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자를 읽어요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4.03.16. 00:00

수정일 2004.03.16. 00:00

조회 1,454



최재천 교수가 추천하는 책 따라잡기

서울여성은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 '지혜로운 사색'을 테마로 '책을 통해 여자를 읽자'는 캠페인을 가졌다. 일반적으로 여성에 대해 잘못 알려져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여성의 사회화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이 캠페인에 많은 여성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특히 여성의 변화를 촉발하는 것은 여성 자신의 튼튼한 내면이라는 부분에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이번 캠페인의 하이라이트는 여성의 발전과 양성평등의 현실화를 위해 여성 스스로가 내면을 살찌우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 이와 관련 서울여성이 추천한 책은 총 17권. 그 중 ‘2004년 여성 발전의 디딤돌 상’을 받은 서울대 생물학과 최재천 교수가 추천한 5권의 책을 중심으로 여성 관련 책 읽기 캠페인에 동참해 보자.


여성 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최재천 지음/ 궁리출판사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이 책에서 여성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만방에 고하고 있다. 저자는 사회생물학자답게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컷들의 행태를 인간과 비교 분석하고 있다. 저자가 환기시켜주는 다윈의 '성 선택론' 에 따르면, 번식에 관한 결정권은 암컷에게 있다. 수컷이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둘 중 하나다. 기가 막히게 매력적이어서 암컷으로 하여금 사족을 못 쓰게 하거나, 암컷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독점하여 그들의 선택권에 영향을 주는 정도의 전략 구사를 말한다.

저자는 또 자식을 돌봐야하는 것은 항상 여성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열대에 사는 독침개구리, 가시고기 등은 아빠가 자식을 키우는 좋은 예라는 것이다. 특히 새들은 암수가 함께 공동책임 하에 자식을 양육한다. '집사람이 반드시 여성'일 필요가 없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제목에서 보듯 저자는 남성도 화장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꽃 미남이 각광받고 쌍꺼풀 수술, 보톡스 주사를 맞는 남성이 늘어나는 까닭은 바로 여성들의 간택을 받기 위한 노력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저자는 정자와 난자의 가치까지도 다르다고 말한다. 한꺼번에 천문학적 숫자의 정자를 쏟아 붓는 남자는 마치 값싼 주식을 여러 종목 구입한 다음 운 좋게 성공하자는 물량작전이고, 여자는 소수의 황금주에만 투자하는 질적 전략이라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자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여자남자 제대로 알기'는 그래서 더 흥미롭다.



남자들은 모른다

김승희 외/ 마음산책

시인 김승희 교수(서강대 국문과)의 시 해설집 『남자들은 모른다』(마음산책)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시를 고른 선집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른바 한국 여성주의 시 역사에서 전환기적인 역할을 한 국내외 여성시인 30명의 중요시 44편이 김교수의 해설과 함께 실려 있다. 최승자, 고정희, 강은교, 김승희, 김혜순, 김정란, 황인숙, 이상희, 엄승화, 양선희, 신현림, 정끝별 등 한국 여성주의시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작품이 선별되어 있다. 그밖에 에밀리 디킨슨, 애드리안 리치, 실비아 플라스, 앤 섹스턴, 마야 안젤로 등 미국 여성시인들의 시도 함께 소개되어 있다.

최씨의 시 ‘일찌기 나는’에 등장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란 구절은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영원한 변방이며 오래된 검은 땅이었던 여성의 자기 정체성을 보여주는 선언적인 시구로 평가받는다.

또 김교수가 “한국 현대 여성주의 시의 야성적 개척자이며 대모적 존재, 안티고네처럼 폭력적 아버지의 이름에 저항하기 위해 독재 정치에 항거했고… ‘부권 통치’의 파워 리얼리티에 깊은 균열을 파놓은 아마조네스”라고 평가하고 있는 시인 고정희의 시 ‘땅의 사람들 8―어머니, 나의 어머니’도 소개되고 있다. 특히 책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석영희, 허혜정, 김소연씨 등 아직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신인의 작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부분. 석영희의 등단작 ‘심판’을 소개하며 김교수는 일전에 분신자살로 생을 마감한 석시인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하고 있다.



