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 없는 나라에서 부탄가스 점유율 1위 가능? Yes, I 'CAN'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6.08.05. 15:19
AI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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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가스 통과 통조림 통이 금속 캔인 이유는 충격과 열에 강해 연료와 식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서다. 이번 칼럼에서는 북한 함흥 출신 박창호 사장이 1957년 서울 중림동 작은 방앗간에서 깡통 사업을 시작해 동생들과 공장을 키운 과정이 소개된다. 현재 전 세계 부탄가스 시장의 90%를 한국 회사 3곳이 차지하고, 한국산 제품은 70개국 이상에 수출된다.

야외에서 주로 사용하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는 부탄가스를 연료로 사용한다.
60화 방앗간에서 깡통 제국 일으킨 삼형제
휴가 때 야외로 여행을 가면 부탄가스를 연료로 사용해서 고기를 구워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게 될 때가 많다. 부탄가스 통은 대부분 쇠, 그러니까 금속으로 만든 캔이다. 요즘 무엇인가를 담는 통은 흔히 PET병이나 종이곽에 담겨 있는 경우도 많은데 왜 부탄가스 통은 금속 캔으로 되어 있을까? 그 이유는 부탄가스 통이 불이 잘 붙는 부탄가스를 주변으로부터 튼튼하게 지켜 내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금속 캔은 주변에 좀 부딪히거나 찔리더라도 쉽게 구멍이 뚫리지 않는다. 또 열기를 받는다고 해도 불이 붙어 버릴 일도 없다. 그러니 각별히 튼튼하게 보관해야 하거나 오래 보관해야 하는 물건 또는 각종 연료를 담은 통 등은 금속 캔으로 된 경우가 많다. 통조림을 만들 때는 뜨거운 열을 가해서 살균해야 하고 그러고 나면 몇 년이고 보관해야 하는데, 바로 그 때문에 통조림 통도 다들 금속 캔으로 만든다.
그러면 금속 캔은 누가 만들까? 금속 캔을 생산하는 회사를 이 업계에는 흔히 ‘제관(製罐)’ 회사라고 부른다. ‘관(罐)’이라는 글자는 원래 두레박 관 자인데, 우리나라의 제관 업체라고 하는 곳들이 우물물을 퍼담는 두레박을 만들던 곳들은 아니다. 두레박의 의미가 넓어지다 보니 쇠로 만든 주전자나 물통 같은 것도 ‘관(罐)’이라는 글자를 써서 표현하곤 했는데 금속 캔이 유럽에서 개발되어 들어 온 후에 그 물건도 그냥 한자로는 ‘관(罐)’으로 나타내면서 제관 회사라는 말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제관 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던 인물로는 박창호 사장을 꼽아볼 만하다. 그는 본래 북한 함흥 출신이었다. 어른이 되어 서울에서 살면서 했던 일은 국세청 작업을 하는 기술 담당 직원이었다. 그가 측량기술자로 일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아마 관청에서 땅 넓이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일을 할 때 실제로 땅 넓이가 얼마인지 측정하는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는 수학, 과학, 장비와 도구를 다루는 기술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그래도 젊은 시절이 쉽게 풀리지만은 않았다. 그는 스물네 살에 6.25를 겪었는데 그 당시 사람치고는 박 사장이 영어를 잘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UN군 부대에서 통역을 했다고 한다. 그의 동생은 한국군 소속의 특수 부대에서 전쟁에 참여했다. 그런데 그에게 막냇동생이 한 명 더 있었는데 그 막내는 함흥 고향에 남아 있어서 6.25 중에 북한 인민군에 징집되어 버렸다고 한다. 형제끼리 전쟁 중에 서로 반대편 부대에 소속되어 싸우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다행히 막냇동생은 전쟁 중에도 살아 남았고 UN군 쪽의 포로가 되어 저 멀리 거제도의 포로수용소로 가게 되었다. 소식을 들은 박 사장은 기구한 운명의 동생을 찾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결국 직접 만났다는데, 그는 노쇠한 후에도 그 감격을 잊지 못했다.
