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황제의 궁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발행일 2020.10.22. 17:30
을미사변 이후 러시아공사관에 파천해 있던 고종은 1897년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환어한 후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이로써 경운궁은 대한제국의 정궁이 되었고 궁역의 확장과 전각 건설을 통해 현재 넓이의 3배에 달하는 큰 궁궐이 되었다. 고종은 앞선 서양식 문물을 도입하는데 적극적이었고 경운궁 안에 서양식 건축물들을 건립하였다. 석조전은 고종이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하고자 세운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서양식 석조건물이다. 엄격한 비례와 좌우대칭이 돋보이는 19세기 서양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1층에는 접견실 등의 업무공간을, 2층에는 황제의 침실, 서재 등을 갖추었다.
하지만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 이후 경운궁은 황제의 궁궐로서의 위상을 잃고 궁호도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계속해서 일제에 의한 훼손이 이어지다 1930년대에는 공원화가 진행되었고 석조전 내부도 미술관으로 개조되었다. 이 때문에 덕수궁은 궁궐보다는 공원이라고 인식되었다. 덕수궁이 황궁이었다는 사실은 잊혀 왔다. 현재 석조전은 2014년 복원공사를 통해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자주적 근대국가를 꿈꾸다 좌절한 대한제국의 황궁과 황제의 공간을 살펴볼 수 있어 역사의 산 교육 현장으로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석조전의 정면 모습. 전면의 서양식 분수정원은 덕수궁의 공원화가 이루어진 193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정규
석조전은 삼각형의 박공 전면에 오얏꽃 문양이 있어 황제의 건물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정규
1층 전시실에서는 당시 경운궁의 축소 모형 등 '대한제국 황제의 궁궐'이라는 주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정규
황제의 어좌인 용상과 그 뒤의 곡병에는 화려한 용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정규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난간에도 황제의 권위가 새겨져 있는 듯하다 ⓒ이정규
1층의 중앙홀은 2층의 중앙회랑으로 이어지며 위엄 있는 공간을 구성한다 ⓒ이정규
석조전의 건축에는 영국인 기술자들이 건축설계와 실내 디자인을 맡았고 영국 가구회사가 가구를 납품하였다 ⓒ이정규
황제의 색인 황금빛으로 장식된 침실. 가구에는 'EMPEROR'S BEDROOM'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정규
황제가 책을 보거나 가까운 손님을 맞이하던 서재 ⓒ이정규
짙은 보랏빛으로 장식된 황후 침실의 모습. 재현된 4개 방의 가구 중 일부는 석조전 준공 당시의 가구들이다 ⓒ이정규
황후 거실의 모습으로 다른 방들에 비해 가구가 화려하며 'EMPRESS'S BOUDOIR'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정규
■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 관람시간 : 1, 2층 전시실은 09:30 ~ 17:30 지층 전시실은 09:00 ~ 18:00
○ 관람방법 : 1, 2층 전시실은 사전예약제. 지층 전시실은 자유관람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홈페이지 : http://www.deoksugung.go.kr/
○ 문의 : 02-751-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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