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문화진지, 문화로 도시를 지킨다

시민기자 최우현

발행일 2019.09.16. 14:59

수정일 2019.09.18. 17:51

조회 2,619

공원 입구

서울시 도봉구에 위치한 '평화문화진지' 입구 ⓒ최우현

"평화문화진지..잠깐 '대전차진지'라고?"

서울 구석구석에 위치한 도시재생공간을 소개하는 <잘 생겼다! 서울> 팸플릿에는 다소 이색적인 명칭의 시설이 하나 소개돼 있다. 서울시 도봉구에 위치한 '평화문화진지(서울대전차진지)'가 바로 그것이다.

'진지'라는 군사 용어도 그렇지만 전차(車), 이른바 '탱크(tank)'를 막기 위해 활용된 시설이 하나의 '명소'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보통 군사적 가치가 있는 공간을 기념하는 시설은 접경지역에나 있는게 아니던가? 경기도 파주의 '제3땅굴'을 안보관광 시설로 활용했듯 말이다.


이러한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평화문화진지>라는 공간은 언뜻,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콘셉트가 강할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찾아가 본 '평화문화진지'에는 그 어떠한 '정치적 이념'도 '투쟁적 가치'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안한 휴식과 문화의 공간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평화문화진지, 아픈 과거를 품고 희망의 오늘을 향해

본래 평화문화진지가 위치한 도봉동 일원은 조선시대 나랏일로 여행하는 관리들이 쉬거나 잠을 잘 수 있도록 만들어진 '다락원(院)'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그러나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서울 점령로에 위치한 도봉구 일대와 이 곳을 지나는 3번 국도는 남침 통로로 이용됐고 전차를 필두로 한 북한군 병력이 서울로 진입하게 되는 지름길이 돼 버리고 만다.

이어 1968년에는 북한 무장간첩이 서울에 침투한 '김신조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이 지역의 방위에 대한 국가적 필요성은 가중됐다. 결국 1970년 서울 요새화 계획의 일환으로 '대전차방호시설'이 건립되게 되는데 이것이 평화문화진지의 최초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1층은 두꺼운 콘크리트 외벽으로 무장시켜 대전차화기 활용 진지로, 2층부터 4층은 군인들의 주거시설로 활용한, 다소 독특한 형태의 군사시설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화문화진지 과거모습(평화문화진지 홈페이지)

독특한 형태의 군사시설물로 건립되었던 '평화문화진지' 최초의 모습 ⓒ평화문화진지 홈페이지(culturebunker.or.kr)


그러던 2014년, 민관의 소통을 통해 대결과 분단의 상징이었던 이 곳을 문화와 창조의 공간으로 바꿔보고자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군인아파트 철거(2004년) 이후 오랜기간 흉물로 남아있던 대전차방호시설터를 공간 재생을 통해 리모델링 하는 것이 그 목표.
서울시와 구청, 관할 군부대의 긴밀한 협력이 이어졌다. 그리고 2017년 11월 6일, 
과거의 흔적들을 그대로 보존한 문화예술의 공간, 평화문화진지가 탄생하게 된다.


평화문화진지의 공간들. 문화와 창작의 요람

이처럼 평화문화진지의 역사가 밝지만은 않았기에, 이 공간을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승화시켜보려는 민관의 노력들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실제 평화문화진지는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공간과 일반 방문객들을 위한 관광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데 스튜디오와 공방 등이 작가들의 공간이라면 광장과 전망대, 전시실 등은 방문객들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돼 있다.


평화광장 내 석벽(좌)와 베를린 장벽(우)

평화광장 내 석벽(좌)와 베를린 장벽(우). '평화광장'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기증받은 '베를린 장벽'3점이 전시되어 있다. ⓒ최우현


일단,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만날 수 있는 것은 '평화광장(Peace Square)'이다. 평화광장은 평화문화진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시설로 방문객들은 이곳을 통해 평화문화진지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를 접할 수 있다. 

더불어 평화광장의 벽면에는 시설의 연혁에 대한 각종 정보들이 나열돼 있는데 한편에는 독일 베를린시로부터 기증받은 3점의 '베를린 장벽'도 전시하고 있어 평화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다.


본격적인 관람으로 들어가 마주하는 것은 5개 건물동에 골고루 배치된 각종 스튜디오와 공방들이다. 평화문화진지는 5개의 건물동에 8개에 이르는 스튜디오와 3개의 공유공방, 세미나실 등을 두고 있는데 이곳은 주로 평화문화진지에 입주한 작가들을 배려한 시설이라 할 수 있다. 

