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수표교는 가짜? 돌다리의 우여곡절
발행일 2020.02.04. 16:28
중구 장충단공원에는 역사가 매우 오랜 돌다리가 하나 있다. 공원 입구 대로변에 놓여 있는 이 다리는 다름 아닌 수표교(水標橋)다. 지난 1965년에 설치된 이래로 지금까지 55년 간 공원을 오롯이 지켜왔다. 수표교는 사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곳에 놓인 기간 보다 10갑절도 더 오랜 연륜을 자랑한다. 조선 초기인 1420년(세종 2)에 만들어졌으니 올해로 딱 600년이 된다.
조선 초기에 화강암으로 만든 돌다리가 장충단공원에 놓여 있다. ⓒ염승화
돌다리 수표교의 겨울 전경이 아름답다 ⓒ염승화
수표교는 조선 초기 청계천에 광통교와 더불어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돌다리다. 길이는 27.5m, 폭 7.5m, 높이 4m 규모다. 이후 1441년(세종 23)에 다리 앞 물 가운데에 돌 받침대를 설치하고 목재로 된 수표가 세워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처음 불린 마전교(馬廛橋)에서 수표교로 이름이 바뀐다.
하지만 1959년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안타깝게도 반세기 동안 지키고 있던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된다. 종로구 홍제동을 거쳐 1965년 현재 자리인 장충동으로 또 이전되는 떠돌이 신세가 된 것이다.
수표는 조선 영조 때 만든 것으로 3m 높이 돌기둥이다. ⓒ염승화
청계천의 물 높이를 측량하던 수표 역시 마찬가지다. 다리와 함께 속절없이 제 갈 길을 잃고 만다. 수표교가 자리를 잡기 전인 1959년 장충동으로 옮겨졌다가 1973년에 다시 현 위치인 세종대왕기념관(동대문구 회기로)으로 자리가 바뀐다. 그런데 이 수표는 세종대왕 때 것이 아니고 훗날 18세기 영조 임금 때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길쭉한 세로형 돌기둥 모양의 수표는 높이 3m, 폭 20cm쯤이다.
돌기둥에 글씨를 새겨넣어 수면 위치를 가늠하게 만든 수표교 ⓒ염승화
온갖 우여곡절을 지닌 수표교에 부여되는 가치는 매우 크다. 우선은 역사가 오래된 점 외에도 제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청계천의 유일한 다리라는 의미가 손꼽힌다. 건립 당시 토목기술의 수준을 나타내는 역사성과 상징성은 기본. 뿐만 아니라 여러 문양을 넣은 독특한 난간을 조성해 놓은 점, 돌기둥에도 수면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도록 1760년(영조 36) ‘경진지평’(庚辰地平)이라는 글씨를 새겨 넣은 특징들도 찾아볼 수 있다. 수표가 보물(제838호)인 국가지정 문화재로 보호 받고 있는 것처럼 차제에 서울시유형문화재(제 18호)인 이 다리도 국가문화재로 격상시켜 보존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청계천에 놓여 있는 가짜 수표교, 진짜 수표교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염승화
지난 주말 서울 정도와 함께 600년 풍상을 묵묵히 겪어온 수표교를 보러 장충단공원에 다녀왔다. 같은 날 오후 눈으로 직접 수표를 확인하려고 세종대왕기념관을 방문한 데 이어 내친김에 청계천 ‘새 수표교’까지 가보았다. 이 다리는 청계천을 복원할 때 새로 세운 것이다. 본래의 수표교와 이름만 같을 뿐 생김새도 재질도 ‘진짜 수표교’와는 전혀 다른 가짜이기에 아쉬운 마음이 크게 인다.
