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최고 행정기관 '의정부'가 있던 자리는 어디?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4.06.21. 13:27

수정일 2024.06.21. 13:27

조회 4,124

조선 시대 최고 관청 의정부 터가 광장으로 개방되었다. ⓒ이선미
조선 시대 최고 관청 의정부 터가 광장으로 개방되었다. ⓒ이선미

오랫동안 둘러쳐져 있던 가림막이 거둬졌다. 광화문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사이에 있는 조선 시대 최고 행정기관 의정부 터가 약 8년 동안의 발굴을 마치고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으로 개방되었다.

의정부 유적 공개 과정에서도 현장을 찾은 적이 있어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광장이 조성될까 기다려졌었다. 개방 소식을 듣고 찾아간 오후는 한여름처럼 뜨거웠다. 그늘이 없는 광장에 의정부 건물지의 초석들이 놓여 있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에서 내려다본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 ⓒ이선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에서 내려다본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 ⓒ이선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옆쪽으로 안내판이 서 있었다.
“…의정부지는 조선 시대 최상급 중앙 관청의 건물 배치 형식을 보여줄 뿐 아니라 광화문 앞 광장을 둘러싼 역사적 경관을 구성하는 시설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 의정부지는 조선 건국 직후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의 역사적 층위를 간직한 광화문 일대의 상징적인 유산이다.”

안내판에는 의정부의 건물 배치 등과 지금은 사라진 정자 등의 사진도 있었다. 의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마땅히 삼정승, 즉 영의정과 좌우정, 우의정의 집무 공간인 ▴정본당이다. 그 양옆으로 종1품 찬성과 정2품 참찬들이 근무하던 ▴협선당, 여러 재상들의 사무 공간이었던 ▴석획당이 들어서 있었다.
안내판에 의정부지에 대한 설명과 건물 배치도 등이 적혀 있다. ⓒ이선미
안내판에 의정부지에 대한 설명과 건물 배치도 등이 적혀 있다. ⓒ이선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내려다본 의정부 중심 건물지 ⓒ이선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내려다본 의정부 중심 건물지 ⓒ이선미
의정부 중심 건물지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선미
의정부 중심 건물지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선미

정본당 뒤쪽 후원에서는 ▴연지와 ▴정자의 흔적도 발굴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대부분의 중앙 관아 후원에 연못과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나랏일을 하던 이들이 종종 휴식도 취했을 공간이었다.

연지에는 연꽃이 만발하고 배나무가 있어 멋진 풍경이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다만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연지의 물은 불이 났을 때는 방화수 용도로도 쓰였다고 한다. 연지와 정자가 있던 곳 주변으로는 나무를 심고 벤치를 놓아 시민들이 쉴 수 있도록 했다.
연지 옆에 있던 정자는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 안내판
연지 옆에 있던 정자는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 안내판
  • 의정부 후원이었던 연지와 정자 주변에는 나무 사이로 산책로를 조성했다. ⓒ이선미
    의정부 후원이었던 연지와 정자 주변에는 산책로를 조성했다. ⓒ이선미
  • 벤치를 두어 시민들이 쉴 수 있도록 했다. ⓒ이선미
    벤치를 두어 시민들이 쉴 수 있도록 했다. ⓒ이선미
  • 그늘 가림막도 설치했다. ⓒ이선미
    그늘 가림막도 설치했다. ⓒ이선미
  • 의정부 후원이었던 연지와 정자 주변에는 나무 사이로 산책로를 조성했다. ⓒ이선미
  • 벤치를 두어 시민들이 쉴 수 있도록 했다. ⓒ이선미
  • 그늘 가림막도 설치했다. ⓒ이선미
광장 한쪽에는 화장실도 생겼다. ⓒ이선미
광장 한쪽에는 화장실도 생겼다. ⓒ이선미

각 건물지 앞에는 간략한 설명이 있었다. 그런데 몇 줄의 설명으로 각 건물들을 곧바로 알 수 있을까 싶어졌다. 

종묘의 경우에는 몇 군데에 사진 자료가 배치돼 있었다. 종묘 제례부터 각 건물의 성격 등이 우리에게는 낯선데 사진 자료를 넣어 설명해 주는 안내가 도움이 되었다.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 안내판에도 정본당과 정자의 자료 사진이 있는데 각 건물 앞에도 놓여 있으면 어떨까 싶었다.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 안내판에 ‘정본당’의 자료 사진이 있다.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 안내판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 안내판에 ‘정본당’의 자료 사진이 있다.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 안내판

의정부에는 대문의 양쪽에 붙어 방이나 창고로 쓰이던 내행랑과 외행랑이 있었는데 발굴 조사 과정에서 ▴내행랑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내행랑 남벽 바깥마당에서는 ▴원형 우물도 발굴되었다. 우물 안에서 나온 유물로 볼 때 경기도청이 들어선 시기까지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내행랑 구역 안내에는 우물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실제로 우물은 복토를 하고 둥글게 표시만 되어 있어서 사정을 아는 사람이 아니면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내행랑 건물지 ⓒ이선미
내행랑 건물지 ⓒ이선미
일제 강점기까지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원형 우물 자리 ⓒ이선미
일제 강점기까지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원형 우물 자리 ⓒ이선미

얼마 전 폴란드 바르샤바를 여행했다. 바르샤바는 나치 독일의 폭격으로 거의 80~90%가 파괴된 것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그들 역시 남아 있는 사진이나 그림을 보며 복원했다.

구시가 전체가 복원된 바르샤바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정부라는 성격을 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은 복원이 계속되고 있지만, 광화문 앞 육조거리에 가득했던 무수한 관청들은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곳이 전혀 없다. 조선 왕조 오백 년을 함께해 온 최고 행정기관 의정부가 눈앞에 복원되어 있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의정부지를 발굴 상태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보존 처리 후 복토한다고 했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은 광장을 보자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건물지의 초석들 너머로 광화문이 보인다. ⓒ이선미
건물지의 초석들 너머로 광화문이 보인다. ⓒ이선미

텅 빈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에 한동안 서 있었다. 그 옛날 환히 열린 육조거리의 분주한 발걸음과 소음들을 상상해 보았다. 겨우 백여 년 전의 일이다. 조선 왕조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전쟁 후 혼란을 겪으며 과거의 흔적이 모두 덮여 버렸다. 

서울 한복판 경복궁과 광화문광장에 어우러지는 의정부는 비단 우리만이 아니라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실감나게 보여 줄 장소가 되기도 한다. 광장 한쪽에 있는 ‘4월민주혁명 50주년 기념탑’ 역시 우리 역사의 한 순간을 알려 주고 있다. 
시민들이 ‘4월민주혁명 50주년 기념탑’을 살펴보고 있다. ⓒ이선미
시민들이 ‘4월민주혁명 50주년 기념탑’을 살펴보고 있다. ⓒ이선미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은 한 달의 시범 개방을 거쳐 7월 중순에 정식 개장한다고 한다. 시범 운영을 거쳐 시민들의 불편 사항을 접수하고 보완해 정식 개장할 예정이라니, 시민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76-14번지 외 (경복궁 광화문 맞은편)
○ 교통 :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에서 385m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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