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게 향기로운 존재로다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08.01. 13:19

수정일 2014.08.01. 13:19

조회 1,228

극단 `거미`의 연극 `나는 나르시시스트다`(사진 뉴시스)

누구에게나 자기의 방귀는 구수하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서울톡톡] 기발한 혹은 괴팍한 연구를 하는데 특별한 재능을 지닌 듯한 영국의 과학자들이 얼마 전 희한한 연구 결과를 또 하나 내놓았다. 사람의 방귀 냄새가 암과 뇌졸중, 심장질환과 치매 등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영국 엑세터의과대학 매트 화이트맨 교수팀의 설명에 의하면, 방귀 냄새의 근원 중 하나인 화학물질 황화수소를 소량 흡입하면 황화수소가 혈액세포의 에너지 생성을 촉진하고 염증을 조절하는 미토콘드리아를 보호하여 체내의 세포를 보호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작용을 한단다. 그리하여 방귀 냄새나 썩은 달걀 냄새로 알려진 황화수소가 미래에는 각종 질병의 치료에 사용될 것이라나 뭐라나.

아침 산책을 하던 중 라디오에서 이 소식을 듣고 문득 터져 나오는 웃음과 함께 에라스무스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빼어난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최초의 의식 있는 세계주의자이자 유럽인'이라고 불렀던 에라스무스는 '암흑기'로 일컬어지는 중세에 시대를 초월한 지성과 유머를 구사했던 사람이다. 한스 홀바인이 그린 초상화에 담긴 에라스무스는 영락없이 날카롭고 예민한 인문주의자의 모습이지만, 인간의 위선과 타락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그의 글은 때로 코미디보다 웃기다. 너무도 솔직해서, 지극히 진실해서.

아전인수에 견강부회, 남이 하면 불륜이요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논리가 횡행하는 시절이다. 자기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도덕성까지야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처구니없는 이중 잣대를 들고 한 입으로 두 말을 예사로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쩌면 스스로 부끄럽지도 않은지 화가 나기보다 신기하기까지 하다. 남들이 악취에 코를 싸쥘 때에도 자기 방귀만은 구수한 질병 치료제라고 주장하는 그들은 일종의 나르시시스트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건강한 자기애(healthy narcissism)'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로, 나르시시스트가 되는 것은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하여 힘으로 남들에게 짓밟힐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권력과 돈과 명예를 가지려 발버둥 친다는 것이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방식은 '오렌지'로 비유된다. 단물이 빠진 오렌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듯 사람도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쓰레기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병적인 자기애, 특권의식을 갖고 남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자기애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건강한 자기애는 남의 인격도 존중한다. 최소한 남들을 불쾌하게 하지 않기 위해 살그머니 엉덩이를 돌릴 줄 안다.

이러쿵저러쿵하여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한 독일 대표팀의 뢰브 감독이 경기 도중 코딱지를 파먹는 영상이 공개되어 잘생긴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코딱지 감독'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처럼, 자기 코딱지는 간식으로 먹을 만큼 지저분하지 않게 느껴지고 아무리 썩은 달걀 냄새라도 자기 방귀는 구수한 것이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에라스무스 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이란 참으로 더럽고도 향기로운, 더럽게 향기로운 존재가 아닐 수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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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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