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민기자학교 현장수업, 정동 한바퀴

시민기자 문청야

발행일 2019.06.25 10:24

수정일 2019.06.2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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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바라본 대한성공회 대성당

대한성공회 대성당

올해 ‘내 손안에 서울’ 시민기자 교육은 서울시평생학습진흥원 ‘모두의 학교’와 함께 진행해 지난 5월부터 매월 ‘서울 시민기자학교’를 진행해오고 있다.

첫 번째 수업은 5월 금천구의 ‘모두의 학교’에서 세 명의 전문 멘토들의 특강이 있었고, 지난 주말 정명섭 멘토와 두 번째 수업이 있었다.

정명섭 멘토는 ‘서울 재발견’이란 칼럼으로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서울 이야기를 내 손안에 서울에 연재하고 있는 작가이다. 이번 수업은 야외수업으로 역사를 취재하는 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야외 옥상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야외 옥상

시청역 3번 출구 앞에 위치한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입구에서 만났다. 어느 순간 덕수궁 옆에 있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이 잘 보인다는 것을 느꼈는데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 완공되고부터였음을 알았다. 메인 전시공간은 지하 3층으로 내려가야 하지만 지하 1층부터 다양한 형태의 전시공간들이 자리 잡고 있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붉은 벽돌로 만든 건물은 건물만 본다면 유럽의 어느 곳에 와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입구가 한옥으로 되어있는 건물이 보이는데 바로 수녀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이 성당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분명 서양식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한옥의 처마와 지붕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덕수궁 안 연못

덕수궁 안 연못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대한문을 통해 덕수궁으로 들어왔다. 돌담을 따라 연못을 구경했다. 이 연못은 가을에 특히 예쁘고 정명섭 작가 개인적으로는 눈이 왔을 때 제일 예쁘다고 했다.

잠시 연못 구경을 하고 함녕전을 끼고 돌아 고종이 커피를 즐겨마시던 곳이라는 정관헌 내부를 구경하고 맨 위 돌계단에 서서 앞에 보이는 풍광을 바라보았다. 어떤 건물이든지 주인이 보았을 시선으로 풍광을 감상해 보라고 충고해 주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렇게 보니 시원하게 펼쳐진 풍광이 왜 그곳에 정관헌을 세웠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종이 커피를 즐겨마시던 곳 정관헌

고종이 커피를 즐겨마시던 곳 정관헌

덕수궁 석조전

덕수궁 석조전

짙은 녹음의 가로수 길을 지나 회백색의 기둥과 난간들을 볼 수 있는 석조전을 보았다. 정명섭 작가는 어느 건물이나 회랑이 참 좋다고 했다. 석조전은 나무와 기와, 벽돌로 만든 전통 건축물과는 전혀 다른 석회암으로 만든 굵은 원형 기둥이 줄지어 서 있는 그리스나 로마 신전처럼 느껴지는 건물이었다.

석조전에서도 올라갈 수 있는 최대한으로 올라가서 풍광을 바라보았다.

석조전에서도 올라갈 수 있는 최대한으로 올라가서 풍광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시립미술관에 올라가면서 정명섭 작가는 퀴즈를 냈다. “왜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고 했을까요?” 덕수궁 옆에 있는 돌담길은 데이트 할 장소가 마땅찮던 60~70년대 연인들의 단골 데이트 코스였다. 덕수궁 돌담길이 영국 대사관에 의해 중간에 끊겼기 때문에 연인들의 인연도 끊어진다고 본 것이라고 했다. 이혼 수속을 위해 덕수궁 옆에 있던 가정법원을 방문해야 했던 것도 속설이 퍼진 이유로 꼽힌다고 했다. 그때의 가정법원은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상태다.

서울시립미술관이 되기 이전에 가정법원과 대법원이었고, 그 이전 일제강점기에는 악명 높은 경성재판소였다. 이곳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에 의해 재판을 받고 형을 선고 받았다. 광복 이후에도 용도에 맞게 대법원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한 이후에는 서울 시립미술관으로 탈바꿈해서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작은 로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정동제일 교회와 이화여고로 향하는 길,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길, 미국 대사관저인 하비브 하우스로 올라가는 길, 지붕에 황금 돔을 달고 있는 러시아 대사관으로 가는 길로 각각 나눠진다. 그 중에서 정동제일교회와 이화여고로 향하는 길에 정동길이라는 명칭이 붙어있다.

중명전

중명전

이곳을 조금 걷다보면 공연장인 정동극장이 나오고 옆으로 샐 수 있는 작은 골목길이 나온다. 정동을 걷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이 길의 끝에는 붉은 벽돌로 만든 2층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골목길 안쪽이기도 하지만 살짝 휘어져 있어서 밖에서 안 보이기 때문에 건물 앞에 도달해야만 볼 수 있었다.

넓은 마당을 가진 이 건물은 벽돌로 만든 아치형 기둥과 직선의 지붕, 그리고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만든 난간으로 구성돼 있다. 1,2층 외부가 발코니로 구성돼 있어서 고풍스럽고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1층 현관 위에는 중명전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보인다. 덕수궁이 경운궁이라고 불리던 시절에 궁궐 안에 지어졌다.

1896년, 경복궁에 있던 고종은 일본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했다. 그리고 1년 만에 환궁하는데 경복궁이 아니라 경운궁으로 향했다. 외국 공사관에 둘러싸인 경운궁이야말로 일본의 위협을 피하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경운궁에는 여러 전각들이 세워지게 되는데 중명전도 그 중 하나였다고 한다.

중명전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로 이용되었다. 안에 들어가면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마네킹과 을사늑약 조약문을 볼 수 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헤이그 밀사들에 관한 것들을 볼 수 있는 공간도 나온다. 이상설과 이준, 그리고 이위종으로 구성된 세 명의 밀사가 어떻게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까지 가게 되었는지, 그들이 그곳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볼 수 있다.

국토발전전시관

국토발전전시관

구 러시아 공사관이 있는 정동공원에서 내려와 국토발전전시관으로 이동했다. 캐나다 대사관 바로 앞이다. 규모도 꽤 큰 건물에, '국토발전전시관'이라는 이름이 크게 붙어 있다. 국토발전전시관은 국토교통부가 국토교통 역사와 정책 등을 홍보하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옛 서울지방국토관리청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2017년 11월에 개관했다. 4층 전체가 국토종합개발계획 홍보관으로 꾸며져 있다. 해무 기차 시뮬레이션 체험도 해보았다. 건물 크기가 큰 만큼, 전시관 크기도 크고, 다양하게 이것저것 갖다놔서 나름 구경할 것도 많았다.

오늘 함께 돌아다니며 서울엔 여전히 과거의 기억들을 간직한 곳이 구석구석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느겼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시작해 덕수궁을 거쳐 고즈넉한 돌담길을 따라 서울시립미술관-중명전-구러시아공사관-국토발전전시관까지(2.3km정도, 2시간 소요) 걸으며, 한국의 근현대사를 만나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