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금성대군과 떠나는 역사여행
발행일 2026.03.31. 13:57
금성대군을 주신(主神)으로 모신 당집, 금성당 ⓒ김종성
천만 관객을 넘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열풍이 역사 여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화 속에 잠깐 등장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인물이 있는데, 바로 이준혁 배우가 연기한 금성대군이다. 금성대군(錦城大君, 1426~1457년) 이유는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로, 단종의 삼촌이자 수양대군(세조)의 아우다.
수양대군(세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을 유배를 보내는 과정에서 금성대군도 경북 순흥(영주)으로 유배를 보냈다. 이때 금성대군은 순흥 부사와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다 32살 젊은 나이에 사사(사약을 받아 죽음)되고 말았다.
이 거사는 훗날 '정축지변'으로 불리는 대규모 숙청으로 이어졌다. 순흥부는 역모의 땅이라 하여 행정구역 자체가 폐지되었고, 수많은 관련자들이 처형됐다. 570년이 지난 지금도 영주의 유생들은 정축지변으로 무고하게 죽어간 순흥 사람들과 금성대군을 기리며 금성단에 모여 향사를 지내고 있다.
수양대군(세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을 유배를 보내는 과정에서 금성대군도 경북 순흥(영주)으로 유배를 보냈다. 이때 금성대군은 순흥 부사와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다 32살 젊은 나이에 사사(사약을 받아 죽음)되고 말았다.
이 거사는 훗날 '정축지변'으로 불리는 대규모 숙청으로 이어졌다. 순흥부는 역모의 땅이라 하여 행정구역 자체가 폐지되었고, 수많은 관련자들이 처형됐다. 570년이 지난 지금도 영주의 유생들은 정축지변으로 무고하게 죽어간 순흥 사람들과 금성대군을 기리며 금성단에 모여 향사를 지내고 있다.
금성당 안 금성대군의 무신도 ⓒ김종성
이렇게 금성대군은 당시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으나, 후대에는 불의에 맞선 충절의 상징으로 기억되며 그 의미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러한 금성대군을 기리는 신당이 서울에 있는데 금성당(錦城堂, 은평구 진관2로 57-23)이라는 민속 신앙 공간이다.
대중교통편은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2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또는 3·6호선 연신내역(3번 출구)에서 720번 버스를 타고 두산위브 205동 앞에서 하차하면 도보 2분 거리다.
대중교통편은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2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또는 3·6호선 연신내역(3번 출구)에서 720번 버스를 타고 두산위브 205동 앞에서 하차하면 도보 2분 거리다.
방문객들에게 금성당 안내와 설명을 해주는 해설사 ⓒ김종성
국가의 제의 전통과 민간 신앙이 결합된 금성당
금성당은 본래 고려시대부터 전남 나주의 토착 신앙인 금성대왕을 모시던 신당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던 제의 공간이었다. 이후 금성대군에 대한 민간의 추모와 신앙이 더해지며 현재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인왕산 국사당에 신장(神將)으로 모셔진 최영 장군에서 보듯 사람들은 충절과 드라마틱한 삶,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인물을 무속의 신으로 삼는 듯하다. 그래야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픔과 한을 풀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에는 진관동 외에 망원동과 월계동 등 3곳의 금성당이 있었으나, 현재 은평구 금성당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이곳 역시 은평뉴타운 개발 당시 철거 위기에 놓였으나, 지역 역사와 문화재 보존을 위한 지자체와 민속학자들의 노력으로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은 금성당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같은 가치를 인정받아 금성당은 지난 2008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현재 은평구에서 운영·관리하고 있다.
인왕산 국사당에 신장(神將)으로 모셔진 최영 장군에서 보듯 사람들은 충절과 드라마틱한 삶,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인물을 무속의 신으로 삼는 듯하다. 그래야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픔과 한을 풀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에는 진관동 외에 망원동과 월계동 등 3곳의 금성당이 있었으나, 현재 은평구 금성당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이곳 역시 은평뉴타운 개발 당시 철거 위기에 놓였으나, 지역 역사와 문화재 보존을 위한 지자체와 민속학자들의 노력으로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은 금성당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같은 가치를 인정받아 금성당은 지난 2008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현재 은평구에서 운영·관리하고 있다.
