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돌이 재밌는 건지 처음 알았어요!" 볼거리 풍성 '옛돌박물관'

권다현 작가

발행일 2024.04.11. 14:00

수정일 2024.04.11. 15:42

조회 2,857

여행작가 권다현의 ‘Fun하게 편하게 아이랑 서울여행’ (5) 우리옛돌박물관
여행작가 권다현의 ‘Fun하게 편하게 아이랑 서울여행’
우리옛돌박물관의 동자관
우리옛돌박물관의 동자관

개인적으로 좋았던 곳들은 아이와 꼭 다시 찾는다.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갔던 우리옛돌박물관이 그랬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볼거리가 풍성했고, 이제 막 꽃봉오리를 터트린 나무들이 하루하루 절정을 향해 내달리는 듯했다. 마침 세계적인 그래피티 작가의 전시도 열리고 있었는데, 그 현란한 색채를 마주한 순간 “우현이가 보면 참 좋아하겠다!” 아이부터 떠올랐다.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박물관을 재방문했다. 야외전시장을 신나게 뛰어다니던 아이가 “엄마, 돌이 이렇게 재밌는 건지 처음 알았어요!” 소리치는 바람에 엄마의 마음은 흐드러진 벚꽃마냥 달콤해져 버렸다.
우리옛돌박물관 본관을 리모델링한 '뮤지엄웨이브'에서는 세계적인 그래피티 작가 ‘시릴 콩고’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우리옛돌박물관 본관을 리모델링한 '뮤지엄웨이브'에서는 세계적인 그래피티 작가 ‘시릴 콩고’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걸음마다 옛돌이 말을 걸다

우리옛돌박물관의 시작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전한다. 고서화에 빠져 인사동을 드나들던 한 기업인 눈에 일본인이 수십 점의 석조유물을 두고 상인과 흥정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이런 식으로 골동품 시장을 통해 빠져나간 우리네 문화재가 상당했다. 분노한 그는 사재를 털어 일본인이 탐냈던 석조유물을 덥석 구입했다. 그렇게 집 한구석을 차지하게 된 옛돌이 보면 볼수록 아름다웠다. 보는 각도에 따라, 때론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매력이 배어났다. 그날부터 돌장승과 석등, 석불, 석탑, 문인석, 무인석, 맷돌까지 하나둘 수집하다보니 어느새 박물관 하나를 가득 채웠다. 지난 2000년 경기도 용인에 우리나라 최초의 석조유물 전문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던 이곳은 2015년 서울 성북동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우리옛돌박물관 야외전시장에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밀반출됐다가 환수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옛돌박물관 야외전시장에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밀반출됐다가 환수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이라는 다소 딱딱한 이름을 붙이긴 했으나 실제 소장품 대부분은 야외에 전시돼 있다. 커다란 석호 한 쌍이 반겨주는 입구를 들어서면 ‘바다를 건너온 돌사람’이란 제목의 환수유물들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기 전시된 문인석과 장군석, 비석받침 등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밀반출된 유물들이었다. 그러나 이곳 박물관의 오랜 노력 끝에 조선의 석조유물 다수를 소장하고 있던 일본인 쿠사카 마모루가 기증을 결심, 무려 70여점의 우리 문화재가 바다를 건너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이에게 박물관이 만들어지게 된 사연부터 환수유물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이렇게 우리 문화재를 돌려준 착한 일본인도 있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네요!” 한참이나 옛돌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애틋하다.
만개한 벚꽃과 직접 만져볼 수 있는 다양한 벅수가 있는 ‘오감만족’ 공간
만개한 벚꽃과 직접 만져볼 수 있는 다양한 벅수가 있는 ‘오감만족’ 공간

이어 매화가 활짝 핀 ‘승승장구의 길’, 부처의 오묘한 미소를 돌에 새긴 ‘염화미소’, 주로 왕릉이나 사대부 묘를 수호하기 위해 세웠던 늠름한 장군석 수십 점이 모여 있는 ‘무인시대’ 등이 산책로를 따라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아이의 흥미를 잡아끌었던 건 수세식 화장실의 화강암 판석이었다. 용도가 분명하지 않아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이 판석은 2017년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통일신라 초기 수세식 화장실 유적이 발견되면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고대 화장실의 모습까지 재현한 덕에 아이는 “아이쿠, 진짜 똥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코까지 막으며 장난이다. 바로 옆에는 돌로 만든 옛 우물도 자리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이는 재현된 고대 화장실을 보자 “아이쿠, 정말 똥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라며 코까지 막으며 장난이다.
아이는 재현된 고대 화장실을 보자 “아이쿠, 정말 똥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라며 코까지 막으며 장난이다.

흥선대원군의 형이자 민씨정권의 주요 인물이었던 흥인군의 묘를 지키던 문인석과 신도비, 망주석을 지나면 낭만적인 ‘제주도 푸른 밤’이 펼쳐진다. 투박하지만 익살스런 방식으로 서민의 정서를 표현한 동자석과 제주만의 독특한 대문양식인 정낭이 반갑게 맞아준다. 그 아래에는 만개한 벚꽃과 노란 산수유, 직접 만져볼 수 있는 다양한 표정의 벅수가 있는 ‘오감만족’이 자리한다. 박물관에서 가장 빼어난 전망을 자랑하는 곳으로 성북동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투박하지만 익살스런 ‘제주도 푸른 밤’의 동자석, 성북동 일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오감만족’
투박하지만 익살스런 ‘제주도 푸른 밤’의 동자석, 성북동 일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오감만족’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 벅수관·동자관

우리옛돌박물관 실내전시장은 벅수관동자관으로 구성된다. ‘벅수’는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장승을 일컫는 순우리말로, 나무장승은 비바람에 쉽게 썩기 때문에 반영구적으로 전승되는 돌장승을 선호했단다. 사람 얼굴을 한 장승을 마을 입구에 세워두면 전염병을 가져오는 역신이나 잡귀를 막아준다고 믿었는데, 자연스레 그 생김새와 표정에 지역의 특징이 드러난다. 아이는 모양과 얼굴이 제각각인 벅수들 틈에서 날카로운 눈매를 발견하고는 “이 벅수는 외계인 닮았어요!” 큭큭 웃음을 터트렸다.

