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미래를 다짐하며…남산 '국치길'을 걷다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19.09.04. 17:08

수정일 2019.10.10. 16:22

조회 117

어린이들이 기억의 터 공원에서 뛰어놀고 있다 ⓒ이선미

1910년 8월22일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하고, 8월29일 ‘대한제국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한다는 내용의 조약을 공포했다. 국권을 고스란히 내준 강제조약이었다. 일본은 이를 ‘한일합방’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명백히 ‘국권피탈(國權被奪)’이었다. 경술년 국치였다.

지난 8월29일, 국권을 빼앗긴 그 역사의 현장을 찾았다. 거의 백 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이곳에 2010년 통감관저 표지석이 세워졌고, 3년 전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기억의 터’ 공원이 조성되었다.

서울시는 이날 통감관저 터에서 남산 조선신궁 터까지 이어지는 약 1.7국치길을 공개하고,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역사탐방 국치일에 국치길을 걷다를 개최했다.

비가 그치고 햇살이 따가워지는 오후, 기억의 터에 오르자 시민들의 즐거운 수다 속에서도 긴장이 느껴졌다. 백범 김구, 우당 이회영, 조소앙 선생 등 독립운동가의 후손들과 탐방 신청을 한 많은 시민들이 역사의 한순간에 함께했다. 국민의례를 마치고 국치길 제막을 한 참석자들이 드디어 국치길에 접어들었다. 금세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시민들이 국치길 공개에 함께하고 있다 ⓒ이선미

한창 공사가 진행중인 예장자락 재생사업 현장을 뒤로 하고 조선통감부 터로 향했다. 강제병합 후에 조선총독부로 이름을 바꾼 통감부는 1926년 경복궁 전각을 헐고 지은 새 청사로 옮겨갔다. 이후 국립과학관, 국가안전기획부 등이 들어섰던 이곳은 최근까지 애니메이션센터가 있었다.

일본인들이 러일전쟁 영웅으로 떠받드는 노기 마레스케 신사와 경성신사 이야기를 들으며 리라아트고등학교 안쪽의 사회법인남산원으로 들어섰다. 노기신사 유구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남산원에는 1952년 군경유자녀를 위한 시설이 설립되었고 1990년 남산원으로 명칭을 바꿔 운영중이다.

리라학교 육교에서 정수리에 내리쪼이는 햇살 아래 남산을 오르내리는 길을 바라보았다. 일본인들이 많이 살던 이 지역은 조선신궁과 경성신사, 노기신사 등 일본의 종교시설이 곳곳에 자리했다. 남산을 휘감으며 난 저 길은 신궁으로 향하는 참배로였다. 전국 곳곳에 세운 신사에 강제로 참배해야 했던 민초들의 무거운 발걸음이 겹쳤다.

신사로 향하는 참배로였던 남산길ⓒ이선미

반대로 신사에 재물을 봉납하고 기꺼이 이름 석자를 올린 이들, 한양공원 조성에 공을 세워 그 비에 이름을 올린 이들도 있었다. 광복이 되자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남산에 올라 제 이름을 지운 것이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실제로 일본이 1910년 일본인들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한 한양공원 표석 뒤편에는 돌로 갈아 이름을 뭉갠 흔적이 고스란히 부끄러운 과거를 보여주고 있다.

길을 건너 삼순이계단을 헉헉 올랐다. 지난 8월 14일 남산에 터를 잡은 위안부 기림비가 애틋했다. 누군가 고 김학순 할머니의 손에 앙증맞은 부케 같은 꽃을 안겨놓았다.

지난 8월 14일 제막된 위안부 기림비ⓒ이선미

바로 그 앞으로 한양도성 성곽을 복원 중인 옛 조선신궁 터가 있었다. 일본은 조선 왕실의 평안을 기도하던 국사당을 인왕산으로 옮기게 하고 일본의 건국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메이지 일왕을 모신 거대한 조선신궁을 세웠다. 패전 후 일본이 스스로 신궁을 철거한 후 그 자리에는 남산식물원과 분수대, 이승만 동상 등이 세워지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힘겹게 세워진 안중근 의사상 앞에서 잠시 묵념을 하며 탐방을 마무리했다.

서울시는 국치길 곳곳의 보도블럭 사이에 기억을 상기시키는 동판을 새겨넣었다. 기역자 모양의 동판에는 국치와 광복을 의미하는 1910/1945가 새겨져있다. 국치길을 기획한 서해성 서울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총감독은 “‘은 한글 첫 자음이자 이고, ‘국치이자 기억하겠다는 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또한 통감관저, 조선총독부, 노기신사, 경성신사, 갑오역기념비 터와 한양공원, 조선신궁 터에 경술국치의 해 1910년을 상기시키는 1910센티미터 높이의 조형물을 세웠다.

국치길 곳곳에는 국치를 기억하는 동판이 새겨져 있다 ⓒ이선미

그리 길지 않아서 누구나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비록 걷는 거리는 짧지만 그 길에 흐르는 시간은 유구하다. 과거로부터 현재를 지나 미래로 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불행한 일은 다시는 겪지 말자고, 부끄러운 일은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고, 힘을 내서 모두가 같이 행복해지고 평화롭게 미래를 만들어가자고 다짐하는 길이다. 어두운 역사를 드러내놓을 만큼 우리 사회가, 우리 국민들이 단단한 맷집을 갖게 되었다. 국치길 조성은 그런 자신감의 발로이다. 함께 걸으면 더 좋을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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