금성당에 마련된 여러 체험 프로그램 ⓒ김종성

금성대군 탄신일에 맞춰 열리는 금성당제 ⓒ은평구
네 채로 된 친숙한 ‘ㅁ’자 한옥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각 방마다 금성대군과 여러 무속신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벽에는 오색의 색채로 정성스럽게 그려진 무신도(巫神圖)들이 걸려 있다. 각각의 무신도 아래 무속신들의 영험한 능력이 써 있다. 소원지 적기, 오방기 뽑기, 무복 입기 체험, 만사형통과 금은보화 글자가 새겨진 도장을 종이에 찍는 부적 찍기 등을 할 수 있는 흥미로운 체험 공간도 있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10:00~17:00)까지 무료 관람할 수 있으며, 수·목·금요일 오전 10시 30분에는 전문적인 설명을 곁들인 전시 해설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또한 매년 금성대군 탄신일에 맞춰 나라의 태평과 구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통 행사 ‘금성당제’가 열리고 있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10:00~17:00)까지 무료 관람할 수 있으며, 수·목·금요일 오전 10시 30분에는 전문적인 설명을 곁들인 전시 해설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또한 매년 금성대군 탄신일에 맞춰 나라의 태평과 구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통 행사 ‘금성당제’가 열리고 있다.
금성당과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열리는 다양한 프로그램 ⓒ김종성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는 금성당 유물전
은평한옥마을에 있는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는 금성당 유물전인 <안녕, 금성당>을 4월 12일까지 진행한다. 전시는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된다. '바라다'에서는 개인과 왕실의 염원이 담긴 유물을, '행하다'에서는 무복, 무구, 무악기 등 굿 의례에 쓰인 도구와 복식을, '나누다'에서는 제의 후 음식을 나누며 공동체적 의미를 확장했던 음복 문화를 각각 다룬다.
2000년대 은평뉴타운 개발 당시 금성당 건물은 보존되었으나, 내부 유물은 서울역사박물관에 기탁해 약 20년간 보관했다. 이후 총 436점의 유물이 기증을 통해 은평역사한옥박물관으로 돌아왔다. 전시 관람과 함께 직접 금성당을 탐방해 보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금성당'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프로그램 참여 신청은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누리집에서 하면 된다.
금성대군의 동생 ‘화의군 이영 묘역’ ⓒ김종성
금성대군의 동생 ‘화의군 이영 묘역’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도보 10여 분 거리에는 ‘화의군 이영 묘역’(은평구 진관동 산 42)이 있다. 화의군 이영은 세종의 여섯째 아들(서자)이자 금성대군의 이복동생으로 함께 성균관에 입학했다. 학문에 조예가 깊어 한글창제에 참여했으며, 훈민정음처의 감독관을 지내기도 하여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단종 복위 운동에 참여했다가 발각되어 모든 가산을 몰수당하고 전북 익산으로 유배되었다. 왕자 지위를 박탈당하고 평민 신분으로 유배와 감시 속에서 긴 세월을 살아야 했다. 60세로 사망한 후 중종 때 들어서야 비로소 복권되었다.
붉은색은 악귀를 쫓고 화살은 액운을 물리친다는 이곳의 홍살문은 안내판이 따로 있을 정도로 특별하다. 순조 10년(1810)에 왕명으로 '불천지위'(공훈이 있는 사람으로서 영원히 사당에 안치하도록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의 전교와 함께 받은 것이다.
단종 복위 운동에 참여했다가 발각되어 모든 가산을 몰수당하고 전북 익산으로 유배되었다. 왕자 지위를 박탈당하고 평민 신분으로 유배와 감시 속에서 긴 세월을 살아야 했다. 60세로 사망한 후 중종 때 들어서야 비로소 복권되었다.
붉은색은 악귀를 쫓고 화살은 액운을 물리친다는 이곳의 홍살문은 안내판이 따로 있을 정도로 특별하다. 순조 10년(1810)에 왕명으로 '불천지위'(공훈이 있는 사람으로서 영원히 사당에 안치하도록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의 전교와 함께 받은 것이다.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