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단 공원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4.04.06. 00:00

수정일 2004.04.06. 00:00

조회 2,326



시민기자 진홍청



서울 시민에게 제일 먼저 정겨움을 안겨 주는 남산, 그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장충단 공원은 ‘항일’의 민족의지를 새길 수 있는 공원이다. 장충단 공원 역시 서울시의 여느 공원과 마찬가지로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활엽수와 잔디밭 사이로 ‘장충단비’가 있고, 야외무대와 게이트볼, 배드민턴, 롤러스케이트장들이 조화롭게 조성된 아늑하고 싱그러운 휴식 공간이다. 겨울 햇살을 받으며 찾아간 장충단 공원은 조금 건조해 보였다.
마른 잔디와 잎 떨어진 나목 때문이었을까?
부끄럽게도 장충단 공원을 직접 들어가 보기란 난생 처음이다.
그리고 공원이 품고 있는 ‘항일’의 의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도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나는 인문 사회과학 분야를 전공했고, 그중에 국가의식과 사회의식 문제에 남 못지않은 관심과 열정을 키워온 사람으로서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을미사변 때 순국한 대신과 장병들을 제사하기 위하여 광무(光武) 4년(1900년)에 설치했던 제단 터‘라는 장춘단비 내력을 처음으로 읽어 본 것이다.

장춘단 공원은 을미사변 때 숨진 훈련대장 홍계훈과 궁내부대신 이경신 등 충신열사들을 기리고자 1900년에 만든 ‘장춘단’에서 비롯됐으며, 고종은 명성황후가 숨진 뒤 지금의 신라호텔 근처에 장춘단을 짓고 해마다 봄·가을로 군악을 연주하고 조총을 쏘면서 제사를 지냈다. 장춘단비문의 ‘장춘단’ 세글자는 순종이 황태자였을 때 쓴 글씨이고, 비 뒷면에는 충정공 민영환의 글이 새겨져 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은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장춘단을 그대로 두지 않으려는 심보에서 1910년 한일합방과 함께 장춘단에서 제사를 지내지 못하도록 했다.
1919년에는 이 일대에 벚꽂 수천 그루를 심고 연못과 놀이터, 산책로 등을 꾸며 숙연한 제사단을 놀이 공원으로 바꾸고, 상해사변 때 죽은 일본군 육탄 3용사 동상도 세웠다. 당시 남산 일대에 살던 자국민들에게 위락 공간을 제공하는 한편, 장충단의 성격을 완전히 해체해 버린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1909년 안중근 의사에게 암살당한 초대 통감 ‘이토오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라는 절을 1931년 지금의 신라호텔 영빈관 자리에 지었다. 거기에 경복궁 안 선원전을 옮겨 짓고, 정문은 경희궁의 정문인 홍화문을 옮겨왔다. 이러한 음모는 ‘조선의 궁을 해체하고 민족혼을 짓밟으려한 획책’이었다.
세월 흐른 후 다행스러운 일은 박정희 정권에 이르러 장춘단 공원에 사명대사와 이준·이한응 열사의 동상을 모셨고, 침묵 가운데서도 우리 후세인들에게 살아 숨쉬는 민족혼을 불러일으키게 된 일이다. 일제의 왜색 흔적을 걷어치우고 ‘반일’의 상징 공간으로 새롭게 꾸민 일은 길이 역사에 남을 의미심장한 일이다. 어느 정권 어느 지도자이든, 혹은 실무를 담당한 자들이 신념과 사명감을 가지고 구석구석 살피며 민족혼과 국가의식(애국심)을 일깨우는 일에 좀더 열정을 쏟아 주었으면 한다. 제대로 된 우리 민족 역사의 수레바퀴를 본궤도로 올려놓기가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지? 세계화의 차원과는 다른, 학문과 언어에서부터... 유형, 무형의 일제 잔재가...
이제, 일제나 독재에 짓밟힘 없는 민주화 세대가 이 사회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젊은 대한민국! 정신 바짝 차리고! 안팎으로 민족과 국민의 일체화(identification)가 요구되는 시대가 아닌가?

남산을 돌아 나온 밝고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의자에 앉아 여가를 즐기는 어르신들, 어린 아이를 데리고, 곧 본래 자리인 청계천으로 옮겨질 수표교를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고 산책길로 접어드는 행복한 젊은 부부, 지금은 경로당도 있고 시민들의 친근한 ‘근린공원’으로 사랑 받고 있는 장충단 공원이지만, 시대가 변하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극일’의 민족의지는 묵묵히 감돌고 있었다.
* 3호선 전철 (동대 입구-6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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