휴가 때 야외로 여행을 가면 부탄가스를 연료로 사용해서 고기를 구워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게 될 때가 많다. 부탄가스 통은 대부분 쇠, 그러니까 금속으로 만든 캔이다. 요즘 무엇인가를 담는 통은 흔히 PET병이나 종이곽에 담겨 있는 경우도 많은데 왜 부탄가스 통은 금속 캔으로 되어 있을까? 그 이유는 부탄가스 통이 불이 잘 붙는 부탄가스를 주변으로부터 튼튼하게 지켜 내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금속 캔은 주변에 좀 부딪히거나 찔리더라도 쉽게 구멍이 뚫리지 않는다. 또 열기를 받는다고 해도 불이 붙어 버릴 일도 없다. 그러니 각별히 튼튼하게 보관해야 하거나 오래 보관해야 하는 물건 또는 각종 연료를 담은 통 등은 금속 캔으로 된 경우가 많다. 통조림을 만들 때는 뜨거운 열을 가해서 살균해야 하고 그러고 나면 몇 년이고 보관해야 하는데, 바로 그 때문에 통조림 통도 다들 금속 캔으로 만든다.
그러면 금속 캔은 누가 만들까? 금속 캔을 생산하는 회사를 이 업계에는 흔히 ‘제관(製罐)’ 회사라고 부른다. ‘관(罐)’이라는 글자는 원래 두레박 관 자인데, 우리나라의 제관 업체라고 하는 곳들이 우물물을 퍼담는 두레박을 만들던 곳들은 아니다. 두레박의 의미가 넓어지다 보니 쇠로 만든 주전자나 물통 같은 것도 ‘관(罐)’이라는 글자를 써서 표현하곤 했는데 금속 캔이 유럽에서 개발되어 들어 온 후에 그 물건도 그냥 한자로는 ‘관(罐)’으로 나타내면서 제관 회사라는 말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제관 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던 인물로는 박창호 사장을 꼽아볼 만하다. 그는 본래 북한 함흥 출신이었다. 어른이 되어 서울에서 살면서 했던 일은 국세청 작업을 하는 기술 담당 직원이었다. 그가 측량기술자로 일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아마 관청에서 땅 넓이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일을 할 때 실제로 땅 넓이가 얼마인지 측정하는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는 수학, 과학, 장비와 도구를 다루는 기술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그래도 젊은 시절이 쉽게 풀리지만은 않았다. 그는 스물네 살에 6.25를 겪었는데 그 당시 사람치고는 박 사장이 영어를 잘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UN군 부대에서 통역을 했다고 한다. 그의 동생은 한국군 소속의 특수 부대에서 전쟁에 참여했다. 그런데 그에게 막냇동생이 한 명 더 있었는데 그 막내는 함흥 고향에 남아 있어서 6.25 중에 북한 인민군에 징집되어 버렸다고 한다. 형제끼리 전쟁 중에 서로 반대편 부대에 소속되어 싸우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다행히 막냇동생은 전쟁 중에도 살아 남았고 UN군 쪽의 포로가 되어 저 멀리 거제도의 포로수용소로 가게 되었다. 소식을 들은 박 사장은 기구한 운명의 동생을 찾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결국 직접 만났다는데, 그는 노쇠한 후에도 그 감격을 잊지 못했다.
