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동 국립 현충원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6.04.11. 00:00

수정일 2006.04.11. 00:00

조회 1,632



시민기자 이승철

얼마 전 토요일 오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이 안장되어 있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경내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많다. 옛날에는 4월 5일 식목일이 공휴일이어서 유가족들과 참배객들이 많이 찾았지만 한식을 며칠 앞두고 미리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충성분수대의 장엄한 모습이 나타난다. 그 뒤로 드넓은 광장이 펼쳐지고 있으며 광장 좌우편으로는 소나무와 각종 조경수들이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모습이다.

현충일이나 외국의 국빈이 참배할 때 많이 이용하는 현충문을 중심으로 묘역이 자리 잡고 있다. 묘역은 국가원수 묘역과 애국지사 묘역, 국가유공자 묘역, 군인·군무원 묘역이 있고 경찰관 묘역, 일반 묘역, 외국인 묘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묘역의 전체적인 형국은 공작새가 아름다운 날개를 펴고 있는 공작장비형이라고 하는데, 또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것 같다 하여 장군대좌형이라고도 한다.

6.25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55년 7월 15일에 국군묘지로 창설되었으며 1965년 3월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국가원수, 애국지사 및 순국선열을 비롯한 국가유공자와 경찰관, 전투에 참가한 향토예비군까지 추가로 안장되었다.

지난 1996년에 국립현충원으로 명칭이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현재 묘역에는 전 국가원수 2위, 임시정부요인 17위, 애국지사 207위, 국가유공자 61위, 장군 355위, 군인 5만3천6위, 경찰 809위와 위패 10만3천여 위, 무명용사 6천여 위 등 총 16만3천여 위가 안장되어 있다.

전체 면적은 143만㎡이며 경내에는 충성문과 현충문외에도 무명용사탑, 전쟁기념관, 현충관, 충렬대 등이 있으며 한식 전후인 요즘과 현충일에 가장 많은 유족과 참배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이날 경내를 둘러보고 나올 때는 저녁 6시가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 때 내 뒤를 따라 할머니 한 분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으니 6.25 한국전쟁 때 전사한 남편의 묘에 다녀가는 길이라고 한다.

가족관계를 물으니 할머니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두었는데 모두 효자라고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왜 같이 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다음 일요일 날 손자 손녀들까지 함께 오기로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다녀간다는 할머니는 세월이 많이 흘러 남편의 얼굴까지 가물가물하지만 참 잘생기고 멋진 남편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고 싶지 않으냐고 물으니 뭐 간절히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지금도 길거리에서 다른 노인부부가 다정하게 같이 걷는 모습을 볼 때면 남편 생각이 난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아들 딸 먹이고 공부시키느라 남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는 할머니의 얼굴에 가득한 주름살이 그 고달픈 삶을 말해주는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인사한 후 할머니와 헤어져 돌아오는 서쪽 하늘에는 엷은 구름 사이로 고운 노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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