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있던 선유도의 비밀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3.12.26. 00:00

수정일 2003.12.26. 00:00

조회 1,808




강물에 흐르는 것은 역사만이 아니었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였던 장 그르니에는 작품 ‘섬’에서 “육체적 열락을 느끼며 살수 있는 곳으로 섬(島)만한 곳이 있을까”라고 말했다. 섬은 고립의 공간이자, 허허로운 바다와 접한 자유로운 곳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장 그르니에처럼 사람들은 섬(島)하면 바다만 떠올리지만, 강 사이에 있는 것(하중도)도 어엿한 섬이다. 한강엔 그런 섬이 여럿 있다. 오늘은 선유도의 역사를 따라가 본다.
옛날 선유도는 시인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아름다운 절벽이 둘러쳐진 작은 봉우리로 이뤄진 섬이다. 선유봉이라고도 하고 중국 황하의 저주봉과 비슷하다 하여 저주봉이라 불려지기도 했다. 그토록 아름답던 섬을 일제 강점 때 홍수를 막기 위해 암석을 채취하여 여의도 비행장을 건설하는 바람에 모두 깎여졌다. 그 후 정수장으로 이용하였던 것을 2000년에 폐쇄하고 현재의 선유도 공원으로 거듭나 시민들로부터 큰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신선이 노닐 만큼 아름다웠다는 ‘선유도(仙遊島)’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우리 나라 국문학상 최초의 노래인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그 시대적 무대가 고금주(古今注) <해동역사·海東繹史>라는 문헌에 의하면 대동강변으로 나와있다.
이러한 공무도하가의 무대가 놀랍게도 양천현의 양화도(楊花渡 : 옛날 선유봉), 즉 지금의 선유도라는 기록이 광무 3년 때 양천군수였던 박준우가 지은 ‘경기양천군읍지’에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초로 밝혀지는 ‘선유도의 비밀’

이러한 사실을 ‘강서문화와 역사(98)’라는 책자에서 최초로 밝힌 손주영씨(국사편찬위 사료조사위원, 강서구청 근무)는 “진위야 알 수 없지만 우리 국문학사의 효시가 될 고조선의 ‘공무도하가’ 노랫가사의 무대배경이 대동강이 아니고 우리 한강의 양화도였다는 기록은 뜻밖이며 감회가 새롭다”면서 “결국 곽리자고나 여옥이 강서구(양천현) 사람이었고 ‘공무도하가’는 서울에서 만들어진 노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의 교과서를 수정해야 할만큼 놀랄만한 뉴스다.
증거자료가 있다는 서울대 규장각을 찾아 경기양천군읍지지도(京畿陽川郡邑誌地圖)를 신청하고 잠시 기다리자 문제의 책이 눈앞에 놓인다.
두근대는 마음을 억누르고 해당 부분을 찾았다. 오래된 한지가 훼손될까 조심조심 고서를 넘기는 손이 가늘게 떨린다.
예의 문제의 문구를 발견한 순간 맥박은 한없이 뛰기 시작했다.

곽리자고 처 여옥 양화도 견인몰 작 공후인 탄 공무도하곡운
藿里子高 妻 麗玉 楊花渡 見人沒 作 引 彈 公無渡河曲云


해석해보면 “곽리자고 처 여옥이가 양화도(선유도)에서 사람이 빠져 죽는 것을 보고 공후인을 지어서 공후를 탔다는 공무도하곡이 전해오고 있다”라는 문구다.
손주영씨의 주장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역사적으로, 또 학계에서 어떻게 검증될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만큼 이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공무도하가란 무엇인가

공무도하(公無渡河)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공경도하(公竟渡河) 님은 끝내 물을 건넜구려
타하이사(墮河而死)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당내공하(當奈公何) 아! 님을 어이할꼬


고금주(古今注) <해동역사·海東繹史>라는 문헌에 의하면, 대동강가에 한 백수광부(白首狂夫:백발의 실성한 노인)가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고, 이내 익사하고 만다.
물에 빠진 시신을 보면서 애처롭게 울부짖는 노파의 애절한 모습을 마침 곽리자고(강가 나루터 관리)가 목격하고는 집에 돌아가 자신의 아내 여옥에게 그 노파의 애절함을 설명하자, 아내는 애절한 상황을 공후 악기에 맞추어 노래로 만들어 부르게 된 것이다.
심금을 울리는 애절한 노래는 인근으로 퍼져나가고,
그 지방의 민요로 정착하게 된 것으로 우리나라 국문학상 최초의 노래로 평가받고 있다.

글|김해웅
도움말|손주영(국사편찬위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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