전쟁 중에 발견한 깡통의 가치
휴전 후에 모든 것이 파괴되어 가난하고 막막한 상황에서 그는 돈 벌 궁리를 했다. 그러다가 깡통, 그러니까 금속 캔을 구해다 주면 그것을 돈 주고 사 갈 업체를 알려 주겠다는 친척의 제안을 들었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나는 박 사장이 전쟁 중에 마침 스스로도 깡통의 가치를 알아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무렵 미군은 병사들에게 간편하고도 넉넉하게 다양한 음식과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서 온갖 것들을 깡통에 담아 통조림처럼 만들어 막대한 양을 뿌리고 있었다. 한국인들에게는 깡통이 그렇게 친숙하지는 않았지만 미군 부대에서는 스테이크에서 수프까지 별별 음식들이 깡통에 담겨 오던 것을 박 사장은 아마도 기억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깡통이 가치 있는 사업이 될 거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그렇게 해서 박 사장은 1957년 약현이라고도 부르는 서울의 중림동 한 켠에 가로세로 6미터 넓이쯤 되는 작은 방앗간 하나를 얻어 그곳에다가 깡통 만드는 가게를 차렸다. 사업 초기에 마땅한 재료가 없을 때에는 미군에서 버리는 깡통 조각을 주워다가 그것을 고쳐서 필요한 깡통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사업이 조금 더 커진 후에는 전쟁 통에 흩어졌던 동생들을 가게에 불러 같이 일했다. 그렇게 해서 삼형제의 깡통 공장은 갖가지 깡통을 만들어 팔았다. 초기에는 페인트 만드는 회사에서 페인트 담는 깡통을 사 갔다고 하는데, 전쟁 직후라 다시 건설해야 할 곳들이 많다 보니 페인트 같이 건설에 필요한 재료를 담는 깡통이 많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 무렵 미군은 병사들에게 간편하고도 넉넉하게 다양한 음식과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서 온갖 것들을 깡통에 담아 통조림처럼 만들어 막대한 양을 뿌리고 있었다. 한국인들에게는 깡통이 그렇게 친숙하지는 않았지만 미군 부대에서는 스테이크에서 수프까지 별별 음식들이 깡통에 담겨 오던 것을 박 사장은 아마도 기억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깡통이 가치 있는 사업이 될 거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그렇게 해서 박 사장은 1957년 약현이라고도 부르는 서울의 중림동 한 켠에 가로세로 6미터 넓이쯤 되는 작은 방앗간 하나를 얻어 그곳에다가 깡통 만드는 가게를 차렸다. 사업 초기에 마땅한 재료가 없을 때에는 미군에서 버리는 깡통 조각을 주워다가 그것을 고쳐서 필요한 깡통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사업이 조금 더 커진 후에는 전쟁 통에 흩어졌던 동생들을 가게에 불러 같이 일했다. 그렇게 해서 삼형제의 깡통 공장은 갖가지 깡통을 만들어 팔았다. 초기에는 페인트 만드는 회사에서 페인트 담는 깡통을 사 갔다고 하는데, 전쟁 직후라 다시 건설해야 할 곳들이 많다 보니 페인트 같이 건설에 필요한 재료를 담는 깡통이 많이 필요했던 것 같다.

다양한 음식들이 캔에 담겨 유통된다.
주석을 입힌 철판으로 만든 캔
요즘은 알루미늄으로 만드는 금속 캔도 널리 퍼져 있지만 초창기 금속 캔의 기본은 ‘양철’로 만든 제품이었다. 양철은 철에 주석을 얇게 입힌 재료를 말하는데 주석은 철이 녹스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에 다양한 물건을 담아 두는 통을 만들 때 양철은 적합한 재료다. 게다가 주석은 사람 몸에도 안전한 편이어서 통조림, 과자, 식재료를 담는 통으로 양철은 특히 널리 쓰인다.
양철을 다른 말로, 주석을 도금한 강판이라는 뜻으로 한국 업계에서는 ‘석도강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어로는 원래 정확하게는 주석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인 ‘tin’이라는 말을 좀 다른 뜻으로 사용해서 주석을 입힌 철판인 ‘양철판’이라는 뜻으로 쓸 때도 꽤 많다.
예를 들어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 나무꾼을 영어로는 흔히 ‘틴 맨(tin man)’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도 ‘주석 남자’라는 뜻이 아니라 ‘양철 남자’라는 뜻이다. 영어에서는 양철을 넘어서서 아예 양철로 만든 캔 자체를 ‘tin’이라고 부를 때도 있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주석보다는 주재료인 철, 정확히는 강철을 더 중시하는 말을 사용할 때도 많다. 그래서 강철이라는 뜻의 ‘steel’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스틸 캔’이라고 하면 그 말만으로도 주석을 입힌 강철로 만든 캔이란 뜻이 되곤 한다.
양철을 다른 말로, 주석을 도금한 강판이라는 뜻으로 한국 업계에서는 ‘석도강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어로는 원래 정확하게는 주석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인 ‘tin’이라는 말을 좀 다른 뜻으로 사용해서 주석을 입힌 철판인 ‘양철판’이라는 뜻으로 쓸 때도 꽤 많다.
예를 들어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 나무꾼을 영어로는 흔히 ‘틴 맨(tin man)’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도 ‘주석 남자’라는 뜻이 아니라 ‘양철 남자’라는 뜻이다. 영어에서는 양철을 넘어서서 아예 양철로 만든 캔 자체를 ‘tin’이라고 부를 때도 있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주석보다는 주재료인 철, 정확히는 강철을 더 중시하는 말을 사용할 때도 많다. 그래서 강철이라는 뜻의 ‘steel’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스틸 캔’이라고 하면 그 말만으로도 주석을 입힌 강철로 만든 캔이란 뜻이 되곤 한다.
