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눈물겹게 고맙다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08.22. 15:52

수정일 2014.08.22. 15:52

조회 1,235

호랑이(사진 뉴시스)

호랑이를 왜 만들었냐고 신에게 투정하지 말고,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않은 것에 감사하라

--인도 속담

[서울톡톡]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서의 말도 있지만, 작은 기쁨과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며 사는 것은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의 하나다. 모든 일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일단 남들과의 비교를 멈추고 오롯이 자신의 삶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를지라도, 비교야말로 가장 쉽고 빠르게 불행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것은 다분히 이상적인 말일 뿐, 일상 속에서 우리는 못마땅한 일들에 둘러싸인 채 끊임없이 불만 불평을 터뜨리며 투정한다. 이런 투정은 정당한 비판이나 건전한 문제의식과는 전혀 다르다. 대안에 대한 고민이 없을뿐더러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는 사슬을 끊을 의지조차 없다. 어쩌면 투정도 습관이 된다. 더 이상 어르고 달래줄 엄마가 없음에도 몰려오는 불쾌한 잠기운에 칭얼대는 아이의 시절에서 빠져나오지 않는다. 요컨대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고 싶은 것이다. 내가 자초한 불행까지도 남의 탓을 하며 도망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철부지로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면, 아무리 두려워도 내 삶의 호랑이에 직접 맞서야 한다.

일본제국주의가 호랑이 사냥대회에 호랑이 고기 시식회까지 해가며 조선 호랑이의 씨를 말리기 전까지, 조선은 유명한 '호랑이의 나라'였다. "일 년의 반은 사람이 범을 잡으러 다니고, 나머지 반은 범이 사람을 잡으러 다닌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중국인들조차 "조선 사람들은 1년의 반은 범을 잡으러 다니고, 나머지 반은 범에게 물려 죽은 사람 문상을 다닌다"고 하였다. 그런데 벵골호랑이라는 정식 명칭을 가진 인도 호랑이 역시 조선 호랑이 못잖았나 보다.

인도에는 '쉬어 칸'이라는 호랑이의 전설이 있다고 한다. 쉬어 칸은 사람고기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식인호랑이로,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호랑이보다 엄청나게 빠르게 사람을 덮친다. 행여 잡아먹히지 않는다 해도 쉬어 칸에게 물린 사람은 사흘 만에 쉬어 칸처럼 절름발이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기실 이와 같은 공포의 호랑이는 깊은 숲속에만 있지 않다. 망자의 영혼을 극락정토로 천도하기 위한 사찰의 감로탱화에서, 현세의 삶을 그린 장면엔 어김없이 호랑이에게 쫓기고 물리는 호환이 등장한다.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공자의 말씀도 있으려니와, 삶의 곳곳에서 복병처럼 등장하는 재난과 불행이 언제라도 우리를 굶주린 호랑이처럼 맹렬하게 쫓아온다.

눈만 마주쳐도 온몸이 얼어붙고 혼이 쏙 빠져나간다는 호랑이, 하지만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지 않나? 대체 호랑이 따위를 왜 만들었냐고 대답도 없는 신을 향해 엉두덜대기보다는 호랑이가 새처럼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지 않음에 감사하며 그물을 만들고 함정을 팔 궁리를 하는 편이 분명코 낫다. 놈은 네 발이고 나는 두 발이지만 어쨌든 땅을 단단히 딛고 있으니, 날카롭게 벼린 무기로 맞붙어보거나 하다못해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도 놓을 수 있지 않나? 참으로 눈물겹게 고맙다. 날개 없는 호랑이까지 고마워할 수 있다면 세상의 무엇이라도 고맙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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