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기차길 대신 ‘경춘선 숲길공원’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8.02.26. 14:57

수정일 2018.02.26. 14:57

조회 5,356

경춘선 열차가 다니던 철길이 사람이 거닐 수 있는 `경춘선 숲길공원`로 바뀌었다

경춘선 열차가 다니던 철길이 사람이 거닐 수 있는 `경춘선 숲길공원`로 바뀌었다

우리나라 철도노선 가운데 경춘선만큼 개인적으로 애틋하게 느껴지는 열차도 없지 싶다. 대학생시절은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허해질 때, 친구와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연인과 단둘이 짧은 여행을 떠날 때... 경춘선 열차에 몸을 싣고 춘천여행을 떠나곤 했다. 좌석이 넓고 창문이 큰 경춘선 무궁화호 열차에서 보이는 북한강변 풍경, 간식거리가 든 카트를 끌고 열차 통로를 지나가던 이동 매점 아주머니 등 오래오래 기억 속에 남겨두고 싶은 장면들이다.

1939년에 지어진 경춘선은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족의 자본으로 만든 최초 철도 시설로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경춘선 열차가 다니던 철길 위를 사람들이 거닐 수 있게 조성한 곳이 ‘경춘선 숲길공원’이다. 지난 2010년 폐선 될 때까지 경춘선이 지나가던 길 중 서울시 구간인 6.3km에 숲길을 조성했다.

* 경춘선 숲길공원 주요 구간 : 월계역(1호선 전철) - 경춘철교 - 경춘선 기차길 - 레일바이크길 - 무궁화호열차 방문자 센터 - 공릉동 도깨비시장 - 옛 화랑대역 기차공원 - 화랑대(육군사관학교) - 태릉, 강릉 – 담터마을

철길은 도심 속 공원, 도깨비 시장, 옛 간이역, 육군사관학교(화랑대), 왕릉 등 다채로운 곳을 지나 걸음걸음이 지루하지 않고 여행을 온 기분이 든다. 철길의 원형을 최대한 살려 만든 산책로 옆에 자전거도로도 나있어 자전거타고 왕복하며 거닐기도 좋다. 6호선 화랑대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마을안길, 공원, 텃밭을 지나는 1단계 구간은 다가구 단독 주택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이곳을 지나는 철길에 난 산책로, 쉼터와 작은 가게들은 여행자는 물론 동네 주민들의 만남과 소통의 장소가 되고 있었다.

직접 타볼 수 있는 레일바이크 &레일핸드카도 빼놓을 수 없다. 레일바이크는 페달을 밟아 자전거 바퀴를 굴리듯 앞으로 작동 시키는 원리이고 선로 보수를 위하여 쓰였던 핸드카는 양쪽에서 펌프질 하듯 핸들을 저어 이동하는 무동력 장비다.

철로 한가운데 서 있는 무궁화호 열차 2량도 눈에 띈다. 이곳은 경춘선 숲길공원 관리사무소와 시민들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춘선 철길 옆에 자리한 공릉동 도깨비시장 입구(좌), 시장에서 부모님을 돕고 있다는 기특한 소년 장사꾼

경춘선 철길 옆에 자리한 공릉동 도깨비시장 입구(좌), 시장에서 부모님을
돕고 있다는 기특한 소년 장사꾼

오래 전 철길 옆에 하나둘씩 생겨난 노점들이 모여 시장이 되었다는 공릉동 도깨비시장(노원구 동일로 180길 37)이 나타났다. 흔히 도깨비시장이라고 하면 무엇이든 만들어낸다는 도깨비 방망이를 연상해 ‘없는 물건 없이 모든 것이 다 있다’는 곳이다.

시장에서 만난 상인 아저씨는 옛날 경춘선을 타고 온 상인들이 새벽에 잠시 장터를 열었다가 아침이면 사라져서 도깨비란 말이 붙었다고 알려 주셨다. 지금은 서울시 노원구에서 가장 큰 시장 가운데 한 곳이 되었다.

