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밤을 노래하다' 서대문형무소 야간역사체험

시민기자 박찬홍

발행일 2018.10.12. 16:24

수정일 2018.10.12. 16:46

조회 2,968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전경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전경

완연한 가을이다. 지난 10월 6일 저녁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아주 특별한 가을날의 노래가 전해졌다. “감옥에서 밤을 노래하다”라는 야간 체험 프로그램이다.

이번 프로그램에선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근대감옥 서대문형무소를 배경으로 인디밴드 ‘만쥬한봉지’의 공연과 ‘창작집단 탈무드’가 함께 하는 참여형 연극으로 2시간 동안 진행이 되었다.

박경목 관장의 해설 모습

박경목 관장의 해설 모습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박경목 관장이 직접 사회를 보며 서대문형무소에 관한 역사와 이야기, 그리고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리고 오늘의 첫 무대의 노래인 ‘조선의 마음’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인디밴드 만쥬한봉지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홀로 메마른 들판 위에 기댈 곳 하나 없이”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조선의 마음’ 노래는 일제에게 억압을 받으며 자유를 갈망하는 우리 민중의 마음을 담은 노래로, 실제 일제강점기 때는 금지곡으로 지정이 될 만큼 우리 민족에게는 의미 있는 노래이다.

다음 곡으로는 영화 <눈길>에 나오는 OST 주제곡이며 가수 이효리가 재능 기부를 한 ‘나를 잊지 말아요’를 열창하였다. 영화 <눈길>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일제강점기 시절 위안부에 관한 내용이다. 꽃 다운 나이에 일제 총, 칼 앞에 강제로 이름 모를 전장으로 끌려가 상상할 수 없는 피해와 고통을 당한 우리 민족의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위안부의 실상이 알려진 것은 1990년 초반이었다.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38명 중 현재 생존해 계시는 피해 할머님들은 이제 불과 27명 정도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 나라와 국민이 힘을 더하고, 노력해 위안부 피해자 분들에 대한 진정어린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분들이 소외되고, 잊혀지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생각해 봐야겠다.

약 30분간 의미 있는 노래 공연이 진행되었고, 다음으로 서대문형무소 투어와 함께 연극체험이 시작되었다.

모든 참가자가 달빛이 짙은 밤 하늘 아래 보안과청사 앞에 모였다. 학예연구사님의 보안과청사에 대한 설명을 경청 하고 있는 사이 갑작스러운 함성이 들렸다.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어둠속에서 태극기를 들고 뛰어 오는 사람들의 갑작스런 출연에 모두가 놀라하였다. 바로 배우들이 3.1운동을 표현하는 포퍼먼스를 진행한 것이다.

배우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모습

배우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모습

1919년 당시 학생복장을 한 배우들이 모두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다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그 중 한 배우는 직접 보안관 청사 앞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읽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 일본군 복장을 한 배우들에 의해 폭행을 당하고, 강제로 끌러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참가자들의 가슴은 뛰었고, 알 수 없는 흥분과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계속해서 학예연구사를 따라 보안과청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막이 흐르며,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 도착한 곳은 취조실이였다.

취조실에서는 조금전 3.1운동을 하였던 학생들을 붙잡은 일본군들이 취조를 하였고, 취조에 불응하며, 대한독립의 정당성을 외치는 학생을 고문하고, 폭행, 구타하는 모습을 재연하였다.

실제 독립운동을 하며 수많은 고초와 고통의 한계의 넘는 아픔을 겪었을 수많은 독립운동가분들의 모습이 절로 그려지는 현장이였다.

다시 지상으로 나와 더욱 어두워진 하늘과 함께 12옥사로 향하였다. 이곳에서는 즉결재판과 몸수색 후 바로 감옥에 들어가는 과정을 재연하였다.

숨을 죽이고 학예연구사의 일제강점기 시절 재판과정의 부당함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사이 취조실에서 부당한 폭행을 당했던 학생이 다시 일본군들에 의해 끌려와 즉결 재판을 받았다.

