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병기 활`의 정신을 기리다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14.09.18. 16:34

수정일 2014.09.18. 16:34

조회 1,867

[서울톡톡] 고종의 활터였던 황학정에 국궁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이달 1일 개관된 국궁전시관은 종로구 사직동 인왕산 자락, 황학정에 있다. 황학정은 구한말인 1899년 활쏘기 전통 계승을 위해 고종 황제가 경희궁에 세운 궁술연습장으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경희궁이 헐리면서 황학정은 선비들의 사정이었던 등과정 터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고종황제의 어진이 전시관의 초입에 있다

황학정의 국궁전시관은 우리 활의 우수성을 주요 테마로 5개의 전시관과 체험관으로 구성돼 있다. 황학정의 역사를 비롯해 우리민족과 활에 관한 이야기들이 그림 속 활쏘기 장면과 어우러져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전개된다. 또한 전통 활인 각궁과 화살 제작법도 상세히 보여 주고 있다. 체험장에서는 활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무관복을 입고 활을 쏘아보는 공간도 마련된다.

고종이 사용한 `호미명각궁`과 곰머리 모양 과녁 `옹후`

"갑오개혁으로 무과시험이 폐지되고 선비들은 활터를 떠났습니다. 사예(활 쏘는 기술)의 맥이 끊기는 순간이었죠. 고종황제는 우리 민족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사예의 맥을 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황학정을 세웠고 몸소 활을 쏘았습니다." 국궁전시관의 안내원 조기남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알고 보니 '황학정'이란 이름도 고종황제와 무관치 않았다. 황색 곤룡포를 입고 시위를 당기는 고종의 모습이 노란 학과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니 황학정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새삼 되새기게 한다. 고종황제가 사용했던 활 '호미명 각궁' 모형과 조선시대 무과(武科)제도, 활쏘기 방법과 규칙, 활쏘기 풍속 등이 기록된 책 <조선의 궁술>도 이곳에 전시돼 있다.

1929년에 발간된 [조선의 궁술]

2, 3관에서는 우리 활과 그림 속 활쏘기에 대한 풀이를 하고 있다. 삼국시대에 사용됐던 화살과 조선시대 무과시험에 사용됐던 다양한 활이 보인다. 백제, 신라와 달리 고구려의 화살촉은 끝 부분이 도끼날 형상으로 보고 있으면 몸이 오싹해질 정도다.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를 견제하고 중국으로부터 침략도 많이 받아 살상력 강한 화살을 썼던 게 아닐까요?" 관람객들은 추측해 보기도 하고 안내원에게 묻기도 한다.

무과시험용 활 `정량궁`

한편, 무과시험용 활인 '정량궁'은 일반 활보다 무게가 무겁다. 시험용 화살 역시 무게가 많이 나가는 화살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그 중 '육량전'은 무게가 무려 여섯냥이 나간대서 붙여진 이름이다.

활을 겨누며 성을 둘러싼 조선 병사의 모습 `동래부순절도`

고분벽화와 풍속도를 통해서 선조들의 활쏘기 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듯 전시관에는 활에 관련된 그림이 전시돼 이해를 돕고 있다. 그 중, '동래부순절도'는 임진왜란 개전 초, 동래부성에 칼과 조총을 들고 침입한 왜군에 맞서 활로서 대항하는 처절한 전투장면을 담고 있다. 또 다른 그림은 한 눈에 봐도 흥겨움이 넘치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모습으로 잔칫날에도 활쏘기를 즐겼음을 엿볼 수 있다. 활쏘기는 나라를 지켜내는 병기임과 동시에 잔칫날 벌이는 놀이이기도 했음을 짐작케 한다. 신분과 지역에 구분 없이 행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4관에 이르면 활과 화살의 제작과정에 쓰이는 무수히 많은 재료들에 놀라게 된다. 대나무와 뽕나무, 참나무, 물소뿔, 쇠심줄 등의 활의 재료들과 조막손, 뒤지미, 삼바 같은 도구들이 필요하다. 곧은 대나무를 숯불에 쬐어 타원형으로 구부리는 첫 과정부터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꺾어질지언정 굽힘이 없다는 성질의 대나무를 어떻게 굽혀 활을 만드는 걸까. 굽은 대나무 안쪽엔 쇠심줄, 바깥쪽엔 물소뿔을 붙여 힘의 탄력을 주는 과정, 마지막 해궁(활을 반대로 구부려 시위를 거는 과정)까지 활과 화살 만드는 방법을 상세히 보여준다.

100발의 신기전을 장전한 `신기전화차`의 모형

전시관 중앙엔 실물 크기의 병기 하나가 위풍당당하다. 영화 '신기전'에서 위력을 뽐낸바 있는 '신기전화차'다. 안내문에는 '세종 때 만든 로켓추진 화살로 일반 화살보다 멀리 난다'고 쓰여 있다. 장전된 백발의 화살 뒷부분마다 동전크기 만한 게 묶여 있는데 화약이란다. '신기전'이란 쉽게 말해 활시위를 손으로 당겨 쏘는 대신 화살에 화약을 매달고 불을 붙여 폭발하는 추진력으로 화살을 쏘는 병기이다. 화약을 사용한 우리나라 최초의 로켓 화기로 기록돼 있다. '신기전화차'는 신기전을 쏠 솔 발사대를 포함한 수레를 말한다. 중국과 일본, 그 어느 나라의 활보다도 위력을 발했던 비밀 병기, 활을 잘 이용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보여준다.

국궁전시관이 제공하는 다양한 활 전시와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을 통해 우리 민족의 활 사랑을 다시 되새겨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9월 30일까지 무료 관람이며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5시이다. 월요일 휴관.

문의 : 황학정 국궁전시관 02-722-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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