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스퀘어 뒤편 작은 벽돌 건물의 정체는?
발행일 2015.05.06. 13:50
"우리가 만든 것 우리가 쓰자"
교과서에서 그리고 근대사를 다룬 도서에서도 볼 수 있는 이 문구는 일제강점기 민립대학설립운동과 함께 민족실력양성운동으로 이루어진 물산장려운동의 정신을 담은 것으로, 이에 동참했던 경성방직이 당시 신문에 게재한 광고 문구이다.
하지만 물산장려운동은 국산품의 비싼 가격 탓에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점점 조선인 자본가 중에 친일파들이 늘어나면서 외면받기 시작했다. 결국 이 운동은 일제의 방해로 인해 민립대학설립운동처럼 실패하게 되었고,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다.
하루 20만 명의 사람이 찾아 쇼핑을 즐기는 영등포의 중심 쇼핑몰인 타임 스퀘어의 뒤편에는 물산장려운동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작은 벽돌건물이 있다. 이곳이 바로 경성방직의 옛 사무동인데, 현재 등록문화재 1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등포에 위치한 물산장려운동의 심장, 경성방직
1936년 지어진 경성방직 옛 사무동은 영등포 주변의 역사를 담고 있다. 지금은 서울 제 3의 기차역인 영등포역이 위치해 있고, 인근에 여러 백화점과 쇼핑센터가 널려 있는 커다란 부도심이지만, 100년 전만 해도 서울 최대의 채소공급지였다.
그러던 곳에 공장지대가 지어지기 시작하여 서울 최대의 산업단지로 거듭나게 되었고,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적인 공장지대가 지어지게 되었다. 그 후 점점 구로, 가산동으로 점점 크기를 키워가면서 서울 남부까지 커다란 공장지대를 건설하게 된 것이다.
다만 이들 대부분이 일본인의 자본으로 세워졌던 아픈 역사가 있는데 경성방직은 이들 중 유일하게 민족의 자본으로 세워진 유일한 공장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이 건물은 한국의 20세기 초반의 역사에서 핍박받았던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셈이다.

경성방직의 구 사무동
경성방직은 1936년에 처음 지어진 이후 한 번도 외관을 변경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공장시설은 파괴되었지만 이 사무동은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재까지도 경방에서 지속적인 관리를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건물 중 남아있는 대부분 건물들이 일본식 건축 양식이거나 일본풍의 건축 형태인 것과 대비하면 일색이 짙지 않은 건물이라는 점 역시 눈에 띈다.

경성방직 건물에 입점한 베이커리
2004년에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지속적인 관리를 받게 되고, 경성방직 공장이 이전된 후 그 자리에 타임 스퀘어가 들어서면서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실시했다. 당시 위치보다 약간 남쪽으로 위치를 이전하게 되어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민족자본으로 만든 최초의 주식회사 경성방직터에 들어선 영등포 타임 스퀘어
현재는 타임 스퀘어의 부속공원과 어우러지면서 사계절의 향기를 같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카페와 베이커리가 들어오게 되면서 지금처럼 경성방직의 사무건물로는 쓰이지 않지만, 외관을 꾸미지 않아 수수한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타임 스퀘어를 방문했던 쇼핑객의 발걸음을 경성방직은 오늘도 그 자리에 조용히 서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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