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혹독한 겨울을 맞는 우리의 자세

최순욱

발행일 2016.01.20. 15:36

수정일 2016.01.20. 15:37

조회 1,821

핌불베트르 이후 멸망하는 세계, 1905년 에밀 되플러(Emil Doepler) 작품

핌불베트르 이후 멸망하는 세계, 1905년 에밀 되플러(Emil Doepler) 작품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15) 혹독한 겨울 핌불베트르

며칠째 전국에 극심한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19일 아침 기준으로 서울의 체감기온이 무려 영하 24도였는데 심지어 저 남쪽 부산마저도 영하 11도였다고 한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안팎을 기록하는 강추위가 앞으로도 1주일 가량은 지속된다고 한다. 27일 정도는 되어야 겨우 평년 기온을 회복한다는 얘기다. 한동안 이번 겨울은 전에 없이 따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한방 제대로 맞았다.

조선일보, 서울신문 등의 기사에 따르면 이번 이례적 한파는 북극 주위를 둘러싼 제트기류의 힘이 예전 같지 않아졌기 때문에 일어났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극지방과 중위도 지역 간의 온도차가 줄면서 제트기류의 속도가 느려져, 북극 주위에 있어야 할 제트기류가 중위도 지역까지 쳐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우리나라에 닿을 일이 별로 없었던, 영하 50도에 달하는 북극 지역의 강렬한 냉기가 직접 한반도 상공을 덮친다고 한다. 게다가 제트기류의 약화는 전 지구적 규모로 일어나는 일이니 이상 한파를 겪고 있는 나라가 한국뿐이 아닌 게 당연하다. 동북아, 동유럽, 미국 동부까지 북풍한설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모양이다.

북유럽 신화에도 ‘핌불베트르(Fimbulvetr)’라는 가장 혹독한 겨울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북유럽 신화는 세계의 창조에서 시작해 세계의 멸망으로 끝나는, 시작과 끝이 명확한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세계 멸망의 중요한 전조 중의 하나가 바로 핌불베트르다. ‘vetr’는 겨울이란 뜻이며, ‘fimbul’은 ‘크다’ 내지는 ‘강력하다’, ‘위대하다’ 정도의 의미라고 하니 이름 자체에서 그 엄혹함이 드러난다.

북유럽 신화가 적힌 문헌에 따르면 핌불베트르는 3년간 지속된다. 이 기간 동안 여름은 오지 않으며 모든 방향에서 거센 눈보라가 몰아닥친다. 해는 힘을 잃고, 온 세상은 서리와 얼음으로 뒤덮힌다. 혹한을 견디지 못한 대부분의 생명이 이 때 목숨을 잃는다. 설혹 추위 때문에 죽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황폐해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수한 전쟁으로 스러진다. 형제들이 서로를 쓰러뜨리고, 사촌끼리 가문을 무너트리는 일이 일상이 된다. 핌불베르트의 끝에서는 마침내 해와 달마저 사라져버리고 거대한 지진과 함께 본격적으로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약간 섬뜩한 것은 신화 속 핌불베트르에 대한 이미지가 실제 북유럽 지역에서 있었던 혹한기의 경험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위키피디아 등에 따르면 서기 535~536년 정도에 발생해 전 세계적 기근을 야기했던 북반구 지역의 급격한 기온하강 현상 내지는 기원전 650년 경 북유럽 지역 청동기 시대 말기에 발생해 이전보다 이 지역을 훨씬 추운 지역으로 변모시킨 기후변화 현상과 핌불베트르가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핌불베트르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 기후현상은 인간이 초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혹독한 겨울에 대한 기억은 멸망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류 전체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전 세계적인 한파를 초래한 것은 지구온난화, 결국 인간이다. 우리 모두가 지금 스스로 몰락과 멸망의 전주곡을 써내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겨울 #최순욱 #신화여행 #핌불베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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