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날, 도심 속 고요한 조선왕릉을 거닐다!

시민기자 염승화

발행일 2020.01.08. 09:30

수정일 2020.01.08. 11:35

조회 1,545

2020년 새해 첫날에 다녀온 곳은 서울 헌릉(獻陵)이다. 이 능은 조선 3대 임금인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으로, 왕과 왕비의 봉분을 좌우로 나란히 붙인 이른바 ‘쌍릉’으로 모셔져 있다. 600년 전 1420년(세종 2)에 승하한 원경왕후의 능을 먼저 조성하였고, 2년 후 태종의 능이 조성되었다. 이 능은 무엇보다도 세종대왕의 부모가 안장된 능이라는 특이점이 있다. 이 능을 포함해 조선 왕과 왕비들의 무덤인 조선왕릉 40기는 지난 2009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소중한 문화유산들이다.

헌릉의 주인공 중 한 분인 태종은 묘호 못지않게 휘(諱,) 즉 이름인 ‘방원’이 많이 알려져 있다. 정릉(貞陵)에 모셔져 있는 신덕왕후와의 정쟁과 왕자의 난을 통해서 집권한 뒤 건국 초기 조선의 기틀을 잡은 것으로 유명하다. 호패법을 시행하였고, 조선왕릉과 함께 자랑스러운 세계유산인 창덕궁을 지은 장본인이다.

인릉방면으로 돌아본 진입로 전경-왼편 숲은 서울시가 생태경관보존지역으로 지정한 힐링 숲이다.

인릉 방면으로 돌아본 진입로 전경 ©염승화

헌릉은 같은 경내에 있는 인릉(仁陵)과 함께 흔히 ‘헌인릉’으로 불린다. 규모는 약 119만3,000㎡(약 36만1,000평). 인릉은 조선 제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으로 19세기 중반(1856년, 철종 7)에 조성된 것이다. 두 능은 무려 400년이 훨씬 넘는 시간 차이를 두고 조성되었다. 그렇기에 시대별 능 조성 방법이나 양식 등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로 거론되기도 한다. 두 능이 함께 사적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물 신도비가 세워져 있는 헌릉의 신도비각은 규모가 크다.

헌릉의 신도비각은 규모가 크다 ©염승화

헌릉은 인릉의 정자각, 비각 등이 있는 제례 공간을 왼쪽으로 끼고 오른쪽으로 난 길로 들어간다. 호젓한 길을 조금 더 지나니 좌우로 숲이 펼쳐진다. 주로 왼편으로는 송림, 오른편으로는 오리나무 군락이다. 물봉선, 둥굴레, 애기나리 등 여러 습지식물들까지 터를 박고 사는 오른편 군락은 서울시가 2005년 생태경관보존지역으로 지정한 곳으로 경관이 뛰어나다. 숲 사이로 제법 커다란 전각이 나타난다. 능 허리 부분인 제례공간이 있는 ‘신도비각’이다. 이 비각을 스쳐지나 능 진입공간으로 들어서기 위해 홍살문이 있는 우측 끄트머리로 간다. 그 앞에 서니 멀리 산 위에 솟아 있는 두 개의 봉분을 정점으로 능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러 특징을 찾을 수 있는 헌릉 전경

여러 특징을 찾을 수 있는 헌릉 전경 ©염승화

정자로 오르는 돌계단과 축대가 낮은 특징이 있다

정자로 오르는 돌계단과 축대가 낮은 특징이 있다 ©염승화

헌릉의 특이한 석물인 소전대가 정자각 왼편 평지에 놓여 있다.

헌릉의 특이한 석물인 소전대가 정자각 왼편 평지에 놓여 있다 ©염승화

이 능의 특징은 홍살문 옆에 있기 마련인 평평한 전돌을 깔아 절을 하는 자리인 ‘배위’가 없어 왠지 허전하다. 향로와 어로 등 대체로 두 길로 구성되는 참도가 신령만 다니는 향로 하나로만 깔려 있는 점도 특이하다. 수라간과 수복방이 서 있을 자리도 복원이 되지 않았는지 텅 비어 있다. 참도를 따라 정자각 앞으로 간다. 제례공간의 대표 건축물인 정자각의 축대가 여느 왕릉의 그것에 비해 낮은 점이 확연히 눈에 띈다. 마땅히 정자각으로 오르내리는 두 계단도 전부 낮아 꽤 어색하다. 정자각 지붕 아래를 통해서 맞은편으로 건너간다. 그 왼쪽 벽 앞 평평한 풀밭에는 제문을 태우는 돌 받침대인 소전대가 놓여 있다. 이곳을 포함해 건원릉(태조 이성계), 정릉에만 있는 특별한 석물이다.

