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에게 문을 연 대학

admin

발행일 2009.12.02. 00:00

수정일 2009.12.02. 00:00

조회 2,571

인문학 강좌에서부터 레크리에이션까지, 다양한 프로그램 제공

지난 달 24일 오전 도봉 구민회관 강당, 100명 남짓한 주민들이 긴 원을 그리며 음악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소위 레크리에이션 댄스, 건강댄스의 하나이다. 짝을 이뤄 연출하는 경쾌한 몸놀림이 수준급이다. 처음 시작할 무렵인 9월 볼 때와는 전혀 달라진 모습이다. 댄스를 얼핏 선입견을 가지고 본다면 여기선 큰 착각이다. 건강댄스가 레크리에이션의 기본이란다.

이 시간은 평생교육 차원에서 진행되는 노인여가 지도자양성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율동과 노래 그리고 게임과 마술까지 다양한 여가 지도법을 연수받았다. 말 그대로 교육을 이수하면 참가자들은 복지관과 시설을 찾아가 율동과 댄스 등을 지도하며 봉사하게 된다. 참가자들은 벌써 8월부터 매주 화요일 3시간을 연마했다. 16주간 결코 짧지 않은 교육기간이다.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됐지만 2명의 남자를 빼곤 거의 여자들 그야말로 여인천하다. 하지만 남녀구분이 중요치 않다. 여자가 남자 역을 하면 그만이다. 레크댄스를 하기 전 교육생들은 율동으로 몸을 풀고 노래로 목청을 가다듬었다. 교육을 맡은 전영수 교수(경기대)는 얼마 남지 않은 수강일정을 얘기하면서 그간 배운 박수의 종류와 지도요령을 차례차례 정리해준다. 연타박수, 교차박수, 기차박수, 찌개박수, 대문박수. 빨래박수, 번데기박수, 올림픽박수... 그런데 사랑박수만은 특별히 다시 강조한다. 지도자들이 자주 쓰기 때문에 “무릎 두 번, 손뼉 두 번, 시작~”

그들은 8일 종강을 앞두고 발표할 댄스와 율동 준비로 한창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하루 오전을 이렇게 보내고 나면 어떤지 참가자 몇 분에게 소감을 물어봤다. 먼저 최고령인 조한상(남 76) 어르신께 말을 걸었다. 기다렸다는 듯 그는 이 시간 덕분에 ‘회춘’했을 정도로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자2급 강사로 지금도 활동할 만큼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전직 교사 출신인 이근순 할머니는 댄스의 달인이다. 비결을 물었다. 학교에 근무할 땐 바쁘기도 했지만 관심도 없었다는 그는 은퇴 후 본격적으로 댄스를 배웠단다. 할머니의 레크댄스는 나이를 극복한 솜씨로 단연 돋보이고 어딘가 귀엽고(!)고 아름다운 데가 있었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 보이는 실력인데 운동 삼아 참가해 아직껏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11월 초 덕성여대 대강의동 108호, ‘왕릉’에 관한 강좌가 한창이다. 분위기를 스케치하는 필자도 마치 대학생이 된 기분이다. 강의를 듣는 사람들 역시 도봉구 주민들이다. 60명 수강생들은 교수가 전하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강의를 진행하던 김은선 학예사는 “주민들이 너무 진지해 자신이 되레 부담을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13차에 걸친 역사문화강좌는 지역의 역사를 포함 서울의 다양한 역사문화를 담고 있다. 경복궁과 도봉서원 등 현장답사도 있었다. 주민들에게 다소 수준 높은 내용이 일부 있지만 대학 교수진이 수강생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문화해설사를 지망중인 배해진(49)씨는“대학의 차별화된 역사 프로그램에 매우 만족한다”며 반겼다.

두 프로그램은 덕성여대와 도봉구 간의 협력을 통해 마련된 시민강좌 이른바 ‘도봉아카데미’다. 지역 내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이 주민의 평생교육의 거점역할을 맡은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올해 초 서울시 평생교육 프로그램 지원사업 공모에서 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도봉구에서 평생교육이 실시된 후 3개월여 두 프로그램을 지켜보면서 주민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적극적이다. 수업분위기와 태도 그리고 프로그램 내용 등은 학교교육 수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다. 남자 교육 수강자는 거의 없는 편이다. 평일 교육시간대 등 어쩔 수 없는 여건이 있겠지만 여성편중의 프로그램은 공동체적 시민의식의 함양차원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평생교육의 이념처럼 기회와 혜택이 남녀 고루 균등하게 보장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년에도 이런 평생교육 프로그램은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대학이 평생교육의 거점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의 시설과 자원을 더욱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학과 주민과의 소통이 새로운 채널로 탄생한 것은 반가운 현상이다. 주민들이 책을 들고 대학구내를 걷는 모습 그 자체가 아름답다. 평생교육프로그램을 통해 형성된 민관학의 네트워크는 선진화된 시민육성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60년대부터 활동한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1세대인 전 교수는 “이번 프로그램 진행으로 주민들의 여가에 대한 관심과 앞서가는 시민의식를 새삼 확인했다”며 “여가프로그램을 처음 지역사회에 보급한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역사문화강좌를 진행한 덕성여대 김경섭 박물관 학예사도 “보다 흥미로운 역사와 문화 주제를 발굴해 주민들의 소양과 시민의식을 고양하는데 지역에 있는 대학이 일조했으면 좋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한편 도봉구청 평생교육담당 함원석 주임은 “주민들의 참여 열의에 놀랐다”면서“평생교육을 통해 많은 주민들이 더욱 지역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대학 등 평생교육 관련기관과 프로그램 개발을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 평생교육프로그램, 그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로서 시민의 교양이자 소양으로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시민기자/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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