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손잡고 이뤄낸 1988년, 그리고 다시 손잡을 2036년!

시민기자 이정민

발행일 2024.12.05. 13:00

수정일 2024.12.05. 16:52

조회 830

  • ‘88 서울올림픽의 영광’ 영상을 통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 손기정 선수를 만나볼 수 있다. ©이정민
    ‘88 서울올림픽의 영광’ 영상을 통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 손기정 선수를 만나볼 수 있다. ©이정민
  • 서울올림픽 주제곡 ‘손에 손잡고’를 부른 보컬 그룹 코리아나의 개회식 당시 한 장면이다. ©이정민
    서울올림픽 주제곡 ‘손에 손잡고’를 부른 보컬 그룹 코리아나의 개회식 당시 한 장면이다. ©이정민
  • ‘88 서울올림픽의 영광’ 영상을 통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 손기정 선수를 만나볼 수 있다. ©이정민
  • 서울올림픽 주제곡 ‘손에 손잡고’를 부른 보컬 그룹 코리아나의 개회식 당시 한 장면이다. ©이정민
“나는 침착한 태도로 달렸습니다, 수많은 응원자들의 소리가 내 귀를 울렸습니다.” -손기정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 잡고.”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이것만이 희망이고 미래였다! 첫발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험난한 과정이 계속되었지만 도전했다. 무너지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하지 않던가! 마침내 우리는 해냈다. 모두가 바라고 이룬 그 기적의 순간들을 지금 다시 떠나보려고 한다.
  •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며 ‘2036 서울, 두 번째 올림픽’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정민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며 ‘2036 서울, 두 번째 올림픽’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정민
  • 88 서울올림픽 공식 휘장 포스터와 굴렁쇠 소년 ©이정민
    88 서울올림픽 공식 휘장 포스터와 굴렁쇠 소년 ©이정민
  • 후안 안토니오 사마린치 IOC위원장 내한 당시 사용한 공식 의전 차량인 콤비 버스 ©이정민
    후안 안토니오 사마린치 IOC위원장 내한 당시 사용한 공식 의전 차량인 콤비 버스 ©이정민
  •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며 ‘2036 서울, 두 번째 올림픽’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정민
  • 88 서울올림픽 공식 휘장 포스터와 굴렁쇠 소년 ©이정민
  • 후안 안토니오 사마린치 IOC위원장 내한 당시 사용한 공식 의전 차량인 콤비 버스 ©이정민
서울역사박물관은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며 11월 22일부터 내년 3월 9일까지 로비 특설전시실에서 ‘2036 서울, 두 번째 올림픽’ 특별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변화된 반세기 역사를 회고하며 그 성과를 재조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도착하면 특별전은 크게 2개의 공간에서 이뤄진다. 박물관 광장의 '서울올림픽의 영광과 환희'와 박물관 로비의 '88 서울올림픽과 서울의 변화'로 구성된다. 날씨와 시간을 고려할 때 광장을 먼저 둘러본 후, 로비로 이동하는 것이 관람하기에 좋다.

광장에는 올림픽 유치 확정 후, 후안 안토니오 사마린치 IOC위원장 내한 당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공식 의전 차량인 콤비 버스가 야외에 전시되어 있으며, 공식 포스터와 휘장 포스터, 종목별 경기 포스터와 문화 포스터를 볼 수 있다. 반가운 굴렁쇠 소년의 모습을 딴 금속 조각과 전시의 주제를 담은 조각도 눈길을 끈다.

