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 년 조선왕조 최고 행정기관 '의정부지'에 가다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1.06.29. 09:23

수정일 2021.06.29. 16:57

조회 563

지난 2013년 이후 발굴 조사를 진행해온 광화문 앞 의정부 유적이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7년 여의 연구 조사를 마치고 지난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58호로 지정된 ‘의정부지(議政府址)’가 도심 속 역사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의정부지 유적 시민에 공개

지난 22일, 의정부 유적 공개 프로그램은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에서 시작됐다. 조선 제26대 고종 임금의 즉위 40주년, 51세의 나이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일, 1897년 대한제국 수립 등을 기념하는 이 기념비는 대한제국 광무 6년(1902)에 세워졌다. 기로소는 나이가 많은 문신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국립 경로당 같은 곳으로 태조, 숙종, 영조와 고종 임금도 입소한 적이 있는데, 그 기로소가 거기 어디쯤에 있었다. 의정부에서 시작하는 육조거리의 거의 끝부분이었다.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에서 의정부지 유적 공개 프로그램이 시작했다.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에서 의정부지 유적 공개 프로그램이 시작했다. ⓒ이선미

홍순민 명지대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옛 길들을 더듬어보았다. 지금의 세종대로, 곧 육조거리는 ‘광화문 앞길’이 더 적절한 이름으로, 일제강점기에는 광화문통으로 불렸다. 광화문 뒤로 백악산이 드리워지고, 서울 어디서나 보인다는 북한산 보현봉이 빼꼼 솟았다. 한양은 내사산, 즉 백악산과 타락산(현 낙산), 인왕산과 목멱산(현 남산) 능선을 따라 그 중심을 흐르는 내수, 현재의 청계천과 조화를 이루며 조성되었다. 
육조거리의 끝에서 바라보는 경복궁 방향. 백악산을 중심으로 내사산이 드리워진다.
육조거리의 끝에서 바라보는 경복궁 방향. 백악산을 중심으로 내사산이 드리워진다. ⓒ이선미

몇 걸음 걸어 종로 쪽으로 향하니 바로 옛 물길의 자취가 나타났다. 중학천 또는 삼청동천이 청계천으로 유입되는 지점에 놓였던 ‘혜정교 터’ 표지석이었다. 
중학천을 따라 올라가며 홍순민 교수의 현장강의가 이어졌다.
중학천을 따라 올라가며 홍순민 교수의 현장강의가 이어졌다. ⓒ이선미

경복궁 북쪽 백악산에서 흘러내려와 청계천으로 합류하던 중학천 부근에는 조선 시대에 궁중의 가마와 말(馬)에 관한 일을 관장한 사복시와 조선의 중등교육 기관인 사부학당 중 중부학당(중학)이 있었다. 중학천도 거기에서 이름을 얻었다. 
중학천 석축 유구. 하부 3단은 조선 중후기 석축을 원형대로 보존한 것이다.
중학천 석축 유구. 하부 3단은 조선 중후기 석축을 원형대로 보존한 것이다. ⓒ이선미
중학천의 이름이 유래한 중부학당 터 표지와 유구
중학천의 이름이 유래한 중부학당 터 표지와 유구 ⓒ이선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 옥상정원으로 올라가 의정부지와 맞은편 세종로 발굴 현장을 내려다보았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의정부는 ‘백관을 총괄하고(總百官) 서정을 평리하며(平庶政) 음양을 다스리고(理陰陽) 나라를 경륜하는(經邦國)’ 국가 최고 행정기관이었다. 말 그대로 보면 어마어마한 권한이지만 실제로는 육조와의 관계 등 모호한 점이 많았다고 한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하며 의정부의 권한도 강화하고자 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서 내려다본 의정부지와 육조거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서 내려다본 의정부지와 육조거리 ⓒ이선미

조선의 주요 관청가였던 지금의 세종대로에는 고층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옛 자취를 확인하는 것이 어렵다. 다만 의정부 터는 여러 변화를 겪는 중에도 지하를 깊이 판 적이 없어 어느 정도 층위를 들여다볼 수 있다. 
의정부 터 발굴 현장 가림막에 '경국대전'에 기록된 의정부의 기능이 쓰여 있다.
의정부 터 발굴 현장 가림막에 '경국대전'에 기록된 의정부의 기능이 쓰여 있다. ⓒ이선미

