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 보복운전, 공포의 도로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5.04.14. 11:05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92
우리 교통문화가 무서워지고 있다. 최근 들어 기승을 부리는 보복운전 때문이다. 이달 2일엔 송파경찰서에서만 17명이 입건 됐고, 지난달엔 스포츠 아나운서가 고속도로에서 뒷 차가 경적을 울렸다는 이유로 급브레이크를 밟는 등 위협을 가한 사건도 있었다. 같은 시기 경인고속도로에서 앞차가 급브레이크로 위협하는 바람에 당황한 뒷차가 옆차와 충돌한 사건도 있었다.
이렇게 차량에 탄 채 급정거 등으로 위협하는 사례도 있지만, 심지어 차에서 내려 직접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종종 보도된다. 최근엔 앞차 운전자가 뒷차로 가 삼단봉이나 도끼로 위협을 가한 사건 등이 화제가 됐었다.
보복운전과 도로 위에서의 폭력이 워낙 원초적인 분노 상태에서 벌어지는 퇴행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웃지 못 할 일도 종종 벌어진다. 한 격투기 선수가 경기복을 입은 채 자신의 경차를 운전하며 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앞차가 시비를 걸어 차를 세웠고 앞차 운전자가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듯이 달려왔다. 그래서 격투기 선수도 차에서 내려 마주 달려갔는데, 경차에서 거대한 격투기 선수가 나오는 모습을 본 상대방이 즉시 멈춰서더니 180도 몸을 돌려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아이들도 아니고 멀쩡한 성인이 도로 위에서 이런 일들을 벌이는 것이다. 한번은 주짓수 선수가 도로에서 시비가 붙었는데 상대 차에서 성인 남성 7명이 내렸다고 한다. 싸움이 붙었고 결국 주짓수 선수가 돌아가면서 상대를 때리는 형국이 됐는데, 한참 맞던 중에 한 사람이 주짓수 선수의 바지를 붙잡고 '이제 화 풀리셨으면 그만 가던 길 가시죠', 이렇게 애원했다고 한다.
도로에서 위협을 당해본 사람은 자신도 남에게 위협을 가하는 사람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몇 번 시비를 경험해본 후 야구방망이 같은 둔기를 차에 상비해놓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상대가 무기를 가지고 달려들었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경험이 있어서다. 하지만 무기를 가지고 다닌다고 해서 과연 도로폭력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미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총으로 무장하는데, 그럴수록 오히려 안전을 위협당하고, 그래서 공포를 느껴 더욱 총으로 무장하면 더욱 위험해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내가 총을 살 때 남들도 총을 사기 때문이다. 모두가 총을 손에서 내려놓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마찬가지로 도로폭력도 각자 무기를 준비하는 것으론 해결할 수 없다. 교통문화만 더 흉흉해질 뿐이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노다.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루저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결사적인 생존투쟁, 열심히 일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것을 납득할 수 없는 마음 등이 분노의 응어리를 만들고 있다. 우리 마음속에서 여유와 관용이 사라져가는 것이다.
그래도 평소엔 그러한 분노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산다. 인간에겐 이성적 자제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에 타는 순간 그러한 자제력이 와해될 수 있다. 왜냐하면 자동차는 가장 내밀한 사적인 공간이어서 사회에서의 방어기제들을 차 안에선 풀어놓기 때문이다. 또 자동차라는 강철 몸체가 자신을 은폐 보호해준다는 심리 때문에 맨몸으론 차마 할 수 없었던 공격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평소보다 분노가 잘 치밀어 오르고 그런 감정을 물리적으로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에서 자존감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분노가 쌓여있었는데, 도로에서 다른 차 특히 자기 차보다 작은 차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행태를 보일 때 더욱 분노가 폭발하게 된다. 그러니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경차를 우습게보고 달려오다 그 안에서 격투기 선수가 내리자 줄행랑을 치는 일도 생긴다.
미국은 2008년 이후 보복운전으로 인한 사망자가 1500명에 달한다. 우리도 남 일이 아니다. 나날이 커가는 사회 분노로 인해 보복운전과 도로폭력이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처벌강화와 예방책들을 고민할 시점인데, 일반 운전자 차원에선 여유운전만이 싸움에 휘말리지 않을 길이다. 특히 끼어들기가 문제다. 억지로 끼어든다든가 남이 끼어들려고 할 때 안 비켜주면 시비가 붙는다. 여유롭게 양보해가면서 운전하는 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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