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문화공간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4.11.25. 00:00

수정일 2004.11.25. 00:00

조회 1,293



시민기자 명호숙

내가 구민회관에 도착했을 때는 노란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주부 12명이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11월 12일, 제4회 노원구 동별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경연대회였다. 하지만 아직 정식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고, 그동안 동사무소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미리 무대에서 연습해보는 중이었다. 그녀들이 단상에서 내려오자 얼른 다다가 물었다.

“얼마나 연습해야 그렇게 잘 칠 수 있어요?”
“얼마 안 돼요. 한 열 달쯤 되었을까. 일주일에 한 번씩 취미삼아 친 거라서 아직 아마추어 실력이지요.”

나는 쑥스러운 듯 웃음을 짓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손가락에 단단한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사실 나도 노원구 주민으로서 기타를 잘 치고 싶었다.
“어느 동사무소에 가면 기타를 배울 수 있을까요?”
그녀는 내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는 듯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팜플렛을 건네주었다.

중계4동 기타교실 이외에도 요가, 영어교실, 생활원예, 재즈 댄스 등, 내가 그동안 관심을 갖고 있었을 뿐인 프로그램들이 동사무소별로 죽 나열되어 있었다.
다른 일 때문에 구민회관에 들렀다가 우연히 보게 된 경연대회였지만 참 잘 되었다 싶었다.

우선 모든 대회란 게 다 그렇지만 그 열기가 대단했다.
구민회관 대 강당 800여석을 다 채우고도 모자라서 사람들이 양쪽 옆 통로와 뒤쪽에서 선 채로 지켜보았다.
에어봉, 손털이개, 현수막 같은 응원도구를 흔들면서 각자 자기 팀이 선전하기를 바랬다.

앞서 행사를 시작할 때 노원 구청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게 생각났다.
“과거에 동사무소가 주민등록등본이나 초본, 인감증명서 따위의 서류나 떼는 곳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려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별 자치센터가 실행하고 있는 각종 프로그램이 잘 정착되고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주민들을 찾아가길 바라며 이를 계기로 서로 화합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물론 이 외에도 여러 말씀을 하셨지만, 이런 측면으로만 본다면 동사무소의 낡은 이미지를 탈바꿈하는데 이미 성공한 듯이 보였다.
총 22개 지역 300여명이 참석해서 기량을 펼친 무대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년 동안 배우고 익힌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름대로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석 달 동안 단돈 15,000원으로 취미 생활을 하고, 거리가 가까운데다 동네 사람들과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어서 좋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았으니까.

응원전을 펼치는 객석의 인원 구성도 다양했다. 거동이 조금 불편해도 꼭 보고 싶었다는 중계동 70대 할아버지, 구민회관 노래교실을 마치고 삼삼오오 무리지어 참석한 아주머니들, 딸의 손을 꼭 잡고 나란히 앉으신 상계9동 어르신과 사랑의 김장 담그기 행사를 마치고 온 공릉동 적십자 부녀회원 등. 각 동 경연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한마음이 되어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 날은 노원구와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인 포천시 포천동에서도 스포츠 댄스를 선보였다. 그래선지 무대에서 현란한 동작으로 스텝을 맞추는 포천동 주민들이 훨씬 정겹게 느껴졌다.
응원상(상계2동)과 특별상(포천동)을 포함, 총 10개팀이 상을 받았는데, 영예의 최우수상은 ‘진도 북놀이’를 선보인 상계5동에게 돌아갔다.

경연장을 나오니 벌써 날이 어둡다. 집으로 종종걸음 치는 사이, 내 머리 속이 바쁘게 움직인다. ‘우선 클래식 기타를 등록하고 요가도 한번 해볼까. 시간만 맞으면 둘 다 배웠으면... 내일 아침엔 해당 동사무소로 전화부터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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