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배움의 본능을 자극하는 말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05.08 09:40

수정일 2015.11.16 06:04

조회 504

어린이ⓒ뉴시스

아이에게 배움의 본능을 자극하는 말은 '그만 놀아라'가 아니라 '뭐하고 노니? 어떤 놀이야? 이 놀이를 통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니? 어떤 상상을 하니?'라고 묻는 것이다. 놀이를 부끄럽게 만들면 아이는 놀이와 공부를 이중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재미있는 놀이와 재미없는 공부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재미있는 것을 숨어서 하려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공부 상처의 기원은 사실 어렸을 때 아이의 놀이를 다루는 태도로부터 시작된다.
--김현수《공부 상처》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73

어쩌다 보니 강의나 강연, 혹은 '작가와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글로 나를 표현하기에 익숙한 터에 말로 생각을 전달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하다 보니 나름대로 재미있고 골방을 나와 세상을 구경한다는 의미도 얻었다. 하지만 어차피 전문 강사가 아니다 보니 그날의 컨디션이나 청중들의 반응에 강의의 수준 아닌 수준이 들쭉날쭉 한다. 반응이 좋으면 나도 많은 이야기를 더 신나게 하고, 반응이 별로면 그저 자료에 기댄 맥 빠진 강의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만나고 싶고 만나서 즐거운 청중이 내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이른바 '독자'들이라면, 만나서 가장 힘들고 만나고 돌아오며 생각이 많아지는 대상이 바로 중고등학생(때로는 대학생까지 포함)들이다. 자기 의지로 강의를 신청했거나 문학 동아리나 독서반처럼 애초에 관심 있는 아이들끼리 모인 것이 아니라면, 강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아이들의 절반쯤은 자고 있다. 내 이야기가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 아직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이니, 내가 재운 게 아니다! 어떤 내용이든 강사가 누구든 배우는 모든 행위를 '포기'한 것이다. 눈동자에 별을 품고 있지 않은 아이를 바라보는 일은 슬프다. 흐리고 탁한 그의 눈에는 기대가 없고, 희망이 없고, 호기심이 없다. 학교생활과 일상 전반에서 스트레스를 느끼는 비율이 청소년 10명 중 7명에 이른다는 조사 통계는 그들의 무력감이 무거운 스트레스와 깊은 우울에서 비롯되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그 무게와 깊이를 더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공부'다. 수학을 포기하고 입시를 포기하면서 아이들은 공부 자체와 반짝이는 눈빛까지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때 그 아이들 모두가 '공부벌레'였다. 시험을 보고 성적을 매기지도 않는데 세상의 모든 것을 게걸스레 배우기에 힘썼다. 눈으로 손으로 입으로, 온몸의 감각을 열어 보고 만지고 맛봤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공부를 지겹다 못해 끔찍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정신과의사이자 대안학교 설립자인 김현수의 말대로 아이들의 '열공'을 하잘것없는 놀이로 치부한 어른들이다. 놀이가 공부에서 분리되면서 타고난 공부벌레들은 쫓기며 공부하거나 숨어서 놀게 된다. 초등학교 4-5학년, 점점 그보다 어린 연령부터 이렇게 '공부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의 말대로 현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 '놀이와 일을 구분하지 않고 즐기는 사람'이다. 머리 좋은 사람이 노력하는 사람을 못 이기고, 노력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건 본격적으로 직업을 갖고 생활하는 순간부터 자명해진다. 제대로 놀지 못하면 제대로 배울 수 없다. 스스로 즐길 수 없다면 일과 삶은 거대한 고통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