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떠난 자리…경춘선숲길로 돌아오다

시민기자 최용수

발행일 2017.11.22. 15:54

수정일 2017.11.22. 15:54

조회 1,921

경춘선숲길 안내판과 협궤열차가 화랑대역 입구에 설치되어 있다. ⓒ최용수

경춘선숲길 안내판과 협궤열차가 화랑대역 입구에 설치되어 있다.

“철커덕 칙칙~ 철커덕 부웅~” 한겨울 밤의 기적 소리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따스한 어머니의 품을 더욱 그립게 하는 소리다. “저 기차만 타면 춘천 엄마한테 갈 수 있는데… 흑흑….”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1975년 1월의 어느 날 밤, 화랑대역 앞 연병장에서 군사 훈련을 받던 전우가 경춘선 기적 소리에 흐느껴 울며 내뱉던 말이다. “야~, 대장부가 나약하게 훌쩍거리냐?” 당시 대범한 척 전우를 쏘아붙였지만 사실 나도 고향 집 어머니 생각에 뜨거운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그 후 35년이 흐른 2010년 12월, 경춘선 복선전철이 개통하며 정겹던 기적 소리는 멈추었다.

새로 전시된 증기기관차를 둘러보는 시민들 ⓒ최용수

새로 전시된 증기기관차를 둘러보는 시민들

지난 18일 오후, 전우와 함께한 옛 추억을 떠올리며 종종 찾았던 화랑대역이 ‘경춘선숲길’로 다시 태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화랑대역 광장에서는 경춘선숲길 3단계 구간 개방 기념행사가 펼쳐졌다. 육사 군악대의 축하 공연과 염광고 관악대의 축하퍼레이드를 비롯해 철길 스탬프 랠리, 경춘선 사진전, 철길 방명록, 캘리그라피로 가훈 쓰기, 캔디 만들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되었다.

폐역사가 된 ‘화랑대역(등록문화재 300호)’ 안에는 경춘선 70여 년의 진귀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화랑대역 좌우에는 어린이대공원에서 가져온 협궤열차와 증기기관차가 제자리를 찾은 듯 자태를 뽐내며 멈춰 있다. 아름드리 버즘나무 플라타너스 사이로 쭉 뻗은 철길은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의 분위기를 풍긴다.

화랑대 역사 전경(좌), 증기기관차와 연결된 객차에서 열리는 경춘선 사진전(우) ⓒ최용수

화랑대 역사 전경(좌), 증기기관차와 연결된 객차에서 열리는 경춘선 사진전(우)

경춘선은 1939년 7월 25일부터 운행을 시작해 2010년 12월 21일까지 71년 동안 숱한 사연과 추억을 실어 날랐다. ‘경춘선숲길 재생사업’은 2010년 12월 열차 운행이 중단된 경춘선 철길을 녹지로 바꾸어 시민에게 되돌려주는 사업으로, 2013년부터 단계별로 추진되었다.

1단계 구간(공덕 제2철도건널목~육사삼거리, 1.9km)은 2015년 5월에 완공되었고, 이어 2016년 11월에 2단계 구간(경춘철교~서울과기대 입구, 1.2km)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 후 2017년 11월, 마침내 3단계 구간(육사삼거리~구리시 경계선, 2.5km)이 개방된 것이다.

이날 개통된 3단계 구간은 ‘경의선숲길 재생사업’의 마지막 단계로 육군사관학교 제2정문 앞 삼거리에서 서울시와 구리시 경계까지 약 2.5km 구간이다. 철길 왼쪽으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조선왕릉(태릉·강릉)과 태릉선수촌, 서울여자대학교, 삼육대학교가 있고, 오른쪽은 육군사관학교와 태릉골프장으로 이어진다.

경춘선숲길 3단계 구간은 곳곳에 시를 적은 배너가 설치돼 있다. 산책길에 시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최용수

경춘선숲길 3단계 구간은 곳곳에 시를 적은 배너가 설치돼 있다. 산책길에 시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도심을 통과하는 1, 2단계 구간과는 달리 울창한 숲과 실개천을 따라 이어진 3단계 구간은 자연의 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낭만적인 철길 산책로이다. 복잡한 도심의 소음이 들리지 않으니 한적하게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거나 호젓하게 산책을 즐기는 데 최적의 코스이다.

경춘선을 타고 강촌에 갔다가 지금의 아내와 인연을 맺었다는 아저씨, 참깨랑 검은 콩을 봇짐으로 둘러메고 서울에 팔러오곤 했다는 할아버지, 멋 내려고 두꺼운 책 몇 권과 통기타를 메고 대성리에서 밤새워 놀았다는 중년의 신사, 서울로 공부하러 간 자식들 반찬을 만들어 첫차를 타고 서울을 오갔다는 백발의 할머니 등 이곳에서 만난 시민들은 제각각 경춘선과 관련한 추억이 있었다. 기적 소리가 멈추어 아쉬움은 크지만, 이런 추억이 그리울 때 찾아올 수 있는 ‘경춘선숲길’이 조성돼 다행스럽다고 시민들은 말했다.

3단계 구간 개방일 체험행사의 하나인 '철길 방명록'에 참여한 시민(좌), 열차를 통제하던 장비(우) ⓒ최용수

3단계 구간 개방일 체험행사의 하나인 '철길 방명록'에 참여한 시민(좌), 열차를 통제하던 장비(우)

벌써 겨울 냄새가 물씬 나는 차가운 날씨다. 떠나가는 가을이 아쉽다면 이번에 개방된 ‘경춘선숲길 3단계 구간’을 걸어보자. 짙은 숲속을 통과하는 구간이라 아직 늦가을 냄새가 두텁게 남아 있다.

철길을 걸으며 잘 물든 낙엽 몇 장을 주어 책갈피에 넣어둔다면 추운 겨울에도 가을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머지않아 전 구간이 개통되면 자전거를 타고 바로 춘천까지 갈 수 있게 된다니 기대가 크다.

■ 경춘선숲길 안내
○ 위치 : 녹천중학교(서울 노원) ↔ 육사삼거리 (총거리 3.3km)
○ 문의 : 서울시 공원조성과(02-2133-2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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