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갓길이 즐거운 산책로 '경의선 숲길'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7.08.22. 10:06

수정일 2017.08.2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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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숲길, 향수를 부르는 `땡땡거리`를 복원해 놓은 철길 건널목. ⓒ김종성

경의선 숲길, 향수를 부르는 `땡땡거리`를 복원해 놓은 철길 건널목.

경의선숲길-지도에서 보기

일을 마치고 혹은 지인과 만남을 뒤로 하고 집으로 오는 길. 일부러 찾아가는 귀갓길이 있다. 서울 용산에서 마포, 홍대, 연남동, 홍제천 등 도심 속 다양한 동네와 거리를 지나는 ‘경의선 숲길’이다. 경의선은 1906년 만든 오래된 철도로, 일제가 한반도 지배와 중국 침략을 위해 서울과 북한 신의주를 이어 만들었다.

경의선 숲길은 옛 경의선 철길 중 일부 구간을 지하화하면서, 철길이 있던 지상에 만든 약 6.5km의 공원이다. 거리상으론 그리 길진 않지만 도심 속 여러 동네를 지나다보니 꽤 길게 느껴지는 산책로다.

지난해 5월에 생겨나 아직 숲이 무성하진 않지만 빨래와 화분이 놓여있는 정다운 동네길, 기차 모양의 다양한 책방들이 들어선 책거리, 혼자 돼지불백(돼지 불고기 백반)을 먹을 수 있는 기사식당과 오래된 맛집, 시냇물이 흐르는 걷기 좋은 산책로까지... 하루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 즐겁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길이다.

경의중앙선 열차와 6호선 전철이 오가는 효창공원역(서울 용산구 효창동) 앞 주택가에서 경의선 숲길이 시작된다. 주택가, 상가 사이를 지났던 경의선 기찻길이 높이 솟은 아파트와 함께 나무들 울창한 숲길 공원이 됐다. 조성된 지 얼마 안 돼 아직 숲이 무성하지 않은 경의선 숲길에서 이곳이 가장 나무가 빽빽하다. 길 한편에 자전거도로까지 만들어 놓았는데, 자전거 외에 유모차도 많이 다니고 요즘 많이 타는 킥보드, 전동휠을 탄 사람들이 지나갔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벼룩시장 `늘장`, 시민들의 생활놀이장터를 표방한다. ⓒ김종성

토요일마다 열리는 벼룩시장 `늘장`, 시민들의 생활놀이장터를 표방한다.

이어지는 공덕역(마포구 공덕동) 앞 경의선 숲길엔 작은 공방, 가게들이 모여 있다. '늘장'이라는 도심 속 이채로운 작은 장터로 매주 토요일마다 벼룩시장도 열린다. 동네 주민들도 상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재밌는 생활놀이장터다.

경의선 숲길엔 발길을 머물게 하는 곳이 여럿 있는데 경의선 숲길의 명물 '책거리(마포구 와우산로35길 50-4)'도 그중 하나다. 경의선 숲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경의선 기차 모양을 본떠 만들어 놓은 14개 동의 책방들 모습이 독특하고 친근하다. 대형서점에선 보기 힘든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볼 수 있다. 한국출판협동조합이 위탁 운영하는 책방으로 작가와의 만남, 전시회 같은 행사도 자주 열린다. 책방 운영시간은 화요일 ~ 일요일 저녁 8시까지로 월요일은 휴무라고 하니 참고하자.

기차 모양으로 만든 재미난 책방들 ⓒ김종성

기차 모양으로 만든 재미난 책방들

경의선 숲길을 걷다보면 아련한 향수를 부르는 철도 건널목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어 산책길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주변 동네에 살던 사람들에겐 철도 건널목 주변 ‘땡땡거리’는 추억의 장소이다.

