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궁궐을 아는 첫걸음, 경복궁을 거닐다
발행일 2019.11.04. 16:03
지금은 옛 모습을 모두 갖추지 못했지만 경복궁은 조선왕조 들어서 가장 먼저 지어진 궁으로 왕실의 각종 의례와 사신 접대에 맞게 건물 규모나 형태를 정비하여 조선 정궁의 면모를 갖춘 곳이다.
광화문을 통해서 들어오면 대궐 문 앞에는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 나라의 최고급 관청인 육조가 좌우에 도열한 육조대로가 열려 있다. 경복궁의 궁궐 내부는 남북 직선 축 선상에 정문과 정전, 편전, 침전이 일직선으로 나란히 배열되어 질서정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경복궁 입구 ©최홍대경복궁은 군주가 남쪽을 면해서 조정을 바라보도록 한다는 유교적 통치 질서를 반영하여 만들었으며 이곳에서 정치적으로 대체적인 일은 신하들의 몫이고 국왕은 단지 최종적인 결정만 내린다.
경복궁 궁궐 ©최홍대가장 품이 낮은 신하부터 영의정까지 순서대로 자리하는 곳을 지나면 본격적인 궁궐탐방이 시작된다. 정 1품부터 9품까지 우측에 도열하고 종 1품부터 9품까지 좌측에 도열하는 곳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등장한다. 이곳에서 하는 국가적인 유교 의례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천지신명께 제사 지내는 길례, 둘째는 나라의 경사를 축하하는 가례, 셋째는 손님을 맞는 빈례, 넷째는 출정하는 군사들을 격려하는 군례, 다섯째는 장례를 당하여 치르는 흉례이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는 가례를 올리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궁궐 내부 ©최홍대
유교 의례를 치르는 일 외에 궁궐은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 궁궐은 크게 외전과 내전으로 나뉘었으며 외전은 정전과 편전, 내전은 거주하는 사람들의 건물이기에 수가 많았다.
아름다운 경복궁 경회루 ©최홍대수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궁궐의 정점에는 왕과 왕비가 있었다. 침전, 서재, 별당, 전각, 후원은 모두 궁궐을 위해 필요한 건물들로 자리하게 된다. 모든 기술이 집약된 궁궐은 당대 최고의 건축기술과 최고의 자재, 최고의 격식을 갖추어 지어졌으며 궁궐 건축은 조선왕조의 모든 역량이 결집되어 만들어진 구조물인 동시에 예술품이었다. 그런 궁궐이 있는 곳에 근대 역사 독립운동의 주역이 자리한 것은 남다른 의미가 부여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종황제의 공간 ©최홍대궁궐을 둘러보았다면 고종황제가 조선의 마지막을 보내며 입었던 옷과 다양한 물품들이 자리한 곳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이곳에는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다양한 의복과 그 후손들의 흔적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명성황후 의복 ©최홍대
명성황후는 생가에서 8살까지만 살았다. 조선 중기 이후 양반가의 살림이 어떠하였는지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장소이면서 일찍 아버지를 여읜 소녀 민정호(자영)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유추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보통은 대원군이 집안의 기가 쇠한 양반가의 여식을 선택했다고 알려져있는데 실제 명성황후의 가문은 명문가였다고 한다.
고종황제 의전차 ©최홍대
조선왕조는 500여 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존속했던 한반도의 국가였다. 그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그 중 왕실의 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경복궁을 찾는 이유는 우리의 흔적을 찾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기술이 집약된 왕궁을 보면서 우리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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