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황금빛 성균관 은행나무 절정, 지금이야!

시민기자 양인억

발행일 2020.11.10. 17:37

수정일 2020.12.28. 15:19

조회 308

2017년,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0, 서울편2’에 나온 '11월 첫째, 둘째 일요일에는 성균관' 내용을 본 후 이를 따라 하고 있다. 단풍 시기가 워낙 들쭉날쭉하기도 하지만 요즘처럼 기후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그 변동폭이 더욱 더 커졌다. 때문에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환상적인 은행나무 단풍을 보고자 애쓴다. 올해는 SNS 검색의 도움으로 지난 11월 3일 절정에 다다른 노란빛의 향연을 즐길 수 있었다.

성균관 은행나무의 찬란한 황금빛은 보는 이의 넋을 빼앗을 정도이다. 성균관 은행나무는 역사성, 크기(수고 26m, 둘레 12m), 수령(약 500년)을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59호로 지정되었다. 모두 4그루의 노거수 은행나무가 있는 성균관은 조선시대 교육기관(명륜당)이자 공자와 역대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향사 공간(문묘, 대성전)이다. 다른 나무들과 달리 단풍 절정 후 낙엽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은행나무 특성상 아마도 이번 주말이 성균관 은행나무 단풍을 즐기는 최적기라고 생각된다.


관학 최고학부인 성균관은 '서로 편을 나누지 않고 당을 나누지 않아야 한다'라는 탕평비 (영조18년, 1742)가 세워질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관학 최고학부인 성균관은 '서로 편을 나누지 않고 당을 나누지 않아야 한다'라는 탕평비 (영조18년, 1742)가 세워질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양인억

성균관 대학교 정문 우측에 위치한 성균관과 문묘. 성균관의 은행나무 노거수에서 성균관 대학교 심벌에 왜 은행나무 잎이 그려져 있는지 이해가 간다
성균관 대학교 정문 우측에 위치한 성균관과 문묘. 성균관의 은행나무 노거수에서 성균관 대학교 심벌에 왜 은행나무 잎이 그려져 있는지 이해가 간다 ⓒ양인억

문묘의 정문인 ‘신문 (또는 삼문, 신삼문)’은 성현들의 넋이 드나드는 문이다, 좌측의 비각은 태조 7년(1398) 창건된 서울 문묘 (성균관)의 연혁을 기록한 ‘묘정비'를 보호하고 있는 ‘묘정비각’이다
문묘의 정문인 ‘신문 (또는 삼문, 신삼문)’은 성현들의 넋이 드나드는 문이다, 좌측의 비각은 태조 7년(1398) 창건된 서울 문묘 (성균관)의 연혁을 기록한 ‘묘정비'를 보호하고 있는 ‘묘정비각’이다 ⓒ양인억

신삼문에서 공자의 위패가 모셔진 대성전을 바라본 문묘
신삼문에서 공자의 위패가 모셔진 대성전을 바라본 문묘 ⓒ양인억

대성전 월대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좌·우측 동·서무에는 공자의 제자,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문묘가 제향 공간이므로 신도가 신문에서 시작된다
대성전 월대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좌·측 동·무에는 공자의 제자,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문묘가 제향 공간이므로 신도가 신문에서 시작된다 ⓒ양인억

문묘에서 일하던 남자 하인들의 거처인 '수복청'(사진 중앙)과 제사 때 사용하는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좌측)
문묘에서 일하던 남자 하인들의 거처인 '수복청'(사진 중앙)과 제사 때 사용하는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좌측) ⓒ양인억

성균관 은행나무 최적의 관람 장소는 대성전 뒤편 처마와 담장이 액자 틀이 되어 주는 공간이다
성균관 은행나무 최적의 관람 장소는 대성전 뒤편 처마와 담장이 액자 틀이 되어 주는 공간이다 ⓒ양인억 

문묘 관람을 마치고 성균관의 강학 공간인 명륜당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작은 문을 지나야 한다
문묘 관람을 마치고 성균관의 강학 공간인 명륜당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작은 문을 지나야 한다 ⓒ양인억

명륜당 월대에서 인증사진을 남기고 있는는 시민들이 두 그루의 은행나무 단풍 사이로 보인다
명륜당 월대에서 인증사진을 남기고 있는는 시민들이 두 그루의 은행나무 단풍 사이로 보인다 ⓒ양인억

성균관 유생들을 귀하게 여긴 조선시대 임금들은 수시로 성균관에 거동했다. 명륜당 내부에는 많은 현판이 걸려 있는데 ‘명륜당’위의 긴 글은 정조가 은술잔을 하사하면서 지은 시에 붙인 서문이다. ‘태학 은배 시서’ 서문에는 학생들을 격려하는 정조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한다.
성균관 유생들을 귀하게 여긴 조선시대 임금들은 수시로 성균관에 거동했다. 명륜당 내부에는 많은 현판이 걸려 있는데 ‘명륜당’위의 긴 글은 정조가 은술잔을 하사하면서 지은 시에 붙인 서문이다. ‘태학 은배 시서’ 서문에는 학생들을 격려하는 정조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한다. ⓒ양인억

명륜당 월대에서 바라본 두 그루의 은행나무. 좌측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이고 우측은 한국전쟁 당시 상처를 입은 후유증으로 상대적으로 수세가 약해 보인다.
명륜당 월대에서 바라본 두 그루의 은행나무. 좌측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이고 우측은 한국전쟁 당시 상처를 입은 후유증으로 상대적으로 수세가 약해 보인다. ⓒ양인억

명륜당 건물 앞 마당에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가을의 절정을 알리고 있다
명륜당 건물 앞 마당에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가을의 절정을 알리고 있다 ⓒ양인억

성균관의 유생들은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에서 생활한다. 아침을 알리는 북이 동재에 걸려 있다
성균관의 유생들은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에서 생활한다. 아침을 알리는 북이 동재에 걸려 있다 ⓒ양인억

동재의 출입은 명륜당 마당 쪽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나 있어서, 명륜당 안쪽은 번잡하지 않았다고 한다
동재의 출입은 명륜당 마당 쪽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나 있어서, 명륜당 안쪽은 번잡하지 않았다고 한다 ⓒ양인억

동·서재에서 생활하던 성균관 유생들의 전용식당인 진사 식당. ‘ㅁ’자 형태의 건물로 긴 벽면 맞은편에 동재가 위치해 있다
·서재에서 생활하던 성균관 유생들의 전용식당인 진사 식당. ‘ㅁ’자 형태의 건물로 긴 벽면 맞은편에 동재가 위치해 있다 ⓒ양인억

성균관 소속 정3품 이하 관원들이 업무를 보는 정록청이 정감 있다
성균관 소속 정3품 이하 관원들이 업무를 보는 정록청이 정감 있다 ⓒ양인억


■ 성균관
○ 위치 :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31
○ 홈페이지 : http://www.skk.or.kr/s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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