하나하나의 면적이 크게 넓지는 않지만 작가들이 창작활동을 이어나가기에 적합하도록 용도에 따라 배치했으며 내부에는 탁자 등 기본적인 기재를 갖추고 있다. 


또 한가지 특징적인 것은 평화문화진지가 과거 군사시설로 활용된 관계로 차단된 공간과 칸막이가 유난히 많은데 이를 잘 살려 공간을 세밀하게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들은 1개동에 7개씩, 28개에 이른다.(편의시설동 제외)


세미나실(좌)와 공방(우)

세미나실(좌)와 입주작가들의 방(우) ⓒ최우현


매년 1기의 입주작가들이 이 곳에 들어오는데 올해 3기 입주작가들이 들어올 예정이다. 모집이 막 끝난터라 비어있는 공간이 일부 있는데 공고에 따르면 본격적인 입주는 9월 이후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지난 2기(2018~2019년)에는 김현주, 표현우, 이장욱 등 8명의 작가들이 입주하여 활동한 바 있다.

작가가 아닌 일반 방문객들도 이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공연장, 연습실, 세미나실 , 공유공방 등은 대관이 가능하도록 신청을 받고 있다. 


물론 가장 적극적인 활용방법은 평화문화진지에서 개최하는 작가 전시회 및 프로그램, 공연 등에 참여하는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들은 평화문화진지 홈페이지를 통해 수시로 공지되고 있다. 

문화해설사와 함께하는 평화문화진지 '문화해설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편, 평화문화진지가 간직한 아픈 역사와 배경을 알고 싶다면 '상설전시관'에 들러보길 추천한다. '상설전시관'은 다락원 당시부터 6.25전쟁, 김신조 사건까지 이어진 평화문화진지의 역사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과거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사진들과 증언, 동영상 등이 긴 복도 공간을 이용해 전시돼 있다.
 대전차 방호시설로써 각종 무기를 거치했던 '총구'의 모습도 그대로 남아 관람할 수 있다.


상설전시관 전경

상설전시관,긴 복도에 평화문화진지에 대한 역사가 전시 중이다 ⓒ최우현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탐방의 백미는 역시 전망대를 통한 관람이다. 참고로 평화문화진지는 매우 이상적인 입지여건을 가진 시설이다. 평화문화진지는 도봉구의 대표적인 테마공원인 '서울창포원'과 동북권 생활체육의 중심지 '다락원체육공원'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때문에 전망대에 올라 사방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 자못 즐겁다. 창포원의 우거진 녹음과 저수지를 감상할 수 있고 다락원체육공원의 동선을 따라 산책하는 시민들의 모습이나 물놀이장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서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우뚝 솟아있는 도봉산 선인봉의 자태도 드러난다.


전망대 3층에서 바라본 전경

3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최우현


전망대는 총 3층이다. 엘레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으며 2층에서 내리면 평화문화진지 건물동의 옥상 동선을 통한 가벼운 산책도 가능하다. 다만 3층은 안전상의 이유로 전망만 가능하다.


도시를 문화로 지킨다

평화문화진지의 슬로건은 '도시를 문화로 지키다'라고 한다. 군사시설로 활용된 과거와 공간재생을 통해 새롭게 열린 오늘을 연결하는 의미를 품고 있는 듯하다.
그 말대로다. 다양한 재주와 독창성을 가진 창작자들이 이 곳에 기반을 두고 나아가 자립할 수 있는 환경까지 만들 수 있다면 그야말로 '문화를 지키는 도시'가 구현될 것이고 그것은 곧 '도시를 문화로 지키는' 단계로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문화진지 내부 복도

평화문화진지에 나들이 나온 시민 모습 ⓒ최우현


활동하기 좋은 가을이 오면 곧 3기 입주작가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고 다양한 문화·체험프로그램도 소개될 것이다. 문화, 생태, 환경 등 다채로운 주제가 다루어지길 바라며 이에 따른 홍보도 병행된다면 바랄나위가 없을 것이다.

굳이 평화문화진지만의 볼거리를 찾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서울창포원 - 평화문화진지 - 다락원체육공원은 도보로 연결돼 있고 원한다면 그 경계를 쉬이 넘나들 수 있다. 
여유있고 느긋한 가을의 한 때를 보내고 싶다면 이곳을 한번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 평화문화진지

 - 위치 : 서울시 도봉구 도봉동 마들로 932

 - 홈페이지 : culturebunker.or.kr

 - 문의 : 02-3494-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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