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근시간 때문에 더 이상 탈 수 없는 지하철에 몸을 짐짝처럼 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십 분이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일 겁니다.
그렇다면, 천년의 세월을 지금 말하고자 한다면 무척 지루하고 도저히 들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은 이제 분 단위 아니 어쩌면 초 단위로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평일 오후, 저는 그 초 단위의 속도에서 잠시 일탈해보았습니다. 종로에서 탄 초록색 0014번
버스. 버스는 종로, 숭례문을 거쳐 남산으로 올라갑니다. 그 순간, 저는 이미 자연스럽게 국보 1호인 숭례문을 보게 됩니다.
남산도서관까지 답답한 도심과는 딴 판인 멋진 광경이 펼쳐집니다. 높게 솟구친 서울타워의 위용과 남산의 경치가 멋지게 조화를 이룹니다.
그리곤 남산 중턱을 돌아 다시 도심으로 들어온 버스는 잠시 후, 종착점인 박물관 정문에 서게 됩니다. 이것만으로도 제법 괜찮은 경치를
구경한 셈이네요.
이제 박물관을 둘러볼까요? 제가 간 시간은 수요일 오후여서 그런지 거의 사람이 없었습니다.
매표소에서 줄을 서지 않고 표를 끊었습니다.
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장애우들을 배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길을 보고 노인분들에게도 무릎 걱정 없이
쉽게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놓이더군요. 그러나 전동 휠체어가 아닌 수동 휠체어라면 이 경사를 오를 수
있을지 걱정이 되네요. 박물관 앞에서 수동 휠체어를 타고 계신 장애우들이 단체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조금은 마음이 놓입니다.
어찌되었든 그분들께서 쉽게 박물관에 접근할 수 있는 동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박물관은 서관과 동관으로 나뉘고 박물관 유물은 주로 동관 쪽에 배치되어 있더군요. 동관 일층에는
고고관과 역사관이 있습니다. 고고관은 구석기부터 발해 시기까지 나라별로 대표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역사관은 한글, 금석문, 지도
등의 기록물이 당시의 사회상을 알 수 있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2층과 3층은 미술유물이 기증관, 아시아관과 함께 마련되어 있습니다.
백제유물은 사람 혼을 빼놓는 화려한 장신구와 과학적 기구들로 유명합니다. 몇 년 전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의 예술적 탁월성을 여지없이 보여 주었습니다. 백제 여인네들이 장식용으로 했을 꽃 모양 꾸미개를
보는 여고생들의 탄성이 끊이지 않는군요.
한쪽 벽에 있는 산수봉화무늬벽돌을 본 순간, 어떻게 이런 걸 밟고 지나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그렇게 백제관을 나오니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동관 끝 복도 쪽에 이층까지 솟구친 탑이
보이더군요. 이 탑도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해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녔던 비운의 석탑 경천사 십층 석탑입니다. 밑에서 고개를
젖혀 쳐다본 석탑의 아름다움은 제 낡은 디카로는 다 담기가 힘들더군요. 그래서 이층으로 올라가 찍어봤습니다. 역시 이 석탑... 정말
깁니다. 그리고 아름답습니다.
이층에서 미술전시실에 잠시 들어가 보았는데 벽 한 면을 완전히 차지한 불화가 시야를 압박하더군요. 생전
처음 저렇게 큰 탱화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안내문을 보니 1684년 부석사에서 제작한 야외 의식용 불화라고 하더군요.
타고 왔던 버스로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지나고 백년... 천년 후, 우리 또한 박물관에 전시되게 될까요? 그때 후손들은 우리의 문화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요?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군요.
박물관 이용은 당분간 주말은 피하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입장은 올해까지는 무료고 내년에는 유료라고
합니다.
▶ 국립중앙박물관 가는
길
지하철 : 국철과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내려 2번 출구 이용. 버 스
: 초록버스 0014(종로, 숭례문에서 승차, 30분 소요)
초록버스 0211(남대문시장, 서울역에서
승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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