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술집보다 동네술집에서 더 행복하다
정석
발행일 2016.04.05. 14:22

뮤지컬 심야식당
정석 교수의 서울 곁으로 (12) 동네술집의 가치
올해 1월말쯤 아주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로빈 던바(Robin Dunbar) 교수를 책임자로 하는 연구진들이 도심부의 대형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보다 동네의 작은 술집(Pub)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퇴근 후 직장 근처 시내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것보다 집 가까운 동네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두루 좋다고 하니 귀담아 듣고 곱씹어볼만한 연구 아닌가.
연구진은 잉글랜드 옥스퍼드셔에 위치한 대형 술집 5곳과 동네 술집 2곳에서 술을 마신 고객 2,300여명을 집중 관찰한 뒤 단골고객 65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조사를 통해 행복도, 신뢰도, 만족도, 소속감 등을 물었다.
행복도에 대한 응답은 동네술집(6.55)이 시내술집(6.15)보다 약간 높았고, 신뢰도 항목은 동네술집(6.1)이 시내술집(5.5)보다 크게 높았다. 만족도에 대해서도 동네술집(6.8)이 시내술집(6.4)을 앞섰고, 친한 친구의 수도 동네술집(7.2명)이 시내술집(6명)보다 많았다. 20분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나눈 대화시간도 시내술집(3분)보다 동네술집(8분)에서 더욱 길었고, 술자리를 함께 한 친구들 간의 소속감도 시내술집(3.5)보다 동네술집(4.2)이 더욱 컸다. 술을 마신 양도 시내술집(3.1)보다 동네술집(1.97)이 적어 동네술집에서 사람들이 훨씬 자제하며 마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조사결과에 대한 연구진들의 해석도 흥미롭다. 연구책임자 로빈 던바 교수는 “사람들의 행복한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인 ‘우정’과 ‘연대감(소속감)’의 형성 가능성은 시내술집보다 동네술집에서 월등히 높다”고 설명하며, “온라인 커뮤니티나 직장 동료들보다 동네에서 늘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이웃 커뮤니티의 우정과 연대가 훨씬 돈독함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하였다.
이 연구를 의뢰한 주체이면서 동네술집 지키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영국의 맥주애호가단체 ‘캄라(CAMRA: Campaign for Real Ale)’도 이 연구결과가 동네술집이 보유하고 있는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가치를 재확인시켜주었다고 강조하며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동네술집들을 지키기 위한 전 사회적 노력을 촉구하였다. 안타깝게도 영국에서는 매주 30여개의 동네술집이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동네술집의 가치를 증명해준 영국의 연구진들과 맥주 애호가 단체 소식을 접하면서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만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었던 <심야식당>이 떠올랐다. “허기뿐만 아니라 마음도 채워드립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동네식당과 동네술집은 단순히 밥과 술을 파는 곳이 아닐 것이다. 돈을 주고 밥과 술을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정도 나눈다.
영국의 <펍> 같은 동네술집이나 <심야식당> 같은 동네식당들은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직장에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슬슬 걸어 나와 이웃들을 만나 스트레스도 풀고 서로를 다독여주는 힐링의 장소이기도 하다. 맥주잔을 건네면서 직장상사의 뒷담화도 하고, 내 마음 충분히 알아주지 않는 배우자와 자식들에 대한 섭섭함도 토로하는 하소연 한마당의 몫도 담당한다. 심야에 일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의 허기도 채워주고 빈 마음도 어루만져주는 카운슬러 역할까지 하는 고마운 곳이다.
이처럼 소중한 가치를 지닌 동네식당과 동네술집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는 것은 비단 영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지역마다 동네마다 산천도 다르고 물도 달라 술맛도 음식 맛도 제각기 고유했는데, 프랜차이즈 식당과 술집들이 골목 구석까지 파고들면서 작은 식당과 술집들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있다.
도시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본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강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당연한 일일 테니까. 그러나 도시를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삶터로 본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소중한 것들, 가치 있는 것들이 거대자본 앞에서 맥없이 고꾸라지는 걸 방관하지 말고 뭐든 해야 하지 않을까? 좋은 것을 골라 선택하는 현명한 소비자의 역할만 다해도 된다.
문제는 가치를 아는 것이다. 가치를 볼 줄 아는 눈이다. 옥스퍼드대 로빈 교수팀들이 큰 몫을 해냈다. 가치가 있으려니 짐작만 했을 소비자들과 정책담당자들과 시민들에게 동네술집의 가치를 명확히 보여준 데 그 의의가 크다. 우리 주변에서 자꾸만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들을 지키는 일도 그 시작은 가치를 규명하는 일일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들, 연구하는 사람들의 몫이 크다.
우리 학생들과 함께 나도 동네술집의 가치 연구를 시작해봐야겠다. 술 좋아하는 사람이 하기에 꼭 맞는 연구 아닌가. 술도 마시면서, 연구도 하고, 논문도 발표하고, 소중한 가치도 공유하고. 1석4조, 5조의 멋진 연구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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