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에서 일본에 밀리는 건 참을 수 없다”
서울식품안전뉴스
발행일 2015.12.18. 16:15
일본 음식 취재를 위해 지난 10년 동안 70여 차례 일본을 다녔다. 일본 음식 자체가 좋아서는 아니었다. 근대 이후 우리 음식에 드리워진 일본 음식의 자취가 너무 많았고 그 본질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그렇게 줄기차게 다니니 주변에서는 당연히 궁금한 게 많을 수밖에 없다. “대체 무슨 돈으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집 한 채 값을 날렸다”고 농반진반으로 답한다. 그럼 그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일본에서 먹어 본 것 중에 제일 맛있었던 음식이 뭐냐?”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의 기대치란 게 한결같아서, 뭔가 대단하고 비싼 음식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물론 엄청난 곳들 많이 다녀봤다. 미슐랭가이드에 소개된 곳도 가봤고, 수십 년 경력의 장인이 만드는 메밀국수와 초밥도 먹어왔으며, 하룻밤 숙박비가 백만 원이 넘는 료칸에서 최고의 대접도 받아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일본 음식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늘 ‘밥’이었다. |
밥맛의 차이는 품종의 차이?
일본은 어디를 가든 밥이 맛있다. 대중음식점이건 고급 음식점이건 가리지 않고 밥이 맛있다. 심지어는 일반 가정집에서 지어 먹는 밥 조차도 맛있다. 더러는 눈물 나게 맛있는 밥을 만날 때도 있었다.
처음엔 그 맛에 감동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일본이나 우리나 밥상의 주인은 밥이다. 일본에 쌀 재배법을 전해준 것 또한 한반도였다. 한국인으로서 다른 건 몰라도 밥맛에서 일본에 밀리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분노는 곧 동기부여가 되었다. 우리 밥맛과 일본 밥맛의 차이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품종, 재배, 유통, 소비에 이르는 일련에 과정에서 대체 그들이 우리보다 나은 것이 뭔가를 따져봤다. 사실 최근 20년 동안 우리나라의 쌀 품종개량과 재배에 관한 기술과 유통과 소비 시스템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기술력과 시스템에 있어서는 일본에 결코 뒤지는 수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밥맛에 차이가 나는 것은 쌀을 소비하는 태도, 그 중에서도 쌀 품종에 대한 선택 기준이 달랐다.
밥맛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크게 쌀의 수확 전과 후로 나뉜다. 수확 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는 품종, 재배방법, 산지, 기상조건 등이 있고, 수확 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는 수확방식, 보관방식, 도정방식, 유통, 취반조건 등으로 나뉜다.
이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쌀의 품종. 즉, 다른 조건이 아무리 완벽하게 갖춰져 있더라도 품종이 나쁘면 좋은 밥맛을 기대하기 어렵다. 맛있는 커피의 첫 번째 조건이 생두의 품질인 것과 같은 이치다.
현재 우리나라 국립종자원에 등록된 쌀의 품종은 293종. 이중에서 20여 종의 ‘국가보급종’을 비롯해 해마다 수십 가지 품종의 쌀이 한반도 곳곳에서 재배된다. 각각의 품종은, 밥맛은 물론이거니와 기능성과 내재해성 그리고 지역별 환경에 특화되어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은 줄줄 꿰고 있는 소비자들조차 정작 쌀의 품종을 물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이천 임금님표, 철원 오대미, 강화섬쌀 등 광고에서 보는 상품명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은 고시히카리, 히토메보레니, 아키바레(추청) 등 일본 품종만 인지하고 있다.
이는 비단 소비자의 잘못만은 아니다. 현행 ‘양곡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쌀 포장지의 의무표시 사항에서 쌀의 품종을 모르거나 혼합했을 경우 ‘혼합’으로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굳이 품종명을 표시하지 않아도 되며, 이는 쌀의 관리와 유통에서 있어 단일 품종을 고수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다양한 품종 선택으로 쌀의 가치를 높이자
현재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쌀의 브랜드는 1,500여 종 이상이다. 이 가운데 품종명이 표시된 것은 고작 10%에 불과하고 나머지 90%는 전부 ‘혼합’으로 표시되어 있다. 즉 국가가 품종개량에 심혈을 기울이고 농민이 좋은 품종의 쌀을 재배한들, 결국엔 밥맛과는 아무 상관없는 브랜드와 포장지의 디자인이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결과 일본의 경우는 쌀의 품질 대비 가격 일치율이 90% 이상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5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좋은 품종의 쌀을 재배해도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니 굳이 좋은 품종의 쌀을 재배할 필요가 없는 악순환의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쌀의 상황이 이러니 다른 곡물과 작물의 사정은 더 심각한 실정이다. 농가에서는 품종의 다양성 보다는 재배가 쉽고 수확량이 많아 경제성이 높은 품종을 갈수록 선호한다. 소비자는 관행농법이건 유기농법이건 상관없이 반듯하고 때깔 좋은 물건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 다양성은 애당초 고려 사항이 아닌 것이다.

최근 식문화 트렌드는 요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쿡방`과 먹는 모습을 담은 `먹방`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지금은 미식이 아닌 폭식의 시대
TV를 틀면 음식관련 프로가 넘쳐나고 여기저기서 음식담론이 쏟아지니 우리 사회가 마치 ‘미식의 시대’로 진입한 것처럼 느끼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대단히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외식산업은 현재 양적 팽창기에 놓여 있을 따름이다. 그러니 현재는 미식 보다는 ‘폭식의 시대’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예전에 본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1부터 10사이에 어디쯤에 해당 되느냐”고 지금 우리의 미식 수준을 누군가 반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먹방’과 ‘쿡방’으로 대표되는 현재를 3단계 정도로 본다면, 식재료의 종 다양성을 고민하는 것은 미식에서 궁극의 지점이랄 수 있는 9단계에 해당된다고 본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당장에 맛있는 것을 선택하겠다는 대중을 향해 ‘당신들은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3단계와 9단계 사이의 차이를 좁히고 음식담론에 대한 사회 전체적인 수준을 높이는 것. 그것이 지금 이 글을 쓰는 필자와 이글을 읽는 독자들의 몫이라고 말하고 싶다.
출처_서울식품안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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