금속판으로 캔을 만들려면…
양철로 캔을 만들 때에는 길쭉한 양철판을 동그랗게 구부려 통 모양으로 만든 뒤에 그 끝을 붙여서 캔의 옆면을 먼저 만든다. 그리고 그 크기에 맞게 아래 뚜껑 하나, 위 뚜껑 하나를 만들어서 아래위에 붙이면 밀폐된 캔 모양이 된다. 세 쪽의 금속을 붙여서 만든다고 해서 이런 캔을 흔히 ‘쓰리 피스 캔’이라고 부른다.
요즘에는 힘이 센 기계로 커다란 금속판을 한 번에 꾹 눌러서 바로 움푹 바닥이 파인 통 모양을 바로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위 뚜껑만 위쪽에 붙이면 밀폐된 캔이 되는데 이렇게 만드는 캔은 ‘투 피스 캔’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양철 캔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작업은 정확하게 양철을 붙이는 작업이다. 가장 간단하게는 납땜 같은 방식으로 캔을 만들 수도 있다. 납은 녹는 점이 327.5℃밖에 되지 않아 별다른 기술 없이도 어지간한 불길을 만들어서 열을 가하면 녹일 수 있다.
그래서 녹은 납을 양철이 붙을 위치에 바른 뒤에 양철을 그 위에 올려놓고 식혀서 납을 굳히면 양철이 달라붙도록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래서야 튼튼하고 열에 잘 견디는 좋은 캔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철 자체의 끄트머리를 녹여서 서로 달라붙게 한 뒤에 식혀서 굳히는 용접 방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저항 용접, 심(seam) 용접이라는 방식과 같이 전기를 이용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강한 전기를 좁은 영역의 철에 흐르게 하면 철이 그만큼 강한 열을 받아 순간 그 부위가 녹아내릴 수 있는데 그때 철끼리 붙여 버리는 것이다. 필요한 위치와 방향에 전기를 강하게 흘리고 철을 잘 눌러 줄 수 있는 장비를 갖춰 놓으면 요즘에는 기계로 한번 꾹 눌러주는 것만으로 그 부위의 양철판을 녹여서 단숨에 서로 붙일 수 있다.
요즘에는 힘이 센 기계로 커다란 금속판을 한 번에 꾹 눌러서 바로 움푹 바닥이 파인 통 모양을 바로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위 뚜껑만 위쪽에 붙이면 밀폐된 캔이 되는데 이렇게 만드는 캔은 ‘투 피스 캔’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양철 캔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작업은 정확하게 양철을 붙이는 작업이다. 가장 간단하게는 납땜 같은 방식으로 캔을 만들 수도 있다. 납은 녹는 점이 327.5℃밖에 되지 않아 별다른 기술 없이도 어지간한 불길을 만들어서 열을 가하면 녹일 수 있다.
그래서 녹은 납을 양철이 붙을 위치에 바른 뒤에 양철을 그 위에 올려놓고 식혀서 납을 굳히면 양철이 달라붙도록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래서야 튼튼하고 열에 잘 견디는 좋은 캔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철 자체의 끄트머리를 녹여서 서로 달라붙게 한 뒤에 식혀서 굳히는 용접 방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저항 용접, 심(seam) 용접이라는 방식과 같이 전기를 이용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강한 전기를 좁은 영역의 철에 흐르게 하면 철이 그만큼 강한 열을 받아 순간 그 부위가 녹아내릴 수 있는데 그때 철끼리 붙여 버리는 것이다. 필요한 위치와 방향에 전기를 강하게 흘리고 철을 잘 눌러 줄 수 있는 장비를 갖춰 놓으면 요즘에는 기계로 한번 꾹 눌러주는 것만으로 그 부위의 양철판을 녹여서 단숨에 서로 붙일 수 있다.
