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의 여운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4.08.04. 00:00

수정일 2004.08.04. 00:00

조회 1,322



시민기자 최근모



정독도서관 근처에 있는 극장에 가는 길이었다. 전날 내린 비로 아스팔트길은 촉촉하게 습기가 배어있었고 한들한들 오후의 시원한 바람에다 근처 여고에서 몰려나온 학생들의 맑은 웃음소리에 나는 한껏 기분이 고무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보려던 영화가 매진이 된 것이다. 흑백에다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졸린 예술영화라는 생각에 전날 예매를 하지 않은 내 실수였다.
매표소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다음회를 보기로 하고 표를 끊었다.

두시간정도의 공백을 무엇으로 채워야할지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밥을 먹자니 늦은 시간이고, 죽 늘어선 분식집앞 사람들을 보니 이내 발길이 돌려졌다.
숨 막힐 정도로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들. 늘 아무것도 안하고 편히 쉴 수 있는 시간들을 원하지만, 막상 이렇게 예상치 않은 시간이 주어지면 뭘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하는게 우리들의 아이러니가 아닐런지..

일단 아무 생각 없이 정독도서관을 지나 위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 없이 그렇게 골목골목을 누비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꽈배기처럼 꼬아진 길들을 타고 언덕배기를 올라가자 조그만 슈퍼가 나왔다. 너무 자그마해서 동화 속 엄지공주가 생각날 정도였다.
그곳을 지나자 목만 아주긴 오래된 목욕탕 굴뚝이 나왔다. 너무 오래전에 본 모습이라 한동안 목이 부러져라 굴뚝의 꼭대기를 쳐다보았다. 동네 꼭대기쯤 올라가니 왼쪽으로 경복궁의 전경이 들어왔다. 새로운 앵글로 보는 궁궐의 지붕들이 꽤 색다르게 다가왔다.
전체적으로 동네는 70년대 모습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박물관에서 보는 고대의 유물도 좋지만 이런 과거 우리 어릴적에 뛰어놀던 동네가 아직도 그런 모습을 한 채 있다는게 신기했다.

내려오는 길에 좀더 오른쪽 길로 내려왔는데 갑자기 아까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길 양쪽으로 수없이 늘어선 한옥집, 그때 말로만 듣던 북촌이라는 곳이 이곳이라는 걸 알았고 카메라를 꺼내 찍기 시작했다. 낡았지만 보수하지 않고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집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새롭게 리모델링을 한 듯 외관이 깨끗했다.
어떤 것이 낫다고 할 수 없는게 낡은 곳은 낡은 대로 좋기도 하지만 지저분한 감도 있었고 또, 새로 지은 곳은 깨끗하긴 하나 고풍스러운 맛은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둘 다 어쨌든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인다.

한옥의 대문에는 모두 양철 같은 걸로 문고리와 문양을 넣었는데 자세히 다가가 보니 남대문인지 동대문인지 모르겠으나 비슷한 문양이 들어가 있었다. 어떤 문을 형상화 한거 같은데 인터넷으로 찾아보았으나 아직 그 뜻을 찾지 못했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 왔을 때 오토바이를 탄 우체부 아저씨가 그 길을 타고 시원하게 올라갔다. 양 길가로 한옥들의 버선코처럼 올라간 지붕 끝과 그 밑을 달리는 우체부 아저씨의 모습이 이제 보게 될 영화처럼 내 가슴에 묘한 여운으로 박히고 있었다.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