의정부지에 들어서니 발굴된 유구를 지지하는 모래주머니들 사이로 여러 흔적이 조금씩 드러나 있었다. 의정부 유적 발굴조사를 해온 조치욱 학예사의 안내로 발굴 조사 과정과 확인된 부분들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다. 사진 자료가 마련돼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의정부지 유적 공개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유구로 내려가고 있다.
의정부지 유적 공개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유구로 내려가고 있다. ⓒ이선미

의정부 터에는 일제강점기 붉은 벽돌 건물이 지어져 경기도청으로 쓰였고, 광복 이후에도 내무부 치안국 청사로 활용됐다. 2016년 이후 네 차례의 발굴조사 자료에 의하면, 주요 관청은 ‘외삼문-내삼문-당상대청-후원’의 형식으로 배치되었는데, 그중 의정부와 맞은편 삼군부의 중심건물인 당상대청은 삼당병립 구조였다. 
조선시대 주요 관청 가운데 의정부와 삼군부의 당상대청은 삼당병립 구조로 조성됐다.
조선시대 주요 관청 가운데 의정부와 삼군부의 당상대청은 삼당병립 구조로 조성됐다. ⓒ이선미

의정부지에서도 삼정승의 근무처인 정본당, 찬성과 참찬의 근무처인 협선당, 그리고 재상들의 회의장소인 석획당이 복도로 이어져 발굴되었다. 
고종대에 중건된 의정부 주요건물 배치도(아래는 고궁박물관 의정부 모형)
고종대에 중건된 의정부 주요건물 배치도(아래는 고궁박물관 의정부 모형) ⓒ이선미

삼군부 역시 총무당을 중심으로 양옆에 덕의당과 청헌당이 이어지는 삼당 구조였다. 의정부의 삼당이 모두 없어진 데 비해 삼군부 총무당은 삼선동에, 청헌당은 육군사관학교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군부 총무당과 청헌당은 각각 삼선동과 육군사관학교에 있다.
삼군부 총무당과 청헌당은 각각 삼선동과 육군사관학교에 있다. ⓒ문화재청국가문화유산포털

김영택 문화재보존처리전문가가 의정부지 유구 발굴과 보존처리 과정 등을 설명했다. 의정부 유적의 경우에는 토양과 석재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암석은 시간이 지나며 풍화되다가 급격하게 손상되기도 한다. 특히 환경오염과 산성비 등은 치명적인 손상의 원인이 된다. 
김영택 문화재보존처리전문가가 의정부지 유구 발굴과 보존처리 과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김영택 문화재보존처리전문가가 의정부지 유구 발굴과 보존처리 과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선미

적외선 열화상 분석이나 초음파 물성 측정 등을 통해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보존을 위한 처리를 한다. 현장에서는 세척과 보존처리를 위한 약품과 도구 등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초음파 물성 측정을 시연하기도 했다. 
문화재 보존처리 과정에서 초음파로 암석 상태를 측정하고 있다.
문화재 보존처리 과정에서 초음파로 암석 상태를 측정하고 있다. ⓒ이선미
초석들은 세척 후 강도를 높이기 위한 경화처리 약품을 뿌리고 건조시켜 보존한다.
초석들은 세척 후 강도를 높이기 위한 경화처리 약품을 뿌리고 건조시켜 보존한다. ⓒ이선미

조선 왕조 오백 년을 이어온 육조거리에는 제자리에 남아 있는 건물이 하나도 없다. 허물어지고 사라진 옛 터에 말 그대로 시간의 켜가 쌓였다. 역사도시 서울의 명실상부한 중심인 광화문 앞, 오백 년 조선 왕조를 기억하는 의정부 유적에 2021년 오늘의 시간은 또 어떻게 쌓여갈까. 현 상태로 보존해 역사의 흔적을 체험하는 공간이 되도록 하겠다는 의정부지에 자못 기대가 커진다.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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