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듯, 잊히지 않은 '광희문' 지나 한양도성 한 바퀴
발행일 2019.09.30. 10:46
대낮의 광희문, 사람들이 문루 앞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송의현
여기, 서울 안에서도 '잊힌 듯한' 곳이 있다. 하지만 정작 가보면 그 길에서 느껴지는 묘한 정취에 매료되어 잊히지 않는 곳이다. 바로 여기, 광희문이다.
광희문은 조선 태조 때 지어진 한양도성의 성문 중 한 곳이다. 흥인지문과 인근 DDP에 가려져 있는 이 문의 또 다른 이름은 '수구문'이다. 바로 옆 DDP 안에 있는 이간수문 때문이다. 이 문에는 또 다른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도성 내의 마을, 궁궐에서 장례가 있을 때 그 장례 행렬이 나가는 문이었다고 하여 '시구문'이라 불렸다고 한다.
광희문은 흥인지문과 다산성곽길 사이에 있다 ©송의현
광희문은 위치도 흥인지문과 남산 다산성곽길 사이에 있어 이름이 혹시 '남소문'이 아닐까?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남소문은 따로 있다. 한양도성 성문이 다 만들어지고 난 후에 세조 때 남산 가는 길목에 새로 남소문을 만들었다. 그러나 남소문은 한양도성의 정동남방에 위치해 풍수지리적으로 안 좋은 위치였다.(남소문 터는 국립극장 인근에 있다.)
그래서일까. 남소문을 만들고 13년 후 예종 1년, 의경세자 (예종의 형, 세조의 첫째 아들)가 사망했다. 게다가 남소문은 한양도성에서 한강나루까지 용이하게 갈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정작 사람들은 흥인지문과 숭례문, 광희문을 통해 나간 후 돌아서 한강나루로 가지 아무도 남산어귀까지 가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남소문은 폐문되었다.
광희문쪽 한양도성의 안쪽 모습 ⓒ송의현
광희문쪽 한양도성의 바깥쪽 모습 ©송의현
광희문의 옆으로는 한양도성이 있는데, 한양도성의 안쪽과 바깥쪽이 어땠는지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도성 안쪽에는 큰 잔디밭 둔덕이 있는데, 지금 용도야 당연히 문화재 보호용이긴 하다. 그러나 한양도성이 축조될 당시에는 성곽 내에 같이 쌓은 이 둔덕을 통해 도성 내에 방어 기능을 수행했다고 한다. 이를 '판축층'이라고 하는데, 옹성이 없는 한양도성 내성부 지역들에서 보이는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중구청에서는 광희문 인근 지역을 야간에 둘러볼 수 있는 '광희문화마을 달빛로드' 투어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한다 ©송의현
광희문에서 중구 청구로~동호로 20길까지의 구간은 한양도성 유실구간이다. 이 유실구간은 서울에서 두 번째로 긴 유실구간이다. 가장 긴 유실구간은 당연히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초기의 여러 일을 겪으면서 유실된 숭례문~돈의문~행촌마을까지의 구간이고, 그 다음으로 긴 곳이 바로 여기 광희문~다산성곽길(신라호텔)까지의 구간이다. (그 외에도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담긴 회현성벽 유실구간이 있었으나 최근 발굴되어 복원이 진행 중이라 유실구간에서 드디어 빠졌다.)
유실구간 내 주택가에는 다양한 주제의 벽화가 있다 ©송의현
이 유실구간은 전체적으로 주택가로 되어 있다. 그래서 처음 와보는 사람들에게는 자칫 심심한 느낌까지 줄 수 있다. 그러나 청구로 지역에 있는 자잘한 상점과 카페들, 그리고 동호로 20길 지역으로 가면 보이는 몇몇 대저택들과 맨션, 그리고 유실구간 끝에 있는 신당동 성당의 성상의 느낌이 살짝 고풍스럽기까지 한 곳이기도 하다.
유실구간 끝에서 만나게 되는 신당동 성당 모습 ©송의현
이제 이 길끝에서 횡단보도만 넘으면, 다산성곽길에서 다시 한양도성은 이어진다 ©송의현
이제 이 유실구간을 지나서 신라호텔 방면으로 가면 다산성곽길로 한양도성이 다시 이어져 나온다. 이 길을 걸으면서 이 구간이 유실되지 않고 그대로 한양도성 성곽이 쭉 이어져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오래된 성벽이 훼파되어 없어진 아쉬움도 컸지만, 뭔가 긴 한양도성의 맥이 탁 끊겨버린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유실된 성벽의 구간에 주택가가 들어서고, 작은 카페와 가게들, 편의점들이 들어서고, 그 곳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성벽은 없어졌지만, 그 자리를 사람들이 메꾸었다.
그래서 “잊힌 듯했던” 광희문은 잊히지 않았다. 그곳에, 사람들이 계속 있기 때문이다.
■ 광희문
- 위치 : 서울시 중구 광희동 2가 105-3
- 문의 : 02- 3369-5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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