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서울] 꽃샘추위 날려줄 뜨끈한 만두전골

정동현

발행일 2018.03.19 15:19

수정일 2018.04.3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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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네만두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31) 합정 ‘덕이네만두’

사정없이 바람이 몰아쳤다. 한강 변으로 향하는 합정 어귀에서 사람들은 영화 속 비극의 주인공처럼 옷깃을 세게 여미었다. 그 바람을 파고들고 있자니 세상의 괴로움과 슬픔이 모두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감각에 온 신경이 집중 되어서, 정확히 이야기 하면 정신이 쏙 나가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바들바들 떨 새도 없었다. 온 힘을 다해 걸었다. 요즘 뜬다는 합정이 아니었다. 강변북로로 빠지는 이면도로는 여전히 한산했다. 한산한 분위기를 타야 하는 모텔만 여럿 있었다. 추워서 만두가 먹고 싶었다. 단지 그 이유뿐이었다. 지도상으로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도보로 5분. 그 5분 동안 에베레스트 정상 인근의 수직 빙벽 구간인 힐러리 스텝을 오르는 듯한 극한의 기분을 느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하는가라고 입 밖으로 불평이 세어 나올 무렵 ‘덕이네만두’라는 큰 간판이 보였다. 그 간판은 세찬 바람에 소리를 내며 삐걱거렸다. 정면에서 바라본 ‘덕이네만두’는 가정집이었다. 현관으로 향하는 돌계단이 얕게 있고 그 옆으로 주인장이 기르는 듯한 화분이 몇 있었다. 친구 집에 가듯 익숙한 모양의 철문을 밀고 들어갔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따뜻한 온기. 사람이 사는 집의 낯익은 온기가 몸을 감싸 돌았다. 방 여기저기에는 방송에 출연했다는 액자가 붙어 있었는데 색이 너무 바래있어 오래된 소문 같았다. 그 액자의 주된 내용은 이곳이 만두 달인의 집이라는 것이었다. 만두 빚는 기술을 어머니에게 전수 받았으며, 그 기술이 어떤 것인지 등등.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각 때문인지 여러 방으로 나뉜 가게 안에는 손님이 몇 없었고 종업원들도 오후 햇살에 느긋해진 모양새였다. 한참 메뉴와 액자를 보다가 주문을 넣었다. 멀리 있던 중년 여자는 ‘네에’하는 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다가왔다.

이 집의 자랑이라는 만두전골과 그것으로는 아쉬워 빈대떡 한 장을 시켰다. 밑반찬이 먼저 깔렸다. 깨소금을 살짝 뿌린 멸치 볶음과 집에서 절인 고추장아찌, 서울식으로 젓갈을 적게 쓴 김치가 놓였다. 하나씩 맛을 봤다. 어렸을 적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친구 어머니가 해주던 맛, 약간 낯설지만 그렇다고 멀게 느껴지지도 않는 맛이었다. 곧 이어 만두전골이 나왔다. 다른 집과 달리 만두는 칼국수 면과 함께 따로 접시에 올려 나왔다. 전골 냄비에는 하얀 사골 육수와 스지, 소고기 양지, 배추, 버섯 여러 종류, 부추가 담겨 있었다.

전골 냄비에는 하얀 사골 육수와 스지, 소고기 양지, 배추, 버섯 여러 종류, 부추가 담겨 있다

전골 냄비에는 하얀 사골 육수와 스지, 소고기 양지, 배추, 버섯 여러 종류, 부추가 담겨 있다

가스 불을 켰다. 사골 육수의 고소한 향이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갔다. 작은 주방에 큰 솥을 올려 오래 끓인 그 향이었다. 스지와 소고기 양짓살을 건져서 간장에 찍어 먹었다. 고기의 은근한 단맛, 간장의 짭조름한 맛이 낮은 목소리로 울렸다. 국물을 떠먹었다. 그 목소리가 낮고 또 낮게 메아리쳤다. 그 메아리에 대답하듯 숟가락질을 했다.

바삭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잘 구운 빈대떡

'바삭'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잘 구운 빈대떡

그쯤 빈대떡이 채에 받혀 나왔다. '바삭'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잘 구운 빈대떡이었다. 바깥 부분부터 조금씩 떼어 입에 넣었다. 막걸리 생각이 나는 맛이 아니라 사이다 한 잔이 필요한 수더분한 맛이었다.

초록 보자기 같은 만두

초록 보자기 같은 만두

국물이 어느 정도 끓어오른 후 초록빛 나는 만두를 육수에 넣었다. 부추를 갈아 넣어 초록 보자기 같았다. 익어 위로 떠오른 만두를 접시에 담아 반으로 갈랐다. 하얀 김이 올라왔다. 그 속에는 두부와 고기, 씻은 김치, 숙주나물이 보였다. 열을 식혀가며 입에 넣었다. 하나라도 더 팔려는 악 받힌 목소리는 없었다. ‘더 먹어라, 더 먹어라’하는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배가 부르길 바라고 몸에 따스해지길 바라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이끌려 만두를 먹고 칼국수를 훌훌 풀어 건져 먹었다. 다시 바깥으로 나왔을 때 여전히 바람은 거셌다. 그러나 그 바람 앞에 조금은 어깨를 펼 수 있었다. 속에 든 따뜻한 기운이 계속 메아리쳤다.

정동현대중식당 애호가 정동현은 서울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한 끼’를 쓴다. 회사 앞 단골 식당, 야구장 치맥, 편의점에서 혼밥처럼, 먹는 것이 활력이 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