조선 초기 청계천에 놓인 돌다리 중 유일하게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보물 돌다리 ⓒ염승화
조선 영조때 개축한 뒤 그 표식으로 '정해개축' 등 글씨를 새겨 넣었다. ⓒ염승화
연꽃 봉오리를 형상화한 난간 기둥을 만져보며 수표교를 건넌다. 다리 주위로 펼쳐지는 풍광이 스산하다. 겨울철이기도 하거니와 수표가 없는 수표교라는 생각이 든 때문인지 왠지 매우 썰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경 사진을 몇 장 찍은 뒤에 공원 입구에 있는 정자 옆 샛길을 따라 다리 밑으로 내려간다. 다리 밑 돌기둥들과 상판을 확인하려는 생각이다. 돌기둥들은 특이하게도 육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모두 가로 9줄 세로 5줄로 세워져 있다. 그 사이를 이리 저리 지나며 살펴본다. 돌기둥들은 다리 밑을 흐르는 물살로부터 마찰과 저항을 줄이고자 비스듬히 마름모꼴로 놓았다고 한다. 이것은 곧 당시의 건축 수준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다리 상판 겉이 부드럽고 반들반들한 것과 달리 다리 밑에서 올려다 본 천정, 즉 상판 밑바닥은 울퉁불퉁 자연석의 표면 그대로 투박하고 거칠다. 다리 상판 측면에서는 ‘정해개조’(丁亥改造)라고 새겨진 글씨도 발견한다. 이 글씨는 그해, 즉 1767년(영조 43)에 다리를 개축했다는 표식이라고 한다.
수표교와 함께 있던 수표도 수표교처럼 이리저리 옮겨졌다. ⓒ염승화
수표 표면에는 수량 높이를 파악할 수 있도혹 일정 간격으로 눈금이 그어져 있다. ⓒ염승화
보물 수표는 세종대왕기념관 앞마당 한편 누각 안에 서 있다. 나무 창살 안에 있기에 공연히 갇혀 있다는 느낌마저 퍼뜩 든다. 오로지 진짜 수표를 보려는 일념으로 이곳을 찾았으나 생뚱맞다 싶다.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던 수표가 어인 영문으로 이 자리로 와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수표는 수표교와 함께 있어야 비로소 존재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수표는 후세 위정자들이 제멋대로 이리저리 장소를 옮겨 놓은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 서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표의 표면에는 본래 쓰임새에 걸맞게 눈금이 음각으로 여러 줄이 그어져 있다. 1자에서 10자까지 새긴 눈금 한 칸은 평균 21.5cm라고 한다.
2005년 10월 인공 하천으로 복원된 청계천에는 해마다 관리비(유지보수비)로 평균 약 78억 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 유지보수비 문제 해결을 포함해 수표교를 제 자리로 옮겨 놓는 내용의 ‘청계천 2050 마스터플랜’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사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수표교 복원 추진은 다리의 원형 훼손 우려와 막대한 이전 비용 문제가 대두되면서 ‘최장기 과제’로 미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표교와 수표가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안타깝게도 수표교와 전혀 닮지 않은 수표교가 놓여 있다. ⓒ염승화
청계천이 제 모습을 찾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청계천 역사의 당위성 문제이고, 그것은 곧 수표교를 비롯한 청계천 내 문화재의 제 모습 찾기라고 생각한다. 남대문과 동대문이 각각 원래 자리에 있기에 그 가치가 더욱 존중받는 것처럼 수표교와 수표를 비롯한 ‘청계천 문화재’들도 원래 자리나 모습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그 의미가 배가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다시금 수표교와 수표의 이전 복원 논의를 적극 전개할 것을 촉구 및 고대한다.
장충단공원과 세종대왕기념관 한쪽에 각각 외로이 놓여 있는 수표교와 수표 방문을 통해 우리 주변의 문화재 보존 가치와 의의를 되새겨보는 좋은 기회를 맞아보면 어떨까 싶다.
■ 수표교와 수표 관람 안내
○ 수표교
- 위치 : 서울시 중구 동호로 261(장충동) 장충단공원 내
- 교통 :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 > 바로 연결 공원입구 > 약 60m 도보 약 1분 수표교
- 운영 : 연중무휴 / 관람료 없음
- 문의 : 중부공원녹지사업소 02-3783-5900
○ 수표
- 위치 :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로 56(청량리동) 세종대왕기념관 앞뜰
- 교통 : 지하철 6호선 고려대(종암)역 3번 출구 > 약 700m 도보 약 10~12분 > 세종대왕기념관
- 운영 : 매주 월요일, 1/1, 추석.설날 당일 휴관 / 관람료 없음
- 문의 : 세종대왕기념관 02-969-8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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