시장구경도 하고 식사를 할 맛집을 찾다가 기특한 소년 장사꾼을 만났다. 시장통에서 "식혜 사세요!" 하고 손님을 부르는 앳된 목소리가 눈길을 끌었다. 이 어린 초딩 장사꾼은 주말에 장사하느라 바쁜 부모님을 도와주러 나왔단다. 옆에서 기특한 손주를 바라보는 할아버지는 연신 흐뭇한 표정이다.

증기기관차, 노면전차, 협궤열차 등 다채로운 기차들이 전시된 화랑대 간이역

증기기관차, 노면전차, 협궤열차 등 다채로운 기차들이 전시된 화랑대 간이역

화랑대역(노원구 공릉2동 29-51)은 경춘선 개통과 함께 1939년 7월에 준공된 역으로 서울에 있는 마지막 간이역이었다. 1939년 이 역이 처음 지어질 때 이름은 태릉역이었으나, 1958년 육군사관학교가 경남 진해에서 역 주변으로 이전을 하면서 화랑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근대문화유산으로서 보존가치가 커 2006년 12월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 300호로 지정됐다.

소박하고 정다운 간이역 분위기가 좋아 춘천여행을 떠날 때, 청량리역에 가지 않고 화랑대역에서 열차를 타곤 했다. 이 간이역은 최근 이채로운 철도공원으로 변신했다. 서울에서 부산을 오가며 달렸다는 증기기관차, 대한제국시대 우리나라 최초로 운행되었던 개방형 노면전차, 궤도 간격이 좁아 작고 귀엽게 느껴지는 협궤열차, 외국에선 트램이라 불리는 전차까지 다종다양한 기차들이 들어서 있다. 협궤열차는 1973년까지 수인선(수원~남인천)과 수려선(수원~여주) 구간에서 운행되었다.

울창한 소나무숲이 있어 산책하기 좋은 태릉

울창한 소나무숲이 있어 산책하기 좋은 태릉

보기 드문 기차들 덕에 이곳은 경춘선 숲길공원길에서 시민들이 가장 많이 사진을 찍는 곳이다. 양팔을 옆으로 펴고 뒤뚱거리며 철도 위를 걷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올해 하반기부터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까지의 700m 구간에 노면 전차가 다니고 철도 건널목이 설치되며, 철도 관련 전시와 체험공간 등이 설치된다고 한다.

화랑대역에 있는 안내문을 통해 경춘선에 대해 몰랐던 역사를 알게 됐다. 일제강점기 강원도청을 춘천에서 철도가 놓인 철원으로 옮기려 하자 춘천 상인들과 유지들이 자금을 모아 경춘선 철도를 개설했다고 한다. 도청 소재지 이전에 따른 경제권 이동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던 셈이다.

철길 따라 여유롭게 걷기 좋은 경춘선 숲길

철길 따라 여유롭게 걷기 좋은 경춘선 숲길

철길은 태릉역에서 화랑대역으로 이름을 바꾸게 한 화랑대(육군사관학교) 캠퍼스와 1966년 군부대의 인력과 장비를 동원해 서울 최초로 지었다는 태릉 골프장,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담긴 태릉선수촌 옆을 지나간다. 인근 지역 명소에 ‘태릉’자가 많은 건 이곳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기도 한 태릉과 강릉이(노원구 화랑로 681) 있어서다.

태릉은 조선 11대 임금 중종의 두 번째 계비인 문정왕후의 능이고, 강릉은 문정왕후의 아들이자 조선 13대 임금인 명종의 능이다. 문정왕후는 12살에 왕위를 물려받은 아들을 앞세워 수렴청정했다. 두 능을 아울러 태강릉이라고도 한다.

두 모자의 관계를 상징하듯 명종은 땅속에 묻힌 뒤에도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잠들었다. 태릉(泰陵)은 한자이름에서처럼 왕비의 단릉(單陵)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웅장한 느낌을 준다. 넓고 우거진 숲길과 울창한 소나무들이 있어 상쾌한 기분으로 산책하기 좋다.

이제 산책하기 좋은 봄이다. 경춘선 숲길공원 따라 공릉동 도깨비시장을 들려 시장구경도 하고, 태강릉까지 두루두루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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