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그날" 옛 대공분실서 열린 박종철 열사 추모제

시민기자 김진흥

발행일 2019.01.17 16:31

수정일 2019.01.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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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 빌딩숲 사이에 위치한 옛 남영동 대공분실

용산구 빌딩숲 사이에 위치한 옛 남영동 대공분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1년 전, 영화 ‘1987’을 통해 큰 이슈가 됐던 이 한 마디. 32년이 흐른 지금도 이 말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잊을 수 없는 말이 됐다. 1987년 당시 경찰총수인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기자회견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이 같은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이 거짓말은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지폈고 6월 민주항쟁으로까지 연결됐다.

‘보고싶다 종철아’ 피켓을 들고 있는 시민들

‘보고싶다 종철아’ 피켓을 들고 있는 시민들

관계자들이 국민에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묻으려던 사건. 그것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다. 1987년 1월 14일에 터진 이 사건은 당시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한 선배의 소재를 파악하려던 경찰이 박종철 군을 불법 연행하면서 시작됐다. 박종철 군은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서 경찰의 물고문을 비롯한 수많은 고문으로 인해 젊은 생을 다했다. 이 사건을 감추려 했던 경찰과 정부의 속내가 드러나면서 수많은 국민은 거리에 나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드러냈다. 결국 전두환 군사정권은 ‘6.29 선언’으로 물러났다.

새로 발견된 3층 고문실

이번에 새로 추가 발견된 3층 고문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우리나라 아픈 현대사를 비춘 대표적 장소다. 우리나라 고문의 역사가 내포된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사건이 씨앗이 되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이뤘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인권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충분하다.

그러나 현재는 당시 대공분실 흔적을 살피기 어렵다. 6.29 선언 이후, 우리나라 정부와 경찰은 고문의 현장을 흔적 없이 사라지게 했다. 남산과 서빙고동 보안사 대공분실은 없어졌고 남영동 대공분실은 건물은 있지만 당시 흔적을 없앴다.

또한 경찰은 남영동 대공분실에 경찰청 인권센터를 세워 인권 경찰의 모습을 홍보했다. 경찰이 시민을 고문한 곳이었고 민주주의와 인권 탄압의 상징 공간에서 인권 경찰을 내세운 점에서 수많은 논란이 지속됐다. 여러 시민단체들이 관리 권한을 경찰청에서 떼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12월 남영동 대공분실 관리 권한은 행정안전부로 이관됐다. 사진은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

지난해 12월 남영동 대공분실 관리권한은 행정안전부로 이관됐다. 사진은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

결국 지난해 12월, 옛 남영동 대공분실 관리 권한이 경찰청에서 행정안전부로 이관했다. 행정안전부는 대공분실 터에 민주인권기념관을 세운다고 밝혔다. 그리고 행정안전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위탁해 시민이 직접 운영하기로 정했다. 처음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이 경찰의 손에서 벗어나 시민의 품으로 온 것이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건물 내부가 추가로 공개됐다. 3층에서 고문 조사실로 추정되는 공간이 새롭게 발견됐다. 이곳은 붉은 타일이 붙은 욕실과 좁은 창문, 감시카메라 설치 시설 등 다른 고문 조사실과 비슷한 구조로 이뤄졌다. 크기는 다른 조사실의 두 배가 넘었다.

이현주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설계도와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가장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복원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故 박종철 열사와 故 박종철 열사 아버지 영정 사진이 건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

故 박종철 열사와 故 박종철 열사 아버지 영정 사진이 건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맞이한 박종철 32주기 추모제. 지난 13일 오후 2시, 박종철 열사 32주기 추모제가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렸다. ‘보고 싶다 종철아!’라는 주제로 진행된 추모제는 故 박종철 열사 영정이 고인이 된 아버지와 함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같이 나오는 퍼포먼스로 시작했다.

추모제를 계획한 한 관계자는 “이 퍼포먼스를 펼친 이유는 경찰이 아닌 시민의 품으로 온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걸어 나오길 바라는 것과 박종철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첫 해이므로 같이 이 건물에서 나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행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추도사, 유가족 인사, 시민과 함께 합창하는 등 여러 프로그램들이 이어졌다.

김세균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회장은 “올해 추모제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대공분실이 시민의 품으로 온 이후 첫 추모제이기 때문이다. 박종철 열사가 32년 만에 경찰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제 종철이가 웃으며 이 건물을 빠져 나오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김근태 전 장관이 고문 당했던 515호실

김근태 전 장관이 고문 당했던 515호실

지난해 영화로 이슈가 돼 많은 시민들이 추모제에 참석했다. 올해도 작년과 버금갈 정도로 여러 시민들이 대공분실에 찾아와 뜻을 같이했다. 무엇보다 경찰의 손에서 벗어난 이후 처음 맞이하는 추모제인 만큼 감격에 벅찬 시민들을 볼 수 있었다.

임수용 씨는 “경찰이 시민을 고문한 곳에 인권경찰센터를 세우고 경찰청이 주인 노릇을 해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희석되는 듯했으나 드디어 시민의 품으로 왔다는 생각에 매우 기쁘다”라고 말했다.

4층 박종철 기념 전시관

4층 박종철 기념 전시관

509호에서 박종철 열사에게 헌화한 이미혜 씨는 “박종철 열사가 고문당한 곳에 와 보니 지금도 분위기가 무거운데 당시에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곳이 앞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잘 알리는 곳으로 바뀌길 바란다”라고 언급했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새롭게 태어나고자 한다. 그전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새롭게 발견된 곳들과 현재 흔적 없는 곳들을 당시 상황을 재연할 수 있게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용도를 정할 방침이다.

한 관계자는 “내부 복원 등을 마무리하면 약 2년 후에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오픈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오늘날 옛 남영동 대공분실은 신분증 없이 출입이 가능하다. 4층 박종철 기념 전시실과 5층 시민들이 고문당했던 장소들을 관람할 수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 대한 해설도 들을 수 있다. 매월 2, 4주 토요일 오후 1시와 2시에 예약을 통해 가능하다. (해설 및 문의 : 02-2273-2276)

“지금도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남영역을 지나면 부들부들 떨린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받았던 한 분의 전언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지하철 1호선 남영역 바로 옆에 있다. 어둠의 공간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의 상징으로 거듭나려고 한다. 어둠을 물리치는 빛처럼 어둠이 가득했던 이곳이 민주주의의 빛으로 승화되는 장소로 변화되길 바란다.

남영동 대공분실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71길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