땡땡거리 주변에 자리하고 있었던 고깃집과 주점은 가격이 저렴하고 푸짐해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과 즐겨찾던 곳이다. 칙칙폭폭왕갈빗살, 서강 노가리, 참새방앗간, 오래된 세탁소 등이 남아 땡땡거리를 증언하고 있다. 담벼락에 빨래를 널어놓거나 큰 화분에 토란을 심어놓은 단층의 집들, 쪽집게 무당집이 성업 중인 골목길이 남아있어 미소를 짓게 했다.

건널목과 경보 차단기, 역무원 아저씨와 지나는 동네 주민들 모습을 복원해놔 철도 건널목 풍경이 실감난다.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는 않지만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철길은 흥미로운 존재인가보다. 징검다리 건너듯 침목을 밟으며 걷고, 궤도 위에 올라 양팔을 벌리고 중심을 잡으며 걷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땡땡거리 주변에 남아있는 옛 풍경들 ⓒ김종성

땡땡거리 주변에 남아있는 옛 풍경들

경의선 숲길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홍대입구역(마포구 동교동) 부근이다. 이곳에서 약속을 하고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벤치는 물론 자리를 깔고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다양한 카페와 가게, 식당들이 많아 거리를 걷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곳이기도 하다. 거리에 들어선 개성 있는 상점들은 시민들에게 볼거리와 잔재미를 제공하며 즐겁게 도시를 걸을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존재다.

연남동을 지나는 경의선 숲길은 작은 시냇물이 흘러 좋다. 요즘 같은 날씨엔 발을 담그고 앉아 있기 좋은데 동네 아이들은 아예 물에 들어가 물장구치며 논다. 다른 도시의 인공 물줄기처럼 수돗물이나 한강물을 끌어온 것이 아니라며 동네 아저씨가 흐믓한 미소로 알려주셨다. 지하철을 만들면서 지하수가 나오는데 그 물을 이 숲길에 흐르게 한 것이란다. 가까운 경의중앙선 가좌역(서대문구 남가좌동)에서 나오는 지하수라는데 물이 참 맑고 깨끗했다.

동네 아이들과 주민들 따라 물가에 앉아 시냇물에 발을 담가보았다. 더위가 싹 가시는 기분이 들어 참 상쾌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더운 날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낀다던데, 난 저녁나절 이 길을 따라 집으로 가면서 작지만 확실한 충만함을 느낀다.

아파트촌 사이에 섬 처럼 자리한 모래내시장 ⓒ김종성

아파트촌 사이에 섬 처럼 자리한 모래내시장

경의선 숲길 맨 끝에 있는 가좌역은 오래된 장터 분위기가 남아 있는 모래내시장을 품고 있다. 정다운 이름 ‘모래내’는 모래가 많은 물줄기 홍제천을 이르는 것으로 바로 옆에 홍제천이 흐르고 있다. 서너 개의 시장을 품은 큰 시장이었던 모래내시장은 주변동네가 아파트촌으로 바뀌면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서울시 역사박물관에서 편찬한 <가재울 사람들>에 의하면, 모래내시장은 예전엔 서울 서북부와 일산, 고양지역까지 아우르는 큰 시장으로 동대문시장, 청량리시장, 영등포시장과 함께 서울 4대 시장으로 꼽혔던 곳이었다. "모래내시장에선 물건값 깎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먹거리와 물건 값이 싸고 인심이 후했단다. 가재울은 현재 지명인 남(북)가좌동 정다운 우리말 이름이다.

서울에서 사라진 많은 재래시장 운명처럼 모래내시장도 얼마 후 사라질 예정이다. 마치 아파트에 둘러싸인 고립된 섬 같은 시장으로, 시장통에 27층이나 되는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상가 1, 2층에 시장이 들어선다지만 임대료를 생각해볼 때 그곳에서 장사할 수 있는 시장 상인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돼지꼬리요리, 닭내장전문집, 메기 매운탕집 등 소박하고 수더분한 옛 시장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거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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