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권의 늪에 갇힌 아이의 SOS 신호

최경

발행일 2016.09.23. 15:22

수정일 2016.09.23. 16:23

조회 1,056

손ⓒ뉴시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40)

“아이가 소리 내 울지도 못했어요.”

한 아동센터에서 촬영한 비디오 영상 속 사내아이는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며 햇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여섯 살 아이는 그림도 곧잘 그리고 칭찬을 해주거나 애정표현을 해주면 눈을 빛내며 배시시 잘 웃어주기도 했다. 아이는 누나와 함께 아동센터에 두 달을 다녔다. 원래는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방과 후 돌봄 교실이지만 복지사가 놀이터에서 허름한 차림의 남매를 발견한 뒤 아동센터에 데려와 식사와 학습, 놀이를 할 수 있게 배려했다. 부모는 형편이 넉넉했는데도 남매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사내아이를 씻겨주던 복지사는 아이의 몸이 멍투성이인 것을 발견하고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남매와 대화를 나눈 내용을 일지에 남겼다.

‘배가 고팠지만 새엄마가 자고 있어서 말을 걸면 혼나기 때문에 말도 못하고 20분 넘는 거리를 혼자서 걸어왔다고 한다’

‘아침에 소변 실수를 했는데 새엄마가 옷을 갖다 버리라고 화를 내서 너무 무섭고 슬펐다고 한다.’

‘아빠가 가족 외에는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한다며 집안 이야기를 밖에서 하지 말거나 거짓말로 둘러대라고 시켰다고 한다.’

복지사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아동학대의심 신고를 했고, 새엄마와 친부의 학대 및 방임 사실을 확인했다. 기관에서는 남매를 부모로부터 분리해 시설로 보내기로 결정했지만, 입소가 취소됐다. 시설에 빈자리가 없어서 대기를 하던 중, 친부가 아이들이 눈에 밟혀 도저히 보낼 수 없다면서 잘 키우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며 남매가 잘 지내나 싶었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아이들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연락을 했더니 문자메시지로 더 이상 센터에 보내지 않겠다는 짧은 답변만 돌아왔어요. 불안해서 아이들 상태를 직접 확인하려고 했는데 당신네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면서 그렇게 걱정되면 직접 맡아서 키우라고까지 말하더라고요. 저희 입장에선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가서 아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니까 확인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올해 3월, 초등학교 입학 예정인 사내아이가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다. 학교 측에서 아빠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아이를 데려오지 않았다. 그즈음 부모의 학대에 의한 아동사망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었고, 장기결석 초등학생에 대한 전수조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었고 학교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곧바로 부모의 신병확보에 나섰다. 며칠 만에 한 호텔에서 아이의 새엄마와 친부를 체포했다. 남매 중 누나는 친할머니 집에 있는 것이 확인됐지만 아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경찰조사를 받으면서도 아이가 말을 안 들어 길에 버렸다는 둥 거짓말을 일삼던 부모는 결국 며칠 만에 아이를 암매장했다고 자백했다. 새엄마가 아이를 화장실에 가둬놓고 3개월 동안 때리고 굶기고 심지어 락스를 부어 온몸에 화상을 입히다가 아이가 끝내 사망하자 열흘 동안 집안에 방치한 뒤 친할아버지 산소 옆에 암매장한 것이다. 아이의 이름은 ‘원영이’, 고작 일곱 살이었다. 원영이는 입학식 한 달 전이니 2월 2일, 부모의 손에 끔찍하게 죽어갔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원영이가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1년 전에 지역 아동센터와 아동보호전문기관, 경찰까지도 이미 알고 있었고, 관리 대상이기도 했지만 아이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친권 때문이었다. 내 자식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아이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부모의 친권 앞에서 관련 기관들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2014년 아동학대특례법이 시행돼 친권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는 마련됐지만, 여전히 가정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관련 기관들이 강제로 들어갈 수 없다. 또한 유치원이나 학교 등 아동학대 신고의무자가 학대정황을 포착해 확인을 하려 해도 부모가 아이를 전학시키거나 그만두게 하면 교사도 더 이상 관여할 수 없다. 게다가 아동학대 관련예산은 올해 185억 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67억 원이나 줄었다. 법과 제도가 아이들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지 못하는 사이, 원영이는 홀로 영하 8도의 얼음장 같은 화장실 감옥에서 처절하게 죽어갔다.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이 여린 생명들을 허망하게 놓쳐버려야 하는 걸까.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던 원영이의 작은 손을 우리 사회가 좀 더 꽉 잡을 수는 없었던 걸까.

지난 8월, 원영이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살인죄가 적용돼 새엄마는 징역 20년, 친부는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새엄마는 양형이 과하다며 곧바로 항소했다고 한다. 죽일 의도도 없었고 죽을 줄 몰랐다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선처를 호소하고 있단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잔인함이 반복되면 얼마나 죄의식이 무뎌질 수 있는 건지 새삼 확인하게 된다.

친권은 분명히 부모의 권리지만 의무를 동반한다. 의무를 방기한 권리는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친권의 늪에 빠진 아이가 간절한 SOS 신호를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앞으로는 제발 아이들이 살아서 구출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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