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서 구입한 책값, 도서관이 돌려드려요 '북페이백'
발행일 2020.07.29. 15:20
예전에 아이가 5권의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해 달라고 부탁했던 적이 있다. 학교 숙제로 독후감을 작성해야만 했다. 메모지에 깨알같이 적어준 책 이름, 저자, 출판사 목록을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먼저 도서관에 비치된 컴퓨터로 책 이름을 검색했다. 그런데 5권 중 4권이 대출 중이었다. 도서관에서 1권의 책만 대출한 채 나머지 4권을 아이의 숙제를 위해서 사야만 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서초구의 북페이백 서비스’를 들었을 때, 환호성을 질렀다. 필자는 서초구 주민은 아니다. 그래도 서초구에서 이런 서비스를 시행하다 보면 언젠가 필자가 거주하는 구에서도 이런 서비스를 도입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서초구 동네서점에 내걸린 서초 북페이백 서비스 안내문 ©윤혜숙
‘서초구 북페이백 서비스’는 관내 주민들이 동네서점에서 책을 사고 3주 내 서점에 되돌려주면 책값을 환불해주는 서비스다. 서점으로 되돌아온 책은 관내 도서관에 비치된다. 결국 도서관 사서를 대신해서 지역주민들이 책을 사는 셈이다. 물론 한 사람이 무한정 책을 살 수 없게끔 한 달에 최대 3권으로 한정했다.
동네서점도 서초구와 북페이백 서비스 협약이 된 서점에 한해서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다. 2019년 6월 18일부터 서초구 북페이백 서비스가 시작되었으니 벌써 1년이 넘었다. 올해 상반기 코로나19로 관내 도서관이 문을 닫고 한동안 대출서비스도 하지 않았을 때 지역주민들의 북페이백 서비스 이용이 급증했다.
서초구 자치행정과 도서관팀을 맡은 김유홍 팀장과 한상덕 주무관을 만나 서초구 북페이백 서비스 사업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2017년 1월 1일 김유홍 팀장이 도서관팀장으로 부임했을 때였다. 도서관 이용에 관한 민원이 제기되고 있었다. 먼저 도서관에 신간도서나 인기도서를 희망도서로 신청하면 대기기간이 길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신간도서는 1개월, 인기도서는 4개월이 걸리기도 했다. 또한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이 연중 시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1년에 2개월 가량 도서관에서 희망도서 신청을 받지 않는 시기가 있다. 도서관 관련 예산을 교부하거나 도서관 예산을 정산하는 일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지역주민이 제기하는 2가지 민원을 해결하려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상덕 주무관이 스마트폰으로 북페이백 서비스를 보여주고 있다. ©윤혜숙
도서관은 양질의 도서를 비치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인기도서일지라도 최대 2권의 책만 산다. 그런데 정작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는 주민들은 인기도서를 선호한다. 그러니 인기도서를 대출하려면 대기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인기도서만 여러 권을 도서관에 비치할 수 있도록 복본 규정을 완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편으로 동네서점과 연계하는 방안을 생각했다.
마침 서울시에서도 동네서점 활성화 대책을 내놓고 있었다. 2016년부터 서울시가 처음 동네서점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지역 서점 활성화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본격적인 동네서점 활성화 지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독서 문화를 확산하고 지역의 문화 공간 역할을 하는 ‘서울형 책방’ 50곳을 선정해 독서문화 프로그램과 홍보를 지원했다. 올해는 동네서점에 문화 프로그램 운영비 등을 지원하는 ‘책방 활성화 사업’을 확대한다. 코로나19로 경제적 타격을 입은 소규모 동네 책방 120개소에 100만 원 내외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카카오와 동네 책방 홍보에도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형 책방'을 선정해 독서문화 프로그램 과 홍보 등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
김유홍 팀장은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민원이 제기되고 있을 텐데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마침 용인시에서 ‘희망도서 바로 대출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하면 동네서점에서 받을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서점에서 연체관리가 되지 않았다. 주민이 책을 반납하지 않으면 서점주인이 대신 책값을 내야만 했다. 지역주민으로선 희망도서를 2~3일 내 서점에서 대출할 수 있지만, 그 책이 반납되지 않음으로써 도서관에서 다른 이용자가 책을 대출할 수 없었다.
서초구 조은희 청장이 불쑥 아이디어를 던졌다. “도서관으로 가져오는 책을 90% 환불해 주면 어떨까”라는 의견에서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주민이 서점에서 산 책을 서점에 반납하면 이 책을 도서관이 서점에서 사자는 것으로 아이디어가 수렴되었다. “서점을 하나의 도서관이라고 생각하고 동네서점과 상생하겠다”라는 서초구의 의지가 담겼다. 서점에서도 서초구청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주민들이 희망도서를 사고 반납하기 위해 서점을 자주 드나들다 보니 다른 책들도 사고 있다. 현재 서초구 관내 9개의 서점이 북페이백 서비스 협약을 체결했다.