신도비각 안에 세워져있는 신도비 중 하나

신도비각 안에 세워져 있는 신도비 중 하나 ©염승화

정자각 뒤편을 가로질러 신도비각으로 발길을 옮긴다. 다른 능에서는 보통 비각으로 불리는 작은 공간이지만 이 능에서는 특별히 돋보이는 큰 공간이다. 건국 초기, 나라의 기반을 잡은 태종의 공을 후세가 찬양하여 높이 5m가 넘는 대형 신도비들을 세웠기 때문이다. 2개의 비 중 1422년(세종 4)에 세운 것은 그 가치가 높아 보물(제1804호)로 지정되어 있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인 귀부가 깨어져 있는 이 비는 당시의 중국 전통양식에 따라 세운 최초의 신도비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손상된 이 비 우측으로 숙종 21년(1695년)에 새로 세운 신도비가 나란히 서있다.

한적하고 고즈넉한 아름다운 둘레길

한적하고 고즈넉한 아름다운 둘레길 ©염승화

이제 능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둘레길로 간다. 이 길을 돌아서 능침 공간으로 가볼 요량이다. 능을 감싸듯 안은 산자락으로, 약 570m쯤 이어지는 이 길은 고즈넉한 분위기가 그만인 숲속 오솔길이다.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했을 만큼 한적하다. 홀로 사색에 잠기다 보니 금세 원릉과 인릉 사이 갈래 지점에 도달한다. 천천히 걸으며 새해맞이 각오를 다져보는 시간이 자연스레 주어진다. 이 지점은 두 능의 능침 공간으로 각각 오르내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둘러 나무 계단을 밟아 원릉의 능침으로 올라간다.

조선 초기 여러 특징을 가진 헌릉 능침

조선 초기 여러 특징을 가진 헌릉 능침 ©염승화

제례 준비를 하는 재실의 옆면과 뒷면

제례 준비를 하는 재실의 옆면과 뒷면 ©염승화

헌릉과 인릉은 능침공간이 상시 개방되는 능 중 하나다. 다만 한 쪽 측면만이 공개되어 있기에 능침의 전후좌우를 모두 살펴보지 못하는 한계가 살짝 서운하다. 바투 능침을 마주하면 정말이지 능에 온 것이 실감난다. 만인지상을 실제로 만난 것 같은 위엄이 절로 느껴지는 곳이다. 가장 먼저 커다란 두 봉분이 눈에 띈다. 두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이 둘러쳐져 있다. 병풍석에 새겨진 십이지신 상의 양각이 뚜렷이 보인다. 문무석인을 비롯해 석양, 석마, 석호 등 여러 석물들이 공간에 꽉 들어차도록 서있는 점도 두드러진다. 다른 능에 비해, 그 수가 월등히 많다.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이 5개인 점도 또 다른 특징이다. 이곳에서 정자각 방면을 향해 내려다보는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헌릉 탐방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인릉의 능침공간

헌릉 탐방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인릉의 능침공간 ©염승화

헌릉은 구리시 동구릉의 건원릉처럼 조선 초기를 대표하는 왕릉이다. 이곳은 헌릉뿐만 아니라 한 곳에 있는 조선 후기 능인 인릉을 연계하여 비교, 탐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아늑한 숲 속 길을 한갓지게 걸을 수 있는 힐링 공간이기도 하다. 이맘때 가면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한 매력이 듬뿍 들어있다. 도심 속 고요한 조선왕릉 헌릉을 찾아 역사와 문화, 자연의 숨결을 골고루 느껴보길 권한다.

 

■ 서울 헌릉·인릉 관람 안내

○ 교통 : 지하철 3호선 양재역 8, 9번 출구→중앙차선 버스 환승 440, 452번 승차→헌릉·인릉 입구 하차→육교 건너기 포함 약 630m (도보 약 10분)

○ 위치 : 서울 서초구 헌인릉길 34 (내곡동 1-2449)

○ 운영 : 화~일요일 개방/ 매주 월요일 휴관

  – 11월~1월 06:30~17:30 (입장 마감 16:30)

  – 2월~5월 / 9월~10월 06:00~18:00 (입장 마감 17:00)

  – 6월~8월 06:00~18:30 (입장 마감 17:30)

○ 관람료 : 1,000원 (만25세~만64세) / 단체 10인 이상: 800원

○ 유의사항 : 금연구역 및 반려동물 동행 불가

○ 문의 : 02) 445-0347, 02)341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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