제1의 성

헬렌 피셔 지음/ 생각의 나무

미국의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제1의 성’에서 여성이야말로 21세기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주체라고 단언한다. 저자는 이미 독창적인 저서 ‘사랑의 해부’에서 사랑의 본질을 화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관점에서 파악해 생물 짝짓기 행위의 진화론적 성격을 밝혀 주목받은 바 있다. 이 책에서도 생물학적 결정론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분하는 중요한 잣대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여성이 생물학적으로도 사회경제적으로도 으뜸가는 성임을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남녀는 유목생활을 하던 ‘아득한 그 옛날’엔 평등한 관계였다. 그러나 쟁기의 발명과 더불어 인류가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제2의 성으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가부장적 농경사회에서는 집중적이고 직선적인 ‘계단식 사고’를 하는 남성이 보다 유리했기 때문이다.

반면 산업혁명을 계기로 다시 경제 일선에 나서게 된 여성노동력은 그 속성상 21세기 글로벌 시장의 요구에 부합한다. 저자는 이를 여성의 ‘거미집식 사고’라 정의한다. 뛰어난 언어감각과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 인간관계에 대한 중시, 사회정의에 대한 순수한 관심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여성성이야말로 수평적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오늘의 ‘하이보그(hyborg·복합형 조직)’ 환경에 맞는다고 본다. 가정, 교육, 통신, 의학, 비지니스, 시민단체활동 등 모든 분야에서 이 같은 여성적 마인드는 매우 유용하며, 여성은 다시 제1의 성을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여자, 그 내밀한 지리학
나탈리 엔지어 지음/ 문예출판사

저자는 여성이 자신의 몸을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것, 특히 자신의 몸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기에, 여성의 몸과 생물학에서 기쁨을 끌어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여성의 몸이 지닌 아름다움과, 그것이 어떻게 진화했으며,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고 지금처럼 행동하는지를 알려주고 싶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여성의 생식기 '질'은 더럽다는 편견에 일침을 놓는다. 오히려 질은 몸에서 가장 깨끗한 곳이며 여성의 생식기에서 나는 냄새는 더러움 때문이 아니라 자궁과 질의 건강을 지켜주는 미생물들이 서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다른 종을 연구함으로써 우리 자신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초원의 들쥐에게서 가능한 한 친구들과 꼭 붙어 자고 서로 사랑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불변의 논리를 배우라고 한다. 또 빈둥거리는 일에 전문인 고양이들에게서 숙면을 취하는 법을, 피그미침팬지에게서 생식기끼리 문지르는 법외에 논쟁을 평화롭고도 유쾌하게 해결하는 법을 배우자고 한다. 더불어 수컷들이 더 크고 강함에도 불구하고 수컷에게 방해받지도 않고 시달리는 일도 없이 서로 붙어 다니는 피그미침팬지 암컷들에게서 자매애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또 저자는 '이 책은 실용적이지 않다. 이 책은 여성 건강의 지침서가 아니다' 하고 말하며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에서 자신의 견해를 고집했음을 밝힌다. 에스트로겐이 그 예로, 유방암의 근원이 무엇이든 간에, 에스트로겐을 매개로 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에 여성에게 할당된 몫만큼 그것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에 기뻐하긴 하지만, 그것을 보충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절대 피임약을 먹지 않으며, 폐경기 여성의 에스트로겐 대체 요법도 거부한다는 생각을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연의 유일한 실수, 남자

스티브 존스 지음/ 예지출판사

영국의 유전학자 스티브 존스의 ‘자연의 유일한 실수, 남자’는 이런 가련한 남성에 관한 이야기다. 남자는 어떻게 생겨났고, 현재 어떤 상태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지를 생물학, 유전학, 문화인류학, 계보학, 사회학 등을 총동원해 보여준다.

저자의 관심은 남자라는 키워드를 통해 전방위로 뻗친다. Y염색체의 의미와 음경, 고환과 같은 생식기는 물론 바람기, 비아그라, 친자확인검사 등 사회ㆍ문화적 주제까지 아우른다.

가령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태생적으로 남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면역계 세포는 테스토스테론에 노출되면 죽는데, 이 호르몬이 넘치는 남자는 여자보다 항체를 만드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거세하면 평균 수명이 10년 늘어난다거나 1940년 1억 마리였던 남성의 평균정자수가 50년 만에 60% 이상 줄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책은 역자가 “번역을 하면서 마치 지뢰밭을 헤쳐나가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함축과 수사로 가득해 읽기가 쉽진 않다. 대신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류의 책이 다분히 주관적 성격이 강하다면 이 책은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믿음이 간다.


(자료제공: (재)서울여성)


하이서울뉴스 / 권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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