광장에서는 88 서울올림픽의 상징을 만날 수 있다면, 로비에서는 88 서울올림픽 유치 계획 공식 발표부터 험난했던 과정과 성과를 살펴볼 수 있다. 올림픽 전후로 서울의 도시 공간과 변화된 생활상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 로비에서의 전시는 88 서울올림픽과 서울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정민
    로비에서의 전시는 88 서울올림픽과 서울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정민
  • 88 서울올림픽 유치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이정민
    88 서울올림픽 유치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이정민
  • 쉽지 않았던 서울올림픽 유치 배경을 자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정민
    쉽지 않았던 서울올림픽 유치 배경을 자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정민
  • IOC와 서울올림픽 유치 확정 계약 체결 자료를 볼 수 있다. ©이정민
    IOC와 서울올림픽 유치 확정 계약 체결 자료를 볼 수 있다. ©이정민
  • 로비에서의 전시는 88 서울올림픽과 서울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정민
  • 88 서울올림픽 유치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이정민
  • 쉽지 않았던 서울올림픽 유치 배경을 자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정민
  • IOC와 서울올림픽 유치 확정 계약 체결 자료를 볼 수 있다. ©이정민

서울올림픽 유치, 기적을 현실로

광복 후 독립국이 된 우리나라는 1948년 런던올림픽에 참가하여 자주 독립국임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했다. 1966년에 확정된 70 아시안 게임 유치는 국제 대회를 통해 6.25 전쟁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과 서울의 변화를 보여주고자 한 첫 시도였다. 그러나 불안한 국내 상황과 부족한 기반 시설, 재정적 문제 등으로 개최권을 태국에 반납하고 25만 달러의 부담금을 지불했다. 이로부터 10년 후 재도전은 올림픽 유치로 이어졌다.

올림픽 유치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도약하기 위한 시대적 도전이었다. 유치 과정에서 국내외 불안한 상황과 재정 문제 등으로 수차례 무산될 위기에 처했지만, 경쟁 도시 나고야와의 사활을 건 외교 전쟁 끝에 결국 올림픽 개최국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하나의 국제 행사 유치가 아닌, 시민들의 삶을 바꿀 역사적인 사건인 올림픽 유치의 험난한 여정을 보여준다.
  • 88 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후 잠실지구 종합개발기본계획이 발표되었다. ©이정민
    88 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후 잠실지구 종합개발기본계획이 발표되었다. ©이정민
  • 88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잠실종합운동장과 경기장 시설 ©이정민
    88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잠실종합운동장과 경기장 시설 ©이정민
  • 1988년 올림픽주경기장이었던 잠실종합운동장 ©이정민
    1988년 올림픽주경기장이었던 잠실종합운동장 ©이정민
  • 1980년대 올림픽을 대비해 도로를 확장하고 지하철 2‧3‧4호선 건설이 이루어졌다. ©이정민
    1980년대 올림픽을 대비해 도로를 확장하고 지하철 2‧3‧4호선 건설이 이루어졌다. ©이정민
  •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의 등장! ©이정민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의 등장! ©이정민
  • 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이 사진 속에 담겨 있다. ©이정민
    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이 사진 속에 담겨 있다. ©이정민
  • 88 서울올림픽 기념 은도금 호돌이 쟁반 ©이정민
    88 서울올림픽 기념 은도금 호돌이 쟁반 ©이정민
  • 지하철 2‧3‧4호선 전 구간 개통 기념 승차권 ©이정민
    지하철 2‧3‧4호선 전 구간 개통 기념 승차권 ©이정민
  • 1982‧1986년 당신 대한민국 일반 여권(유희봉 기증) ©이정민
    1982‧1986년 당신 대한민국 일반 여권(유희봉 기증) ©이정민
  • 88 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후 잠실지구 종합개발기본계획이 발표되었다. ©이정민
  • 88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잠실종합운동장과 경기장 시설 ©이정민
  • 1988년 올림픽주경기장이었던 잠실종합운동장 ©이정민
  • 1980년대 올림픽을 대비해 도로를 확장하고 지하철 2‧3‧4호선 건설이 이루어졌다. ©이정민
  •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의 등장! ©이정민
  • 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이 사진 속에 담겨 있다. ©이정민
  • 88 서울올림픽 기념 은도금 호돌이 쟁반 ©이정민
  • 지하철 2‧3‧4호선 전 구간 개통 기념 승차권 ©이정민
  • 1982‧1986년 당신 대한민국 일반 여권(유희봉 기증) ©이정민

올림픽 개최 전후 변화된 서울의 모습

올림픽 대비를 위한 대규모 개발을 통해 체육시설이 확충되었고, 주요 경기 시설과 도심 지역 간의 연결성을 강화하기 위해 간선도로, 교량, 지하철 2‧3‧4호선 등 도시 네트워크도 확장되었다. 한강은 종합개발사업으로 시민공원 조성, 수질 개선 등을 통해 휴식과 여가의 공간으로 정비되었다.