‘동자석’은 16~18세기 서울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왕실과 사대부 묘역에 조성된 석물이다. 천진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제작돼 엄숙한 묘역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초기엔 불교의 동자상처럼 장식적인 표현이 두드러졌으나 서서히 단정하고 담백한 유교적 특징을 갖게 됐다. 이곳 박물관에서는 부귀와 수호, 다산 등 동자석이 지닌 다양한 의미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벅수’는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장승을 일컫는 순우리말로, 생김새와 표정에 지역의 특징이 드러난다.
‘벅수’는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장승을 일컫는 순우리말로, 생김새와 표정에 지역의 특징이 드러난다.

화려한 그래피티가 펼쳐지는 뮤지엄웨이브

우리옛돌박물관 본관을 리모델링한 뮤지엄웨이브는 지난해 6월 개관했다. 현재 세계적인 그래피티 작가로 알려진 ‘시릴 콩고’의 국내 첫 개인전을 선보이고 있는데, 거리의 예술로 불리는 그래피티의 자유분방한 색채와 표현이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기 좋다.
뮤지엄웨이브에서 선보이는 그래피티 작가 ‘시릴 콩고’의 국내 첫 개인전. 거리의 예술로 불리는 자유분방한 색채와 표현이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기 좋다.
뮤지엄웨이브에서 선보이는 그래피티 작가 ‘시릴 콩고’의 국내 첫 개인전. 거리의 예술로 불리는 그래피티의 자유분방한 색채와 표현이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기 좋다.
시릴 콩고 작가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와 협업할 만큼 문화적 슈퍼스타로 꼽히며, 이번 전시에서 협업 결과물도 만나볼 수 있다.
시릴 콩고 작가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와 협업할 만큼 문화적 슈퍼스타로 꼽히며, 이번 전시에서 협업 결과물도 만나볼 수 있다.

그래피티 개념을 전혀 모르던 아이도 “이건 꼭 낙서 같아요” 단번에 알아본다. 마음 내키는 대로 낙서처럼 끄적인 그림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아이에겐 신선한 경험이다. 그래피티를 공공시설을 훼손하는 행위로 인식했던 어른들이라면 오히려 도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짜릿한 반전을 마주할 수 있다. 게다가 작가는 샤넬과 에르메스, 마세라티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와 협업할 만큼 문화적 슈퍼스타로 꼽힌다. 이들 결과물 또한 뮤지엄웨이브에서 만날 수 있다.
뮤지엄웨이브 1층 입구에서는 락카 스프레이 등을 이용해 그래피티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뮤지엄웨이브 1층 입구에서는 락카 스프레이 등을 이용해 그래피티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1층 입구에는 그래피티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락카 스프레이와 그래피티용 펜 등 난생 처음 보는 도구들로 그림을 그리는 재미에 아이는 여기서만 한참 시간을 보냈다. “역시, 네가 좋아할 줄 알았어!” 엄마의 말에 아이도 싱긋 웃어 보였다. “나도 알았어요, 엄마와의 여행은 늘 행복할 거라는 것!”
성북동에 자리한 우리옛돌박물관에서는 돌장승부터 석등, 석불, 석탑, 맷돌까지 다양한 석조유물을 만나볼 수 있다.
성북동에 자리한 우리옛돌박물관에서는 돌장승부터 석등, 석탑, 맷돌까지 다양한 석조유물을 만나볼 수 있다.

 ✔ 엄마 여행작가의 꿀팁! 

- 우리옛돌박물관 운영시간은 주중 10:00~17:00 주말 10:00~18:00,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에요. *뮤지엄웨이브 운영시간은 10:00~18:00

- 우리옛돌박물관 입장료는 성인 3천원, 어린이 1천원이에요. 뮤지엄웨이브의 시릴 콩고전(성인 1만 5천원, 어린이 6천원)을 관람할 경우 무료로 입장 가능해요.

- 뮤지엄웨이브를 함께 관람할 경우 실내 전시를 먼저 둘러본 후 4층을 통해 야외 전시장으로 나오는 동선을 추천해요.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공간이 있으니 물이나 간식, 선크림을 미리 준비하면 좋아요.

- 우리옛돌박물관 누리집을 통해 미리 예약하면 ‘해설이 있는 박물관 산책’에 참여할 수 있어요. 전문 도슨트와 함께 박물관 정원을 산책하며 석조유물에 담긴 이야기와 수집 히스토리를 듣는 프로그램으로 오후 2시, 약 50분 동안 진행돼요.

- 뮤지엄웨이브 누리집을 통해 미리 예약하면 ‘알록달록 색종이 LOVE 만들기’ 체험이 가능해요. 작가의 설명을 듣고 색종이와 비즈스티커를 활용해 나만의 작품을 완성하는 체험으로, 주중 2시/주말 및 공휴일 2·4시에 진행되며 체험료는 1만5천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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