제관사업에 뛰어든 한국의 기술인들
박 사장을 비롯해 많은 한국의 기술인들이 20세기 중반에 제관 사업에 뛰어들었다. 제관 사업은 비교적 간단한 작업을 통해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면서도 싸고 튼튼하고 좋은 캔을 빠르게 많이 만들어 내는 일은 여러 가지 기술 개발과 더 좋은 장비 개발이 필요하기에 기술을 개발하며 사업을 키워 갈 여지도 많다.
박 사장 역시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편이었고 나중에는 서울 영등포구의 양평동에 공장을 차려 사업을 크게 키웠다. 지금이야 양평동 공장도 충청남도 아산으로 이전하고 박 사장의 공장 터에는 빌딩이 들어섰기는 하다. 하지만 1990년 말까지 긴 세월 서울의 공장이 가동되면서 금속 캔을 쉴 새 없이 만들어 냈다. 그 금속 캔들은 다양한 한국 제품을 담은 채 세계로 수출되었을 것이다.
한동안 한국에서는 석유를 담는 금속 캔이 꽤 좋은 사업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제관 업체들 중 몇몇이 연료를 담는 안전하고 튼튼한 캔을 만드는 기술에 상당한 투자를 했다. 이런 업체들 중 일부는 기름 연료뿐만 아니라 가스를 담는 연료 통을 개발하기도 했고, 그런 회사들은 아예 자기 회사에서 개발한 금속 캔에 휴대용 부탄가스를 담아 소비자 제품으로 대량 판매하기도 했다.
박 사장 역시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편이었고 나중에는 서울 영등포구의 양평동에 공장을 차려 사업을 크게 키웠다. 지금이야 양평동 공장도 충청남도 아산으로 이전하고 박 사장의 공장 터에는 빌딩이 들어섰기는 하다. 하지만 1990년 말까지 긴 세월 서울의 공장이 가동되면서 금속 캔을 쉴 새 없이 만들어 냈다. 그 금속 캔들은 다양한 한국 제품을 담은 채 세계로 수출되었을 것이다.
한동안 한국에서는 석유를 담는 금속 캔이 꽤 좋은 사업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제관 업체들 중 몇몇이 연료를 담는 안전하고 튼튼한 캔을 만드는 기술에 상당한 투자를 했다. 이런 업체들 중 일부는 기름 연료뿐만 아니라 가스를 담는 연료 통을 개발하기도 했고, 그런 회사들은 아예 자기 회사에서 개발한 금속 캔에 휴대용 부탄가스를 담아 소비자 제품으로 대량 판매하기도 했다.

제관 업체들은 자기 회사에서 개발한 금속 캔에 휴대용 부탄가스를 담아 대량 판매하기 시작했다.
부탄가스 시장의 90%는 한국산
업체들의 경쟁 속에 기술은 더 발전해서 요즘은 불길에도 잘 터지지 않는 더 안전한 부탄가스 제품을 만드는 한국 업체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런 업체들은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부탄가스 제품을 만드는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전 세계 부탄가스 시장의 90%를 박 사장이 창립한 회사를 포함한 한국 회사 세 곳이 장악하고 있다. 한국에는 유전이 없기 때문에 부탄가스 안에 집어넣는 가스는 전부 수입 원료에서 뽑아내서 담고 있다.
그런데도 부탄가스를 넣어 둔 캔 제품은 한국산이 세계 70개국 이상에 꾸준히 팔려 나가며 어느 나라 제품보다도 잘 팔리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 캠핑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부탄가스를 꺼내면 그것은 한국산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만하면 전쟁통에 헤어져 고생했던 형제들을 위해 방앗간에서 버린 깡통을 두드리며 일하던 어느 서울 청년의 이야기치고는 충분히 멋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은 전 세계 부탄가스 시장의 90%를 박 사장이 창립한 회사를 포함한 한국 회사 세 곳이 장악하고 있다. 한국에는 유전이 없기 때문에 부탄가스 안에 집어넣는 가스는 전부 수입 원료에서 뽑아내서 담고 있다.
그런데도 부탄가스를 넣어 둔 캔 제품은 한국산이 세계 70개국 이상에 꾸준히 팔려 나가며 어느 나라 제품보다도 잘 팔리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 캠핑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부탄가스를 꺼내면 그것은 한국산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만하면 전쟁통에 헤어져 고생했던 형제들을 위해 방앗간에서 버린 깡통을 두드리며 일하던 어느 서울 청년의 이야기치고는 충분히 멋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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