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역~종로 1가역 '나 홀로' 도보 역사여행!
발행일 2020.03.17. 17:39
안국역은 개화운동과 3.1운동 등 독립운동의 핵심 거점이었다 Ⓒ박세호
코로나19 사태를 이기려면 질병관리만큼 중요한 것이 시민들의 면역력이라고 한다.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햇볕을 쬐며 가벼운 운동이 필요하다. 요즘 필수 매너! 마스크를 챙겨 나 홀로 걸으며 역사여행을 떠나보는건 어떨까? 햇빛, 면역력, 긍정적인 마인드에 역사 공부의 기회까지 살릴 수 있다! 도보로 떠나는 역사여행은, 안국역 4번출구 100년 하늘문→운현궁→1894년 개교한 한국 최초의 교동초등학교→종로3가역 5번출구 낙원동 돼지국밥 골목과 송해길→탑골공원→태화관으로 이어지는 코스이다. 모두 역사적인 명소들인데, 자세히 살펴보자!
3호선 안국역 (1919년)
3.1운동은 3월 한 달 내내 전국 각지 만세운동으로 번졌다 Ⓒ박세호
서울시는 2018년 3월 1일, ‘독립운동 테마역-안국역’ 명명식 후 독립운동과 임시정부를 주제로 한 전시공간을 조성했다. 안국역에서는 독립운동가의 얼굴을 100초간 만나는 ‘100년 기둥’과 임시정부 청사 대문을 표현한 ‘100년 하늘문’, 민족사를 묘사한 ‘100년 강물’, 민주 헌법을 강조한 ‘100년 헌법’, 김구,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이봉창 등 애국지사들 어록인 ‘100년 승강장’, 독립운동가 이름을 새긴 ‘100년 걸상’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운현궁 (1870년 전후)
대원군 사저였던 운현궁 대문 Ⓒ박세호
서울특별시 사적 제257호인 운현궁은 조선왕조 제26대 임금 고종이 성장한 곳이며 흥선대원군의 사저였다. 대원군은 운현궁에서 집권과 하야한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내외에 행사했다. 대원군의 후손인 이청(1936- )씨가 1991년 운현궁 양도 의사를 제기해 서울시가 매입했다. 고종 3년(1866) 3월 21일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를 운현궁에서 치렀다. 1,641명의 수행원과 700필의 준마가 동원됐다. 매년 고종 명성황후 가례 재현행사에서는 궁중생활의 화려한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운현궁 유적실에는 병인양요, 운양호사건, 강화도조약 등 사진과 설명이 잘 진열되어 있어서 한국사 공부에 도움이 된다.
운현궁에서 답사를 하며 해설자의 설명을 듣는 일행 Ⓒ박세호
교동초등학교 (1894년 개교)
교동초등학교는 한국 최초의 초등학교이다. 1894년(고종 31년) 개교했다. 바깥 담벼락에 역사자료가 소상히 게시되어 있어, 통행인과 외국인들까지 관심을 보인다. 125년간 윤보선 전 대통령, 윤치영 전 내무부 장관, 소설가 심훈, 아동문학가 어효선, 윤석중, 작곡가 윤극영, 희극인 구봉서, 영화배우 강수연 등 명사를 배출했다.
교동초교의 유구한 역사는 담장 위에 단정하게 내걸린 학교 소개와 연표가 말해준다 Ⓒ박세호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서울시 최소 학생수의 초등학교였다. 그러나 지난 해 44명이 입학해 최하위를 탈출했다. 오케스트라, 사물놀이, 스키, 빙상, 판소리 등의 과정이 보완되고, 인성교육 및 친밀도 등에서 화제가 된 결과이다. 학부모들의 문의 전화가 많아 앞으로도 입학생 수는 더 늘어날 것 같다.
1894년 한국 최초로 문을 연 학교인 관립교동소학교의 표지석 Ⓒ박세호
낙원상가 골목 거리 (1945년 이후)
탑골공원 담을 따라가면 돼지국밥집 골목에서 부담없는 가격의 식사를 만난다. 해방 후 교육 중심지였던 곳이다. 단국대, 건국대, 보성전문학교 등 교육기관들이 이름을 올렸었다. 낙원상가는 1965년 재개발하며 지어진 주상복합 건물이다. 음악인과 악사들의 만남의 장소로 분주했던 곳이다. 흘러간 명화들의 간판에 둘러싸인 곳도 있다.
송해 길 보존회에서 진입구에 세운 설치물 Ⓒ박세호
개봉관이던 '허리우드 극장'이 '추억을 파는 극장'으로 바뀌었는데, 어르신들이 저렴한 입장료에 문화생활을 즐기고 서로 반갑게 만나는 곳이다. 때로는 흘러간 연예인들이 추억의 공연을 베푼다. 떡집, 전집 거리, 식당가 등으로 북적댄다. 방송과 입소문을 탄 ‘송해 길’도 유명하다. 낙원상가에서 종로2가까지는 송해 선생이 제2의 고향으로 여겼던 곳이다. 고령화사회에서 낙원동은 실버세대에 특화된 전통과 추억의 거리이다. 더불어 백세시대 희망의 새 보금자리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낙원동 돼지국밥 골목과 송해 길 귀퉁이의 영화 포스터 Ⓒ박세호
탑골공원 (1919년 3.1만세운동)
3.1운동의 발상지인 탑골공원은 고종 때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 공원이다. 조선 초기 '흥복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조선 제7대 왕 세조가 집 200채를 허물고 동 5만 근으로 10층 석탑을 만들어 원각사로 중건했다. 제10대 왕 연산군이 엉뚱하게 이곳에 기방을 두었으나, 중종반정으로 쫓겨났다. 중종 때 사찰은 철폐되고 석탑만 남았는데, 이것이 원각사지십층석탑으로 국보 제2호다. 원각사지십층석탑의 손상을 막으려고 유리보호막을 세워둔 것이 보인다. 1919년 3월 1일, 팔각정 앞에 군중들이 모였을 때 학생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다. 이 팔각정은 고종이 공원을 만들 때 만들어졌다.
3.1운동의 발상지 탑골공원의 팔각정 Ⓒ박세호
유리보호막을 세운 원각사지십층석탑 Ⓒ박세호
1919년 태화관(현재 태화복지재단 빌딩)
태화관(泰和館)은 일제강점기 초기, 이완용의 소유였다. 그러나 건물이 벼락을 맞은 후 타인에게 매각을 했는데, 그 결과 명월관의 부속 건물이 되었다. 3·1운동때 손병희, 한용운을 비롯한 민족대표 33인 중 29명이 여기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는 일본 경찰에 연행됐다.
오른쪽 두 번째 위치한 하얀색 12층 건물이 태화관(태화복지재단빌딩) Ⓒ박세호
이후 인근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 시민들이 독립선언 후 일제히 만세 시위운동에 들어갔다. 그 당시의 태화관이 지금은 12층짜리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건물(태화빌딩)이 되었다. 종로1가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이다.
태화관 자리에 위치한 3.1운동 100주년 기념비 Ⓒ박세호
태화빌딩 로비에서 볼 수 있는 태화관에서의 독립선언식을 담은 기록화, '민족대표 삼일독립선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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