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열린 숭례문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6.03.10. 00:00

수정일 2006.03.10. 00:00

조회 1,426



시민기자 최근모

근 100년 동안 늘 겨울이었던 곳이 있었다. 한여름 타는 열기 속에서도 문을 꼭 닫고 있었던 곳. 도심의 한가운데에 도로와 차들로 포위돼 사람들의 접근을 거부하던 섬 같은 그곳.

봄의 기운은 영원히 얼어 있을 거 같은 그곳에도 조금씩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발길이 하나 둘 이어지더니 거의 100년간 굳게 닫아 놓았던 문을 활짝 열었다.

평일 오후인데도 활짝 열린 숭례문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렸다. 그 문을 통과하는데 고작 몇 분도 채 되지 않지만 태어나 한 번이라도 이 문을 지나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 의미뿐만 아니라도 이 열린 문을 통해 지나가 보는 느낌은 예상외로 재미있다.

일단, 숭례문 앞에서 조선시대 수문장 복장을 갖춰 입은 이들의 교대식을 보는 것도 그 재미를 더 한다. 생색내기 위한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꽤 절도와 격식을 갖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외국인뿐만 아니라 우리조차 신기하고 즐겁다.

잠시, 숭례문에 대해 알아보면 태조 5년(1396) 성곽과 함께 세워졌다. 그동안 몇 번의 개축과 보수를 하였는데 중요한 것은 완전히 훼손되고 다시 지은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원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국보 1호라는 직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에 남아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우리나라 전체를 통틀어 성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들을 좀 더 찾아보면, 숭례문의 양쪽이 도로로 끊겨 있으나 1899년 이전에는 남산 성곽과 인왕산 성곽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이 성곽은 청와대 뒤쪽 북악산과 지금의 혜화동 낙산을 둘러치고 다시 남산을 돌아 숭례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즉, 1899년 이전에는 이 성곽이 빈틈없이 한양을 둘러싸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처럼 아무나 서울을 돌아다닌 것이 아니라 반드시 숭례문을 통과하거나 다른 사대문을 통과해야 도성인 한양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숭례문에 들어서기 전 고개를 잠시 들어보자. 아치형의 홍예문의 곡선도 눈길을 끄나 그 위로 무엇이 보이는가? 문루에 걸린 숭례문 현판.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보통 궁이나 다른 전각의 현판을 보면 모두 가로로 쓰는데 이 숭례문이라는 현판 글씨는 세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숭례문을 둘러싼 빌딩들로 서울역 지나 멀리 자리 잡고 있는 관악산을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 숭례문의 현판은 정확히 관악산을 마주보고 있다. 바로 뒤로는 경복궁의 근정전과 그 방향이 일치한다.

궁궐은 목조건물이 대부분이라서 화재에 특히 민감하다. 지금도 근정전이나 인정전에 가보면 바로 앞에 '드므' 라는 큰 가마솥 비슷한 모형에 물을 담아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화마를 쫓기 위한 상징성과 방화수 역할을 하는데, 이처럼 숭례문 현판도 관악산의 산봉우리 모양이 불을 상징한다 해서 화마를 막기 위해 불꽃 모양의 세로로 썼다.

거기에 숭례문의 '예'자는 오행에서 불을 가리킨다. 산에 큰불이 나면 맞불을 놓는 것처럼 숭례문의 현판도 관악산의 화기를 막아 경복궁에 불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 현판은 세종대왕의 맏형인 양녕대군이 썼다고 전해진다. 양녕대군의 호탕한 성격을 엿볼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넘친다.

100년 만에 열린 철제문을 지나 천장을 쳐다보았다. 천장에는 숭례문 안쪽으로 청룡이 그려져 있었고 반대방향으로 황룡이 그려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용들의 발톱이 모두 네 개였다.

용은 왕과 황제를 상징한다. 황제를 상징하는 중국의 용들은 발톱이 네 개 이상이다. 그에 비해 왕을 상징하는 용은 발톱이 네 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예전에 경복궁에서 본 용 장식 중 발톱이 네 개 이상인 것을 본 적이 있으니 꼭 이 말이 맞다고 할 수는 없다.

홍예문 안쪽에서 숭례문을 버티고 있는 장방형의 석재를 볼 수 있는데 거대한 석재가 서로 아귀가 딱 들어맞은 채 단단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서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총탄 흔적들.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 6. 25를 뚫고 지금껏 버티어온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홍예문을 지나 이곳을 둘러보는데 채 몇 분도 소요되지 않았지만 이전에 보던 숭례문의 감흥과는 전혀 딴판의 느낌이 들었다. 꼭 한 번 가보기를 권한다. 숭례문을 둘러보고 남대문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의 쇼핑과 먹거리로 나들이의 즐거움을 더 해 보는 것 또한 좋을 듯하다.

숭례문은 평일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토, 일, 공휴일은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리고 화요일은 정기휴일이다.

* 숭례문 가는 길 : 2호선 시청역 8번 출구에서 삼성본관 건물로 내려오시면 바로 앞에 숭례문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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