서울올림픽을 디자인하여 마스코트 호돌이, 공식 포스터, 올림픽 기념품과 상품 등 당시 우리나라의 그래픽디자인 역사에 전환점을 맞이했다. 또 서울올림픽 주제곡 ‘손에 손잡고’를 부른 보컬 그룹 코리아나가 개회식 당시 착용한 무대의상과 악기, 88 서울올림픽 공식 기념품 및 홍보물 개회식 및 폐회식 자료 등을 볼 수 있으며, 성공정인 올림픽 개최에 대한 과정도 담고 있다.
  • 88 서울올림픽에 대한 당시 열기와 생활상의 변화를 볼 수 있는 CF 영상 ©이정민
    88 서울올림픽에 대한 당시 열기와 생활상의 변화를 볼 수 있는 CF 영상 ©이정민
  • 1980년대 광고 영상을 통해 올림픽의 열기를 엿볼 수 있다. ©이정민
    1980년대 광고 영상을 통해 올림픽의 열기를 엿볼 수 있다. ©이정민
  • 88 서울올림픽에 대한 당시 열기와 생활상의 변화를 볼 수 있는 CF 영상 ©이정민
  • 1980년대 광고 영상을 통해 올림픽의 열기를 엿볼 수 있다. ©이정민
88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하여 시민의 생활문화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80년대 중반 한국 경제는 고도 성장을 이루며 대량 소비의 시대가 열렸다. 차량 등록 대수가 급속히 증가하였고, 컬러 TV 방송 등 대중매체의 발달로 가전제품 보급률이 상승하여 새롭고 개성적인 대중문화가 유행했다. 프로스포츠 육성, 해외여행 자유화, 야간 통행 금지 해제, 교복 자율화, 근로시간 단축 등 시민 생활의 편익 증진을 위한 많은 정책이 시행되었다.

88 서울올림픽은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라는 표어 아래 올림픽 헌장의 정신을 준수하며 스포츠 교류를 통해 화합의 기틀을 다졌고, 세계 평화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서울올림픽 이후 교류가 없던 국가들과 수교를 하고 문화 교류의 범위가 넓어졌으며, 패션, 문화, 산업 등 많은 것이 달라졌다. 대외 이미지 개선으로 국가의 위상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의 중심부에 들어섰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이를 통해 국민들 스스로 세계관에도 큰 변화가 생기며 경제 성장에 좋은 영향력을 주었다. 88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 우리의 소중한 유산이 되었다.

1980년대 서울 시민의 강렬한 기억

1980년대를 살았던 서울 시민이라면 당시 서울올림픽 기념 주화, 포스터, 입장권 등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라 생각된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전시를 구경하면서 1988년에 올림픽을 봤던 이에게는 추억을, 1988년 이후의 사람들과 아이들에게는 그 당시 역사적 경험을 설명해 주고 알게 해주는 좋은 교과서 될 것 같다.

88 서울올림픽 이후 이제 한국은 세계가 열광하고 기대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2036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더 새롭고 달라질 미래를 기대한다. 우리는 한번 해냈고 이뤘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도전한다. 손에 손잡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의 보물 나의 유산' 전시에 88 서울올림픽 기증 물품을 볼 수 있는 재미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전시 ‘2036 서울, 두 번째 올림픽’

○ 기간 : 2024. 11. 22~2025. 3. 9.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서울역사박물관 광장 및 로비
○ 운영시간 : 화~목요일, 주말 09:00~18:00, 금요일 09:00~21:00
○ 휴무 : 월요일, 법정공휴일
○ 관람료 : 무료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
○ 문의 : 02-724-0274~6

시민기자 이정민

서울의 낮과 밤, 다양한 모습을 전달하는 서울시민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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