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류천 금단의 비경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4.08.24. 00:00

수정일 2004.08.24. 00:00

조회 1,625



시민기자 전흥진

인터넷 사전예약으로 하루에 50명씩만 받는다는 비경의 옥류천 특별관람 기회를 몇 번이나 놓쳤다가 휴가 마지막 날에야 할 수 있었다. 특별관람 목걸이를 목에 거니, 어려운 입시관문을 무사히 뚫고 합격한 기분이 들었다.
은은한 연보라색 개량한복차림의 직원을 따라서 2시간 15분 동안 3만 5천 평에 이르는 창덕궁의 요소요소를 3.3Km정도 걷는다고 한다.

일반관람의 핵심으로 소개되는 주합루와 부용정, 반도지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옥류천을 찾아 금단의 구역으로 들어섰다.
창덕궁을 비원으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비원은 창덕궁 뒤편의 정원을 말하는 것으로 금원(금지된 정원), 후원(뒤에 있는 정원), 비원(비밀의 정원)으로 불리워진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 그런지 생태보존지역답게 울창한 숲 사이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귀를 따갑게 하고, 짙은 숲 향기가 코가 얼얼하게 하니, 이곳이 서울의 한복판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머리 위로 뚝뚝 떨어지는 나뭇잎사이에는 초록 구슬 같은 상수리 열매가 달려있고, 작은 숲길 사이로 재빠르게 움직이는 다람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늘을 가린 푸른 숲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 2층 정자인 존덕정, 겹처마인 태극정, 볏집으로 상투모양을 낸 것 같은 청의정 등을 보면서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독특하고 유일한 정자의 형태에 감탄을 토하지 않을 수 없다.

나무그늘이 한겨울의 추위에 비할 바 아니라는 의미의 취한정을 지나니 인조임금께서 소요암벽위에 쓰셨다는 옥류천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소요암 앞쪽으로 굽이도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우며 임금과 신하가 풍류의 시를 지었다는 ㄴ자형의 곡수구를 지난 맑은 물이 시원한 폭포처럼 떨어지고 있다.

사각형의 돌 아래로 샘솟는 어정(임금님의 우물)에서 기막히게 시원한 샘물을 받아 마시니, 삼복더위가 단숨에 사라지는 한기가 느껴진다.
“이 깊은 숲 속을 하루에 몇 번이나 들어와 안내를 하시나요?”
“보통 하루에 2번 정도에요. 우리나라에 이렇게 고요하고 풍류를 즐길 수 있는 멋스러운 궁과 비경의 숲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감탄하는 분들을 보면서 제가 안내하는 일에 큰 보람을 느끼곤 해요.“
“일반인들이 잘 들어올 수 없는 구중궁궐의 후원을 매일 산책하시니, 안내하시는 직원분이야 말로 현대의 왕비마마이시네요?“
한바퀴 돌아 나오는 숲길에는 옛 조상들이 남긴 풍류의 여운이 아쉬움처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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