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격려가 필요하다!

admin

발행일 2009.12.03. 00:00

수정일 2009.12.03. 00:00

조회 1,827

11월 어느 날, 중학교 교실에서 만난 면접자들의 이야기

성실, 자주, 협동이라는 교훈과 '바비디 바비디부!'라는 급훈이 걸려 있는 텅 빈 교실. 어색한 표정의 몇 사람이 앉아 있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니 30~40년 전의 옛 기억이 묻어나는 듯하다. 이들도 교실에 앉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조바심 내던 그 시절이 있었으리라. 그때의 꿈은 무엇이었던가. 그 푸른 꿈은 어디 가고 주름만 남아 세월이 지났음을 말해주고 있나. 가진 것이 없어도 열심이만 살면 되겠지, 라고 믿었던 지난 세월. 그래도 쉽사리 나아지지 않는 형편에 때론 좌절을, 때론 울음을 삼켜야 했으리. 이 마음들을 품어 안 듯 작은 씨앗을 준비하는 현장을 찾았다.

지난달 28일. 광진구에 있는 구의 중학교. 유난히 을씨년스런 날씨 탓일까, 학생들이 없는 텅 빈 공간 탓일까. 옷깃을 여미며 빈 교실에 앉아도 채워지지 않는 헛헛한 마음은 표정조차 굳게 만든다. 교실에 늦깎이 학생도 아닌 이들이 모인 까닭은 작은 희망을 품었기 때문. 그 희망이란 서울시 복지정책의 하나인 희망플러스 통장이었다. 신청한 서류가 통과되어 모였던 것. 이제 남아있는 것은 면접 뿐. 어떤 면접이든 긴장되기 마련이어서 애써 웃을 일도 없지만, 굳어가는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조금은 부끄러운 듯, 쑥스러운 듯 묵묵히 책상 끝을 바라보며 차례를 기다린다. 오늘은 그런 날인가보다. 다시 품을 수 없을지도 모를 기회를 기다리는 날.

희망플러스 통장은 일정한 원금을 넣으면, 넣은 원금만큼을 더해 이자까지 챙겨주는 복지정책. 즉, '1+1+이자=목돈'으로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을 돕는 취지다. 그런데 3년의 시간을 꾸준히 넣을 수 있을까? 또 목돈이기는 해도 결코 큰 돈도 아닌데 어떻게 자립이 가능할까 싶지만 신청자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만만한 것도 아니다. 한 달 벌어 의식주를 해결하기도 벅찬 생활에 ‘저축’은 남의 집 얘기처럼 아득했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그나마 재산인 건강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은행 문을 넘기란 쉽지 않은 일. 살아낼수록 문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러니 꿈도 꿔보지 못한 저축을 시작하는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터. 그 계기야 어떻든 도움을 받아 조금씩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면, 짓눌러오던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리라.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부모의 사랑은 밑으로만 밑으로만 흐른다. 면접을 마친 서초구에서 온 김상현(가명, 61세) 씨. 긴장했던지 면접장을 나서자마자 화장실부터 찾는다. 복지관에서 희망근로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는 상현씨. “이제 담담하죠. 됐으면 좋겠지만 안 되도 어쩔 수 없잖아요. 만기가 되어서 목돈을 받으면 전세금에 보태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최소한 부모 노릇은 하고 싶은데, 여의치 않으니……. 좋은 결과가 나와서 전세도 얻고 아이들과 웃으며 살고 싶어요”라며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바쁘게 걷는다. 일상이 있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강한 긍정은 슬픔이다. 학교 건물을 나서던 중랑구에서 온 신미현(가명, 47세) 씨. 어깨에는 배낭을, 손에는 작은 가방을 든 모습은 언뜻 보면 학생 같아 보인다. 작은 가방에는 전단지가 들어있으리라. 일하다가 짬을 내어 면접 보러 왔다는 미현씨. 나이보다 곱고 앳된 얼굴에서는 그녀의 삶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몇 정거장을 걷고 걸으며 들어도 끝이 없는 그녀의 이야기. 아, 이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책 한 권으로 묶어도 모자란다고 말하는 것이었구나. 붙잡고 하소연하듯, 쏟아내는 그녀의 언어는 아픔과 좌절, 그리고 희망의 터널을 넘나든다. 듣다 보니 그 경계가 어딘지 모호해지고, 강한 긍정이 솟아나 천천히 전염이 되고 있다. 슬픔을 감춘 강한 긍정에.

미현씨는 10년 전, 남매를 데리고 이혼을 했다. 이혼 사유야 묻어두고, 현재를 들여다보면 한숨 소리만 커진다. 헤쳐온 일상이 결코 녹록치 않았을 터. “전단지를 돌려 한 달에 70만원을 받아요. 그 중에서 월세 20만원을 내고, 나머지를 가지고 중학생, 대학생 남매를 키워요. 다행히 큰 아이가 딸이라 많이 도움이 되죠.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 자기 용돈도 쓰고 조금씩 생활에 보태주기도 해요. 지금은 친구 같은 딸이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죠”라며, 눈가가 촉촉해진다. 그때 그 시절, 엄마에겐 말도 안하고 담임선생님과 정신병원을 다녔을 정도로 딸의 상처는 컸다. 딸은 어른들에 의해 생긴 생채기를 스스로 치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로써 이를 보듬지 못했던 것이 두고두고 곱씹어져 가슴이 싸하다고. 자식의 마음까지 챙기기엔 먹고 사는데 바빠 허둥거렸고 그럴수록 자꾸만 가라앉았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칠수록 더 빠져드는 늪처럼. 그렇게 보낸 고통의 시간, 그 시간을 벗어나니 끈끈한 가족애만 남아 덧칠되고 또 덧칠되어 셋은 뭉쳤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었으므로. 그래도 생채기는 쉽게 아물지 않아 머리가 뜨거워지고 가슴이 답답해 앉아서 일하는 직업이 버겁기만 했다. 대신 몸을 움직임으로써 마음을 비우는 치유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전단지를 돌리는 일이었고, 그녀가 살아내는 방법이었다.

상현씨와 미현씨처럼 제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찾았을 면접장. 초로의 나이에 텅 빈 교실에 앉아 다시 희망을 품어본다. 이들에게 희망플러스 통장은 작은 씨앗이 될 것이다. 어떤 이가 이 씨앗을 거머쥘지 모르지만, 3년의 시간 동안 낙오자 없이 쭉 이어지길 기대한다. 첫 시험 참가자가 “나는 매일 격려가 필요하다”라고 말한 것처럼, 어쩌면 이들에겐 돈이 아닌 주변의 사랑과 관심이 더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그 절실함이 조금은 해소되기를. 그래서 모두 웃게 되기를 한 해의 마지막 달에 희망으로 품는다. 이들은 인생에 있어 지각생일 뿐이다. 교실 칠판에 적혀있는 12, 14, 31, 34번 오늘의 지각생처럼 말이다.

시민기자/장경아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