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공소 단지에서 피어난 예술의 녹(綠)

admin

발행일 2010.01.29. 00:00

수정일 2010.01.29. 00:00

조회 3,169

황량하고 거칠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곳에서도 예술은 싹트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예술이 크고 작은 철공소들 사이에서 꽃을 피우려고 한다. 영등포구 문래동 1가 30번지는 ‘문래예술공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시민들을 맞았다. 컬처노믹스의 기반을 보다 장기적으로 다져나가고 있는 서울시창작공간 프로젝트가 또 하나의 거점을 완성한 것이다. 2009년에 문을 연 남산예술센터, 서교예술실험센터, 금천예술공장, 신당창작아케이드, 연희문학창작촌에 이어 2010년 1월 28일 개관한 문래예술공장은 자생적인 예술인마을을 지원하기 위해 탄생한 다목적 예술창작공간이다.

문래예술공장은 영등포구 문래동 3가를 중심으로 한 문래창작촌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본래 문래동은 1930년대 유명 방적공장들이 밀집해있던 곳으로, 1960년대에는 철제 관련 업종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공장 이전 정책과 재개발로 1980년대부터 대규모 공장들이 빠져나가면서 이곳에는 군소 철공상가 및 자동차 정비단지만 남게 되었다.

낙후지역으로 변해가던 이곳에 새로운 희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생활시설과 싼 집세로 인해 홍대 및 대학로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이곳에 새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07년 아동거리극, 이미지 극, 영상쇼 등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경계없는 예술 프로젝트@문래동 - 용광로에서 희망나무를’을 시작으로, 2008년에는 아시아 퍼포먼스 아트 인 서울과 문래공공미술프로젝트를, 2009년에는 문래 오픈스튜디오, 단막극장 프로젝트를 선보여 예술 공간으로서의 신고식을 마쳤다.

앞으로 문래예술공간은 문래창작촌 예술가를 포함한 다양한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 지원을 통해 국제적인 예술가를 키워나가는 인큐베이터 역할과 더불어 시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열린 문화공간의 역할도 수행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이 날 문래예술공장 개관식에서는 ‘문래작업실, 녹(綠)이 피다’라는 주제로 전시회 및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개관전시의 작품들은 실험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1층에 위치한 스튜디오 M30에서는 입체적인 조형물이 주를 이루었다. 권보선 작가의 ‘아가가방’은 너무 마르다 못해 E.T의 형상을 한 아기모양의 가방이 마네킹에 매달려 있는 형상으로, 시기가 시기인 만큼 아이티 지진의 피해를 연상케 했다. 이원우 작가의 ‘Loft’라는 작품은 철제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지 않으면 그 속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실험적 작품으로, 결국 몇몇 관람객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직접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작품들 중 시민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작품은 최문석 작가의 '노젓는 사람들'이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이 보트에서 노를 젓는 모습은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신기했기 때문일까, 몇몇 사람들은 계속 그 작품 주변만 배회했다.

공식행사 전에는 축하 퍼포먼스가 있었다. 기타소리와 노랫소리에 맞추어 줄에 매달린 사람들은 건물의 외벽을 지지대 삼아 걷기도 하고, 점프하기도 했다. 그 다음으로 주요 인사들이 문래창작촌을 상징하는 그래피티를 공개하는 제막행사가 진행되었다. 이에 이어 2층과 3층을 아우르는 박스 씨어터에서는 개관식 공식행사와 함께 ‘녹(綠)이 피다’라는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문래예술공장의 작가들이 모이면서 생기는 사건, 갈등, 그리고 화합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이 퍼포먼스는 저글링을 하는 사나이, 비누방울을 만드는 노인을 통해 관객들을 감탄하게 하기도 하고, 공중그네를 타는 것 같은 갈등 장면을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3층은 발코니 구조로 되어 있는데, 스탠딩 방식으로 박스 씨어터의 공연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포켓갤러리에서 전시도 볼 수 있다. 평면작품을 주로 전시하는데, 그 종류가 다양하다. 독특한 그림은 물론이거니와 거울조각들을 이어 붙여 만든 작품도 있고, 사진 작업들도 있어 다양한 예술을 무료로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전시와 공연뿐만이 아니다. 문래예술공장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작품들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공장 외벽에 있는 박동수 작가의 ‘사람人’은 스테인레스 스틸로 표현한 조감도에 주인의 손 글씨로 작성한 공장 상호들로 언젠가 과거가 될 문래동을 추억하고자 했으며, 공장 내부 천장에 있는 유재중 작가의 ‘Iron Drawing은 철단조 작업을 통해 검은 먹으로 그린 것 같은 평면적 속성을 띈 입체적 작품으로 개성을 뽐냈다.

문래예술공장의 개관 축사 중 이 공간의 의미를 함축하는 말이 있었다. “작업 환경이 열악한 편이었지만 제가 이곳에 자리 잡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들과 마음 따스한 주민들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입주단체인 '경계없는 예술 프로젝트'의 이화원 대표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우리가 가게 위층에서 작업하며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전기세를 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던 철강소 사장님께 특별히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정말 정이 가득한 예술동네가 아닐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모습이 정겹다. 철공소가 많은 특징을 살려 만든 작품들은 그들 사이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무언가를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그들의 창작촌이 국제적 수준의 예술과 특유의 정으로 더 많은 꽃을 피워내겠지, 그런 믿음을 가져본다.

시민기자/고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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