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나는 국보가, 다른 하나는 보물이 되었을까?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3.11.26. 00:00

수정일 2003.11.26. 00:00

조회 2,835



외관 흡사하지만 역사적 의미와 가치에서 차이 나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서울의 자랑인 국보 1호 숭례문(崇禮門, 남대문).
이 숭례문을 보면 두 가지 궁금증이 떠오른다. 하나는 즐겁게 해주는 궁금증이고 다른 하나는 부끄럽게 하는 궁금증이다.
즐거운 궁금증 하나. ‘국보 1호 숭례문과 보물 1호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은 모두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성문이지만 왜 하나는 국보가 되고 다른 하나는 보물이 되었을까? ’
그 차이를 곰곰 생각하다보면 숭례문의 매력과 자랑스러움에 다다르게 된다.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모두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사대문. 석축을 쌓고 그 중앙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虹霓門)을 만든 것이며, 석축 위로 정면 5칸02., 측면 2칸의 2층 목조누각을 세운 것이며 외관상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다른 것이 있다면 흥인지문엔 반원형의 방어용 옹성을 쌓았다는 점 정도다.

절제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숭례문


이처럼 외관이 흡사하면서도 국보와 보물로 등급이 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역사적 의미와 가치에서 차이가 난다. 조선 초인 1398년 세워져 1447년 수리한 숭례문은 현존 도성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반면 흥인지문은 조선 말인 1869년 완전히 새로 지은 건축물이다. 따라서 시기적으로 훨씬 앞서는 숭례문이 역사적으로 더 가치가 있는 것이다.

둘째, 건축적인 아름다움에서도 차이가 난다. 숭례문은 현존하는 성문 중 규모나 장중함에서 최고일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절제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에 반해 흥인지문은 과도하게 장식과 기교에 치중했다. 절제미와 균형미가 넘치는 숭례문은 장식적인 흥인지문보다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미학을 더 잘 구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셋째로 공포(拱包)에 나타난 건축사적인 의미를 비교해볼 수 있다. 공포는 목조건축물에서 처마를 안정감있게 받쳐주기 위해 기둥 위부터 대들보 아래까지 짧은 여러 부재를 중첩으로 짜맞춰놓은 것을 말한다.
기둥 위에만 공포를 짜놓은 것은 주심포식(柱心包式),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 여러 개의 공포를 짜놓은 것은 다포식(多包式)이다. 고려 때는 주심포식이 성행했고 다포식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정착한 건축 양식이다.
숭례문 흥인지문은 모두 다포식이다. 그러나 숭례문의 다포는 고려시대 주심포식에서 조선시대 다포식으로 넘어가는 전통목조건축의 변화상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다포식이 이미 정착한 조선 말의 흥인지문보다 건축사적인 가치가 훨씬 높다.

가까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서울의 현실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이처럼 역사적 미학적 건축사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로 인해 국보와 보물로 갈리게 된 것이다. 평소 무심히 넘겼던 이같은 차이를 하나 둘 접하고 나면 숭례문의 매력, 숭례문의 아름다움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숭례문에 가까이 가고 싶어도 가까이 갈 수 없도록 되어있는 서울의 현실. 두 번째 궁금증은 이같은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 ‘숭례문은 왜 저렇게 고층빌딩과 질주하는 차량 사이에 갇혀 있어야 할까? ’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고 제대로 감상할 수도 없는, 마치 절해고도(絶海孤島)와 같은 국보 1호 숭례문. 서울 시민으로서 이 숭례문의 딱한 처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 딱한 처지를 보고 진심으로 안타까워 해본 사람은 또 과연 몇이나 될까.
숭례문은 그래서 서울의 자랑인 동시에 서울의 수치다. 첫 번째 궁금증이 즐거움이었다면 두 번째 궁금증은 부끄러움이다.
서울이 역사와 문화 도시로서의 면모를 회복하기 위해선 우선 숭례문을 살려야 한다. 숭례문을 차량과 빌딩의 폭력에서 해방시켜 숭례문이 숨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하고 동시에 숭례문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숭례문 주변의 차도를 줄여 광장을 만들겠다는 서울시에 박수

이런 점에서 숭례문 주변에 광장을 만들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은 신선하고 고무적이다. 일제가 파괴한 숭례문 주변 성곽의 일부(날개벽)를 복원하겠다는 계획도 높이 살 만하다.
숭례문 주변의 차도를 줄여 광장을 만들고 그 광장으로 연결되는 횡단보도를 설치해야 한다. 나아가 서울 도심을 사람 중심, 보도 중심의 공간으로 바꾸어 걸어서 서울역에서 숭례문 덕수궁을 지나 세종로를 거쳐 광화문 경복궁에 이를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지금도 차가 막히는데 차도를 줄인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라고.
아니다. 그런 판에 박혀있는 그릇된 발상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서울의 도시 공간을 차량에 점령당한 채 살아가야 하는가. 차량은 도로 위를 마음대로 질주하는데 왜 사람은 지하도와 육교로 밀려나야 하는가.
발상을 바꾼다면 자연스럽게 숭례문도 살아난다. 도로를 건너 숭례문에 이르고 그곳에서 숭례문 석축 가운데 홍예문을 넘나들면서 숭례문의 숨결을 느껴야 한다. 숨결을 느낄 수 있을 때 숭례문에 대한 애정도 생겨날 것이다.

숭례문을 살리지 못할 때, 비문화적이라는 불명예 벗지 못할 것

서울시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남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숭례문 포토랜드를 조성했다. 이곳에선 숭례문 정면을 감상하고 현판 글씨의 매력에 취해볼 수도 있다. 그리고 숭례문을 배경으로 기념촬영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으론 부족하다. 포토랜드 덕분에 우리가 숭례문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숭례문이 처한 상황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숭례문을 살리는 것은 서울 시민의 몫이다. 선조가 남겨준 국보 1호 숭례문을 되살려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의무다. 숭례문을 살리지 못할 때, 서울시민은 비문화적이라는 불명예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주저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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