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든 ‘영원’은 없다”

최경

발행일 2017.04.28. 16:37

수정일 2017.04.2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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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바다 위 노을 풍경ⓒnews1

아름다운 바다 위 노을 풍경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67) 마지막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어떤 일이든 ‘영원’은 없다. ‘영원히’라는 말은 애초부터 그러길 바라는 소망을 담은 단어라고 생각한다. 힘들어 죽겠다는 말의 속내가 힘들지 않게 살고 싶다 혹은 힘들어도 살고 싶다는 뜻이 있듯이 ‘영원히’는 절대로 영원할 수 없는 우리의 유한한 삶을 알기에 만들어진 애틋한 단어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마지막은 오고, 무엇이든 끝이 있게 마련이다. 시작할 때 끝을 생각해야 하고 끝이 다가올 때 어떻게 하면 좋은 마무리를 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흔히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결과로 평가를 받는 것이 또한 냉정한 현실이다.

그러나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 뒤에 남는 것은 나의 태도일 것이다. 그 마지막 뒷모습을 결정하는 것은 과정 속에서 나온다. 그 과정을 얼마나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지, 위기의 순간을 어떻게 이겨내고 또 성숙해졌는가 하는 것이 끝나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 나의 모습을 결정짓게 된다.

지난해부터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오랫동안 고질적인 문제였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고 그 결과에 대해 누군가는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누군가는 여전히 과거에 갇혀 뭔가 음모가 있었고, 내가 믿어온 사람들이 저렇게까지 저질에 엉망진창일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그간의 오랜 믿음이 산산조각 날 테고, 잘못된 믿음이 참담한 결과로 이어진 것에 일조한 셈이 돼버리기 때문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대표적인 ‘확증편향’의 오류다.

그렇다면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어떨까. 그들 중 일부는 부조리했던 과정에 일조한 것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며 입을 열었지만 정작 핵심들은 여전히 한 치의 과오도 없으며 모두 음모에 의한 것이고 잘해보려다가 결과가 이상하게 나온 것뿐이라고 억울해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존재감’과 관련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믿었던 것, 살아왔던 방식에 대해 부정되는 것, 그것은 곧 존재감의 부정이기도 한 때문이다.

굳이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어디에서나 존재감을 느끼며 살고 싶어 한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면서 존재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있음’을 느끼며 살아갈 것인가. 그것이 모두가 가진 숙제이기도 하다. 또한 사회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재감과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무거운 숙제이기도 하다.

한 시대가 저물고 또 한 시대가 시작되기 위해 온 나라가 들썩이는 요즘 바라는 것은 딱 한가지다. 제발 이제는 비상식이 상식을 덮지 않고, 가짜가 진짜를 가리지 않고, 비정상이 정상을 농락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것이다. 어차피 모든 것엔 마지막이 있고, 누구에게나 끝이 오게 마련이므로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영원히 누릴 것처럼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어떤 대단한 권력자라 할지라도.

그동안 보잘 것 없는 나의 칼럼은 이걸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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