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 빨래터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6.04.06. 00:00
시민기자 김영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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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가 빨래하던 우물을 아시나요?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지난 주말 정동길을 걷다가 참으로 뜻 깊은 곳을 발견했습니다. 정동길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사학 이화여고에서였습니다. 교정이 아름다운 그 학교를 둘러보러 들어갔다가 ‘유관순 열사가 빨래하던 우물’이란 표지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뜻밖이었지요. 유 열사가 이화학당에서 공부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교내에 ‘유관순 기념관’이 있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빨래하던 우물가가 그대로 남아있다니... 유 열사의 체취가 진하게 느껴지며 잔잔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 합니다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강소천 작사, 나운영 작곡 ‘유관순’) 어린이들의 목소리로 들으면 더 감동적인 위 가사에서 보듯 3월이 오면 떠오르는 얼굴이 유관순 열사입니다. 열일곱 앳된 나이에 순국의 넋으로 산화한 유 열사. 많은 순국선열 중에서도 유 열사를 먼저 생각하게 됨은 일제의 흉포한 발톱에 찢긴 짧은 생애가 너무 애처롭기 때문이지요. 우물은 교정 동쪽 끝 우람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아카시아 나무가 둘레를 지키고 서 있는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지름 1.5m 정도의 둥그런 형태로 전형적인 우리의 옛 우물 그대로입니다. 일찍이 이곳 정동 언덕에 살던 조선시대 서민들이 공동으로 쓰던 우물이 보존돼 내려온 것이라고 하니까요. 두레박을 썼던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두꺼운 나무 뚜껑을 덮어 놓은 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3.1운동 3년 전인 1916년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한 유 열사는 학교생활 틈틈이 이 우물가를 찾아 빨래를 했습니다. 우물물을 길어 흰 무명 교복을 깨끗이 빨아 입으며 꿈을 키우던 소녀 유관순. 소녀가 키워온 꿈은 ‘조선 독립’이었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열사의 짧은 생애에 비추어 볼 때 열사의 체취가 서린 곳이라고 해야 고향인 천안시 아오내 생가 말고는 이곳 모교일 것이기에 찬물에 시린 손을 비벼가면서 빨래를 하던 열사의 모습을 그려보며 절로 마음이 애틋해짐을 느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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