사형이였다. 그 짧은 재판 과정을 통해 한 인간의 목숨이 허망하게 갈린 것이다.

독립운동가의 부당한 재판 모습

독립운동가의 부당한 재판 모습

이제는 사형수가 된 그 학생을 위해 모두가 응원의 메시지를 작성을 후 몸속 깊은 곳에 숨겨 실제로 감옥안으로 들어갔다. 빛도 없고, 싸늘하며 좁은 감옥 안에는 독립운동을 외치던 학생이 파랑색 죄수복과 빨강색 명찰을 품에 안고 앉아 있었다.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작성했던 응원의 메시지를 서로 서로 읽어 주며 독립운동가 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감옥에 투옥된 독립운동가의 마지막 말씀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

감옥에 투옥된 독립운동가의 마지막 말씀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

이 시간도 잠시, 일본군들에 의해 다시 끌려 나간 독립운동가는 이제 사형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 뒤를 다 함께 조용히 걷다가 독립운동가는 사형장으로 향하였고, 참가자들은 공작사로 향하였다.

공작사는 1923년 수형자들을 동원한 작업공간으로 지어진 건물로, 애국지사와 수감자들을 강제 동원하여 형무소, 군부대, 관공서에서 사용하는 관용물품을 만들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제는 군수용품 생산작업을 모든 형무작업에 최우선적인 일로 삼아 강제로 동원하였던 곳이다.

공작사 안에서 참가자들은 하얀 백합꽃을 만드는 체험을 하였다. 어른들부터 아이들까지 모두 정성스럽게 백합꽃을 만들어 다 함께 사형장 옆에 있는 추모비로 향하였다.

사형집행 전 독립운동가의 마지막 모습

사형집행 전 독립운동가의 마지막 모습

사형수 복장을 한 독립운동가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며 한 손에 들고 있는 백합꽃을 흔들어 주었고, 잠시 추모비 앞에서 묵념을 한 후 꽃을 헌화 하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오늘의 프로그램은 종료가 되었다.

어둠 속의 서대문 형무소 곳곳을 탐방하는 참가자들

어둠 속의 서대문 형무소 곳곳을 탐방하는 참가자들

서대문형무소는 초기에는 ‘경성감옥’이라는 명칭으로 개소해 수감인원 500명 정도였다. 일제 침략에 무력으로 맞섰던 의병들이 주로 수감이 되었고,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으로 수감자가 급격히 늘어나 민족대표 33인을 비롯하여, 3,000여 명의 육박하는 독립운동가가 수감되었다고 한다. 1945년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이 되었고, 그 중에 상당수가 옥중에서 순국하신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역사의 현장이다.

오늘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참가자들 가슴에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고, 순국하신 독립운동가 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우리 역사의 소중함을 다 시 한번 인식할 수 있게 해준 소중한 날이였다.

배우들과 함께 마지막 여운을 기록하다

배우들과 함께 마지막 여운을 기록하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진행된 본 프로그램은 매년 진행이 되고 있으며 특히 2018년 마지막 일정은 10월 15일부터 11월 2일까지 신청을 받아 11월 3일에 진행된다고 한다.

또한 10월 15일부터 11월 2일까지 ‘심용환의 헌법으로 보는 근현대사’, ‘교실밖 민주역사 교실’ 등 다양한 교육도 함께 준비된다고 하니 참여해 보자.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의 끝자락에서 보다 의미 있는 역사체험과 이야기를 접해 보기를 권유한다.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야간문화체험

○ 일시 : 11월 3일 저녁 7시~9시

○ 신청기간 : 10월 15일~11월 2일

○ 인원 : 회당 40명 내외

○ 참가비 : 인당 5,000원

○ 신청방법 : 온라인 신청 선착순 마감(10월 15일 팝업창으로 공지)

○ 문의 : 02-360-8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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