희망도서 바로 대출 서비스가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아이디어를 확장한 결과다. 김유홍 팀장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고 말했다. 그런데 북페이백 서비스를 시행할 때 도서관 직원들이 인기도서를 최대 20권씩 구매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런데 전문가가 추천하는 양질의 책일지라도 주민이 읽지 않으면 그냥 도서관 책장을 차지하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현재 인기도서 15권, 일반도서 3권으로 도서관에서 구매하는 도서의 양을 정했다.
북페이백 서비스 협약을 맺은 서초구 관내 진영문고 ©윤혜숙
코로나19로 도서관 대출이 막혔을 때 주민들이 서점에 책을 신청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당연히 서점주인도 반길 수밖에 없다. 필자가 방문한 진영문고는 서초구 관내 북페이백 서비스 협약을 맺은 서점이다. 홍철기 대표는 북페이백 서비스로 인해 서점 매출이 늘어났다고 한다. 홍 대표는 서점에 책을 사러 온 손님에게 먼저 북페이백 서비스 가입 여부를 물어보고 아직이라는 말에 스마트폰으로 가입하는 방법을 안내해 준다. 그동안 아이를 데리고 대형서점만 다녔던 주민이 북페이백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 처음으로 동네서점을 방문했다고 한다.
서점에서 책을 신청해서 읽은 후 본인이 소장하고 싶으면 북페이백 서비스를 취소하면 된다. 그러면 서점은 그 책값을 환불하지 않는다. 가끔 책을 사서 읽고 괜히 책을 샀다는 후회가 들 때도 있다. 필자도 그런 적이 여러 번 있다. 필자는 주로 온라인서점에서 책의 리뷰를 꼼꼼히 읽어보고 신중하게 책을 사는 편인데도 정작 책을 읽고 난 뒤 소장할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많았다. 그래도 어쩌랴!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책을 소장하면서 다음 번에는 더 신중하게 책을 사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래서 더욱 책을 사는 게 망설여진다.
북페이백 시스템 특허증 ©윤혜숙
서초구는 북페이백 서비스의 특허를 받았다. 전국 최초로 서초구가 북페이백 서비스를 시행했다는 검증 차원에서 특허를 신청했다고 한다. 상표권 출원도 등록해서 오는 8월에 나온다. 타 자치구에서 북페이백 서비스를 벤치마킹하겠다고 요청한다면 아무런 대가 없이 수락할 거라고 했다. 북페이백 서비스의 시행으로 서울시 ‘2019년 민원서비스개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우수상도 수상했다.
관내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기 쉽지 않다. 도서관 근처에 거주한다면 모를까 한두 권의 책을 대출하려고 원거리에 있는 도서관까지 방문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문득 서점을 발견하고 들어갔는데 그 서점에서 북페이백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면 당장 책을 살 수 있다. 물론 그 책을 읽고 난 뒤 기한 내 서점에 반납하면 된다. 서초구는 관내 도서관, 협약을 맺은 서점 간에 연계하는 북페이백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용자는 스마트폰에 들어가서 책의 재고를 확인하고 살 수 있다. 물론 이미 주민들이 사서 15권을 초과한 책이라면 재고가 없다고 뜬다. 그럴 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다.
서초구는 500명의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조사했다. 서비스가 좋은데 홍보가 미약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앞으로 북페이백 서비스 협약을 맺는 서점의 숫자도 늘려나가면서 북페이백 시스템의 개선도 필요하다. 지역주민들이 북페이백 서비스 이용자로서 좋은 의견을 많이 주어서 개선할 여지가 많다고 했다.
동네서점은 도서관이 생길 때마다 서점의 매출이 줄어든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그런데 서초구만은 예외다. 지역주민의 도서 대출 편의도 제공하면서 동네서점의 매출에도 이바지하는 지역 경제의 상생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서초구는 동네서점과의 상생을 위해서 관내 도서관에 비치할 책을 동네서점에서 사고 있다.
인터뷰 중인 서초구청 김유홍 도서관팀장과 한상덕 주무관 ©윤혜숙
김유홍 팀장은 “주민을 위한 서비스로, 주민의 고민을 해결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타지자체의 서비스도 찾아보고 거기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덧붙인 결과 북페이백 서비스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한상덕 주무관은 “주민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지금의 북페이백 서비스뿐만 아니라 온라인 책장터 준비, 전자도서관 개편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평소 책을 자주 사는 필자는 획기적인 시도에 당장 서초구로 이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기 전에 서초구의 북페이백 서비스가 서초구를 넘어 서울시 전 자치구로 확산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서초북페이백 안내 : http://public.seocholib.or.kr/docpub/index.php?g_page=service&m_page=service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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