한산했다. 아니 텅 비었다. 창문으로 비가 내리기 전 맡게 되는 흙냄새가 맡아졌다. 남산 자락에 머문 먹구름이 곧 장대비를 쏟을 듯 자리를 무겁게 잡고 있다. 나는 지금 만화방에 간다. 남산 자락에 자리 잡은 이 만화가게는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공짜다. 주머니 사정도 생각 않고 십 몇 권을 모조리 탐닉하다가 마지막 완결 편에서 돈이 모자라 눈물을 머금고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은 모두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다. 명동 역에서 내려 비탈길을 힘들게 걸었다. 경사가 제법 있다. 땀도 난다. 적십자 건물을 지날 때쯤 서서히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만화책 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굳이 누군가에게 묻지 않아도 이곳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름답게 만화스럽다. 횡단보도를 건너 도착하면 우선 태권브이가 인사를 한다. 절대 장난감 수준의 크기가 아니다. 이전에 만화책과 스크린에서 보았던 태권브이가 실제로 있었단 말인가?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만듦새와 크기가 압도적이다. 같이 간 아이들의 탄성은 물론 아빠들의 향수를 자극시킨다. 돈키호테에게 산쵸가 있었다면 태권브이와 절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깡통로봇이 천연덕스럽게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맞아준다. 그 옆으로 귀여운 둘리와 도우너도 보이고 만화 속 캐릭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하다. 아이들과 사진 찍기 딱 좋은 곳이다. 캐릭터 조형물들을 지나면 왼편으로 ‘만화의 집’이 나온다. 1층에 마련된 정보실에는 서가에 빼곡히 국내외 명작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최신 만화뿐만 아니라 로봇찌빠 같은 이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만화책들도 이곳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다양한 종류만큼 어린이뿐만 아니라 청소년 및 성인이 볼 수 있는 명작들이 수준별로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입구에서 안내하시는 분에게 신분증을 맡기고 소지품은 사물함에 보관한다. 그 다음은 서가에 기다리고 있는 만화책들을 눈으로 감상하며 무엇을 볼 것인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만 하면 된다. 만화책을 보다가 잠시 쉬고 싶다면 밖으로 나와 동 건물 이층에 마련된 만화 전시실에 올라가보자. 안은 좀 어둡다. 문을 지나 전시실을 한 번 둘러보는데 그리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연대별 작가와 당시 인기 있었던 만화들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생활상이나 만화가게 풍경들을 미니어처로 정감 있게 만들어 놓아 지금의 아이들이 쉽게 알 수 있게 해 놓았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소년중앙 같은 어릴 적에 내가 보던 잡지들이 세월의 때를 그대로 간직한 채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실 이층에서 나와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살살 내리던 빗줄기는 이내 장대비로 변해서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깡통로봇의 주전자 콧구멍에 빗물이 들어가 익사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역시 캐릭터 스타일답게 태권브이는 비를 맞으며 무게 있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장마가 오면 이곳을 더 많이 찾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만화는 장대비가 내리는 장마철에 봐야 제 맛이다. 너무 오랫동안 맛보지 못했던 재미에 나의 발걸음은 어느새 만화방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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